[메디게이트뉴스 윤영채 기자] 공중보건의사 대다수가 환자, 보호자의 폭언·폭행에 노출돼 있다며 보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는 지난 10월 30일부터 31일까지 실시한 ‘공중보건의사 폭언·폭행 피해 사례 실태조사’ 결과를 1일 공개했다.
이번 실태조사는 환자, 보호자로부터의 폭언·폭행 여부, 타 공무원으로부터의 폭언·폭행여부, 상급기관의 대처, 구체적 사례에 대한 질의가 포함됐으며 85명의 공보의가 응답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86%의 공보의가 환자, 보호자에게 폭언을 들은 경험이 있으며 이들 중 8%는 폭행까지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폭언·폭행을 경험한 공보의 중 44%는 근무에 심각한 지장이 있었다고 밝혔다.
공보의로 근무하며 같이 일하는 타 공무원으로부터 폭언을 들은 경험이 있는 경우는 31%였으며 폭행까지 당한 공보의도 1명 있었다. 타 공무원으로부터의 폭언·폭행으로 20%의 공보의가 근무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대공협은 "환자에 의한 폭언 폭행은 대부분 심각한 욕설이나 고성이 동반됐다. 특히 의학적 소견상 보건지소에서 해결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나 주변 의료기관 혹은 상급의료기관의 검사·진료를 권유하거나 중복처방의 이유로 처방 불가한 경우 등에서 주로 발생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공협은 이번 설문조사에서 접수된 구체적 사례를 제시했다.
• 대기시간이 길어지자 이딴 식으로 진료하니 의료인 폭행을 하는 거라면서 위협했다.
• 처방 약의 중복으로 처방이 힘듦을 설명해도 그냥 화만 내면서 죽여버린다는 둥 위협을 가했다.
• 환자가 약을 달라는 대로 안주자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기에 진료실에서 나가라고 했으나 갑자기 달려와서 명치를 때렸다. 추후 사과를 받았지만 비슷한 사례가 계속해서 발생했다.
• 군복무 중인 공보의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민원을 무기로 협박했다.
• 환자가 음주한 상태로 진료실에 들어와 설명이나 권유에 전혀 따르지 않고 본인의 주장만을 고집하며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자 욕설 및 칼로 죽이겠다며 협박했다.
• 본인이 원하는 대로 처방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30분간 제게 쌍욕을 했고 진료실에 있던 전화기를 집어 던졌다.
• 심각한 중증당뇨로, 내과 전문의 진료·입원치료가 필요함을 설명했으나 약을 주지 않는다며 손찌검을 하려 손을 들면서 욕을 했다.
• 가족관계가 아닌 단순 이웃이 감기약 대리처방을 원해 불가함을 설명하자 자신이 내는 세금으로 월급 받는 주제에 달라는 대로 약 줄 것이지 말이 많다며 고성과 욕설을 뱉었다. 이후 대기실에서 담배를 피워 금연을 요구했으나 계속 흡연을 했다.
대공협은 더욱 심각한 문제는 피해를 입은 공보의가 제대로 보호받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공협은 “폭언·폭행을 당한 이후 보건소나 의료원 등 상급기관의 대처에 대한 질문에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았다’라는 응답이 47%, 심지어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은폐를 시도했다’라는 응답이 37%에 달했다”며 “‘함께 대응 방안을 강구했다’는 답변은 10%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대공협 황정인 법제이사는 “가장 큰 문제점은 의사로서 실행하는 의학적 판단에 대한 독립성이 전혀 보장되지 않고 있는 것”이라며 “공보의가 군 대체 복무자라는 점, 급수가 없는 임기제 공무원이라는 점,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리다는 점 등으로 인해 소속기관이 의학적 판단을 존중하지 않고 민원상의 편의를 위해 부당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고 밝혔다.
황 이사는 “의학을 공부하는 의사로서 배운 바대로 처방할 수 없다는 사실은 공보의들의 근로의욕을 저하시킨다. 편의를 위한 잘못된 처방과 공보의들의 근로의욕 저하는 결국 지역사회의 건강에 막대한 악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한 개인이 끊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보건복지부의 협조를 통해 공중보건의사가 소속기관으로부터 정당한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문제가 발생할 때 해당 지역 공중보건의사 근무배치 적절성 평가를 해 배치를 재검토하는 등 공중보건의사들이 보호받을 방안이 마련되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더불어 대공협은 “공중보건의사에 대한 인식개선을 통해 공보의가 단순히 원하는 약을 처방해주는 ‘처방전 자판기’ 같은 존재가 아닌, 지역사회주민들을 위해 성심을 다해 진료를 제공하는 전문가로 바라봐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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