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05.02 14:46최종 업데이트 24.05.03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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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입법과정

[국회의원 사용법 칼럼]④ 박인숙 울산의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의료 농단 사태가 해결될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4주 후에는 22대 국회가 시작되면서 새로 임기를 시작하는 의원들이 너도나도 앞다퉈 법안을 발의할 것이다.  

‘의료 농단’의 결말이 어찌될지 지금으로서는 완전 '깜깜'하지만 어쨌든 이 사태를 떠안고 시작하는 국회는 우선 정부를 상대로 해결을 압박하는 조치를 빨리 취해야 할 것이다. 다시는 이런 비이성적이고 파괴적인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보다 근본적인 해결과 예방책이 되도록 법을 고쳐야 한다. 나아가 현 정부가 법 집행을 엄중하고 공정하게 하고 있는지도 국회에서 철저히 조사하고 사실관계를 밝혀야 한다. 한 시라도 빨리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고 대한민국 의료가 더 이상 파괴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22대 국회에서는 아마도 의료관련 법안 발의가 쏟아질 것이다. 과거 메르스와 코로나19 사태,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요양병원 화재 등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항상 법안 발의가 봇물을 이루곤 했다. 또한 이번 국회에서는 지난 2년동안 마구 통과된 의료관련 악법들을 수정하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안 처리 과정의 흐름과 관련자들을 항상 면밀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국회에서 법안이 발의된 후 최종 통과까지는 여러 과정들을 거친다. 어떤 관심 법안이 어느 단계까지 와 있는지, 만약에 어떤 단계에서 멈춰서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면 원인은 무엇인지, 누가 막고 있는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항상 매의 눈을 가지고 법안의 진행과정을 추적 관찰해야 한다.

만약 발의만 해놓고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으면 그 법안은 그냥 어딘 가에서 잠자고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임기만료 자동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그런 사례들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법안 발의에는 정부가 발의하는 정부입법과 의원이 발의하는 의원입법 두 가지가 있다. 정부입법은 관계부처 협의, 규제 심사,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 국무회의를 거쳐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반면에 의원입법은 국회의원 10명 이상의 동의만 받으면 바로 발의가 가능하기 때문에 입법의 대부분(90%)이 의원입법이다. 

정부입법은 입법절차가 복잡하고 오래 걸리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 단시일 내에 통과시켜야 하는 법안일 경우 정부가 법안을 마련한 후 개별 의원실로 ‘청부입법’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법안도 (정부 입법이 아니라) 의원 입법으로 분류되면서 의원의 ‘실적’에 포함된다. 
 
의원입법 절차는 아래와 같다. 

1)전문가 단체로부터 문제, 민원 수렴 후 의원실에서 논의 또는 필요 시 토론회, 공청회를 거친 후   

2)법안을 작성한다. 의원실 보좌관, 전문가 단체, 공무원이 단독으로 또는 함께 작성한다. 먼저 외국의 입법 선례, 타 법률과의 비교 등을 국회 입법조사처에 조사 의뢰 한 후에 입법 초안을 마련한다. 법률의 위헌성과 타 법률과의 관계 등 검토를 위해 국회 법제실에 법안 의뢰를 거치기도 하지만 의무 절차는 아니다. 

3)의원 10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후 (많은 의원들의 동의를 받으면 좋지만 필수사항은 아니다)

4)의안과로 법안을 제출(발의)한다.

5)의안과는 접수된 법안을 소관 상임위로 보내면

6)상임위에서는 법안심사소위로 상정하기로 의결한 법안들을 소위로 보낸다.

7)각 교섭단체 정당의 간사들은 법안 소위에서 논의할 법안 목록과 순서를 결정한다. 이때 논의할 법안 순서가 아주 중요하다(즉 간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법안이 너무 많으면 뒤 순위의 법안들은 논의 테이블에 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임기만료 폐기되는 경우도 많다. 

8)법안심사소위에서는 각 법안에 대하여 상임위 소속 수석전문위원과 차관의 의견을 먼저 듣는다. 그 다음 8~10 명의 소위 의원들이 자유토론 후에 찬성, 반대를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상임위 수석 전문위원과 차관의 의견이 매우 중요하다. 

교섭단체 정당 소속 상임위 전문위원들도 도움이 된다. 소위에서 국회의원이 한명이라도 끝까지 강하게 반대하면 법안 통과가 어렵다. 

많은 경우 소위 의원들이 그날 심사할 수십개의 법안을 모두 미리 파악하고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본인이 발의한 법안이나 특별히 관심을 가진 법안, 또는 부탁 받은 법안이 아니면 대부분 의원실 보좌관이 써준 의견, 국회 전문위원의 의견, 당 전문위원의 의견, 그리고 차관의 의견에 크게 좌우된다. 이 시점에서 이해관계가 얽힌 법안인 경우에는 이익 단체들의 로비가 심하다. ‘로비’를 넘어서 협박수준까지 이르는 경우도 있다. 

9)법안소위를 통과한 법안들은 다시 상임위로 보내서 의결 후  

10)법사위로 보낸다. 법사위는 소관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들이 반드시 거치는 곳인데 특별한 이견이 없는 법안은 바로 통과된다. 그러나 논란이나 반대 여론이 있는 법안일 경우에는 법사위 소위로 회부된다. 

이익 단체가 반드시 막아야 하는 법안일 경우 법사위 단계에서도 적극적 노력으로 저지나 보류가 가능하지만 대부분은 상임위 심의를 인정해서 가결되는 경우가 많다. 

11)본회의 상정. 본 회의에서 국회의원 전원을 대상으로한 표결 직전에 개별 의원의 찬반 토의 기회가 있다. 그러나 법안 통과의 마지막 순간에서 반대토론을 한다고 법안이 철회되는 일은 거의 없다. 본회의에서 통과된 법안들은 

12)국무회의에 상정되고

13)대통령 결재를 거쳐서 공포된다.
 
이와 같이 법안이 만들어져서 최종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서 시행되기까지에는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관여한다. 즉 전문가 단체나 이익 단체의 소통능력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말이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 수도 2만개가 훌쩍 넘고 21대 국회에서도 지금까지 발의된 법안 수가 2만4000개에 이를 정도로 많은 법안들이 발의되는데, 이 법안들의 최종 운명은 아래와 같이 다양하다.  

1)‘원안 통과’ : 발의한 의원에게는 가장 기쁜 일이지만 이런 경우는 드물다.

2)‘수정 통과’ : 법안 내용을 약간 수정해서 통과되는 경우로 발의자에게는 원안 통과 다음으로 기쁜 일이지만 이 역시도 그다지 흔하지 않다. 

3)병합심사 후 ‘위원회 대안’으로 통과 (원 법안은 ‘대안폐기’) : 어떤 주제에 대해 여러 의원들이 내용이 엇비슷한 법안들을 발의한 경우 이를 한번에 묶어서 심사한 후 하나의 법안으로 만들어서 결론을 내리는 경우를 ‘위원회 대안’이라고 부른다. 애초에 발의된 법안들은 ‘대안폐기‘로 명시된다. 발의한 의원에게는 이나마도 통과로 간주되기 때문에(즉 의원의 입법 실적에 포함된다) 기쁜 일이며 통과된 법안의 많은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4)발의된 법안을 논의하기도 전에 선제적으로 정부 부처가 그 내용을 시행령으로 만들어서 시행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아젠다를 집행하는 데 가장 빠른 방법이지만 흔한 일은 아니다.  

5)법안 철회 : 공동발의를 한 법안에 대해 국민이나 단체의 항의가 많은 경우, 또는 법안에 심각한 문제가 발견될 경우 법안을 철회하는 경우도 있다. 드문 일이다. 이런 법안을 발의한 의원에게는 부끄러운 일이다 

6)임기만료 폐기 : 법안의 가장 흔한 최종 운명이 임기만료 폐기이다. 19대 국회의 법안 통과율이 15.7%이었으므로 84.3%가 임기만료 폐기됐다. 20대 국회의 법안 통과율은 36.4%였으므로 폐기된 법안은 63.6%였다. 
 
이와 같이 국회 입법과정을 자세히 알리려는 의도는 지난 몇 년간 의료관련 여러 악법들이 의사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 본회의를 통과했고 게다가 통과 소식을 언론을 통해 알게 되는 황당한 일들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나아가 이미 통과돼 시행되고 있는 각종 악법들도 다소나마 완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이런 정보를 공유한다. 

진정한 의료개혁을 이루려면 법안 통과 뿐 아니라 정부를 다양한 수단으로 압박해야 하는데, 여기에 국회가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기관이기 때문이다. 국회 활용을 많이 하면 할수록 진정한 의료개혁에 가까워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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