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구은모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하면서 현지에 진출한 국내 식품업체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원재료 등의 수급불안과 루블화 가치 하락 등으로 수익성 악화가 우려돼서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의 ‘러시아 보이콧’ 확산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10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현재 오리온, 롯데제과, 팔도 등이 러시아에 현지법인을 두고 있다. 이들 기업은 현지법인을 두고 내수 중심의 사업을 벌이고 있는 만큼 러시아가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배제된 데 따른 피해 가능성은 없는 상황이다. 다만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원재료 수급 등의 문제는 물론 수요가 위축되고 루블화의 가치 하락으로 수익성이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러시아에 진출한 국내 식품기업 중 규모가 큰 곳은 오리온이다. 오리온의 러시아법인은 ‘초코파이’의 인기를 앞세워 지난해 매출액을 1년 전보다 31.4% 증가한 1170억원까지 끌어올렸다. 오리온은 2006년 트베리 공장을 설립하며 러시아 제과시장에 본격 진출했고, 2019년 이후로는 매년 두 자릿수의 고성장률을 이어가고 있다. 올 상반기에는 트베리주에 세 번째 공장 완공도 앞두고 있다.
오리온은 당장 러시아 제재의 영향은 받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현지 생산에 필요한 원재료를 2~3개월 분량을 확보한 만큼 판매 등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신공장 완공 역시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원재료 수급이 불안정해질 수 있는 만큼 한국과 중국 법인 등을 통해 대응 방안을 마련해 둔다는 입장이다.
롯데제과도 오리온과 비슷한 상황이다. 원부자재를 수개월치 비축해 놓은 만큼 당장은 문제가 없다는 것. 다만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를 대비해 원부자재 비축분을 늘리고, 현지 자금 확보 방안을 모색하는 등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롯데제과는 지난해 현지법인은 약 5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올해 초 약 340억원을 투자해 생산 라인과 창고 건물을 증축하기도 했다.
‘도시락’ 컵라면을 앞세워 러시아 용기면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팔도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팔도는 현재 러시아에 공장 두 곳을 운영하고 있는데, 분쟁 지역과 1000km 이상 떨어져 있는 만큼 정상 가동이 이뤄지고 있다. 원재료 역시 수개월 이상 확보해 놓은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맥도날드, 스타벅스, 코카콜라 등 글로벌 기업들의 러시아 시장 철수가 이어지고 있어, 국내 기업들도 동참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점도 부담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해진 만큼 국내 기업들도 일시적인 사업 중단 등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제사회의 제재 흐름에 동참하는 동시에 러시아 민심도 잃지 않아야 하는 딜레마적인 상황"이라며 "최근 기업들이 경영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우리 기업들도 전쟁기간만이라도 제재에 동참하는 등 행동하는 브랜드가 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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