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2.04.23 08:38최종 업데이트 24.11.14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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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가정폭력·범죄·산재 피해자 트라우마, 해리장애 이어질 수 있어 조기 개입 중요"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춘계학술대회서 트라우마 경험자의 정신건강과 지원체계 논의

사진 = 2022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춘계학술대회 트라우마 경험자의 정신건강과 지원체계 세션 토론 갈무리.

[메디게이트뉴스 서민지 기자] 성폭력, 가정폭력, 범죄, 산업재해 등을 겪은 피해자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할 경우 해리장애, 자살시도 등 심각한 정신장애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조기에 적절한 전문가 개입이 매우 중요하다는 조언이 이어졌다. 해리성 장애(dissociative disorders; DD)란 기억, 의식, 정체감, 환경에 대한 지각에 이상이 생기는 여러 정신장애를 가리키는 말이다.  

장형윤 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노대영 한림의대 춘천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양의대 직업환경의학교실 김인아 교수 등은 22일 열린 2022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춘계학술대회 '트라우마 경험자의 정신건강과 지원체계' 세션에서 이같이 밝혔다.

"가정폭력·강력범죄 피해자, 트라우마 치료도 초기 '응급'치료 시행해야" 

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장형윤 교수는 가정폭력 트라우마 경험자의 정신건강과 지원체계를 주제로 "가정폭력은 신체적 폭력 뿐 아니라 심리, 정서적 폭력, 성적 폭력, 경제적 폭력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진다"면서 "더욱 문제는 피해자의 자녀나 반려동물 등을 위협하거나 해하는 사례도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019년 가정폭력에 대한 실태조사를 시행한 결과, 1년간 신체적, 성적 폭력 피해율은 여성 5.9%, 남성 1.3%였고, 경제적·정서적 폭력은 각각 10.9%, 6.6%, 통제까지 포함하면 28.9%, 26.0%로 가정폭력이 빈번히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 교수는 "피해자가 도움을 청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여서 가정폭력에 대한 치료적 개입이 매우 어렵다. 경찰 등에 도움을 청하지 않는 이유는 자녀들에 대한 고려, 경찰과 제도권에 대한 기대가 없거나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정폭력은 심각한 아동학대의 하나의 유형에 속하기 때문에 반드시 치료를 받고 적극적으로 외부에 도움을 요청할 것을 제안했다. 장 교수는 "신체·정서학대와 방임, 유기를 비롯해 가정폭력 역시 5번째 아동학대 유형에 추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 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행위를 목격하는 것은 자신이 직접 맞는 것보다 정서적인 해로움이 더욱 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치료시 유의해야 할 점은 피해자에 대한 비난을 가해서는 안 되며, 그루밍성폭력 피해자와 비슷하기 때문에 가해자에 대해서도 비난을 삼가야 한다"며 "피해자들은 안전계획을 수립하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를 많이 케어할 수 있다. 갑자기 집을 나가야 할 경우 탈출 계획 수립, 위험신호 파악, 정보수집 방법, 안전한 공간 확보와 동선, 연락망 확보 등에 대해 사전 구상을 하는 것으로, 피해자 역량을 강화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토론자로 나선 공성숙 순천향대 간호학과 교수도 "성폭력 등은 범죄 피해자에 대해서는 반드시 이차외상에 주의해야 한다. 진술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태도를 갖거나 진술을 믿지 않으면 자살시도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며 "경찰, 법조인, 응급구조사, 소방관, 의료인 등을 대상으로 피해자 소통 방법에 대한 교육 시스템이 자리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 교수는 "트라우마가 극심해지면 해리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데, 많은 상담사, 의료진 등이 이에 대해 간과하거나 다루기 어려워한다"면서 "치료자를 대상으로 해리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이뤄져야 하며, 이와 함께 치료자의 번아웃을 방지하기 위한 정서적 지원 체계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아동기에 반복되는 피해는 PTSD를 유발할 뿐 아니라, 자기에 대한 분노로 이어져 자해, 자살시도, 알콜남용, 폭식 등 자기 파괴적 행동이 발생할 수 있는만큼 반드시 트라우마에 대한 통합적 치료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림의대 정신건강의학과 노대영 교수(춘천스마일센터)는 범죄 피해 트라우마 경험자의 정신건강과 지원체계를 주제로 "범죄행위 피해자는 고립감, 배신감, 분노, 복수심 등의 경험 뿐 아니라 집이나 귀갓길 등은 안전하다는 기본 가정이 붕괴되면서 안정감 박탈과 수치심, 낙인, 죄책감 등 세계관도 붕괴한다"면서 "사법절차가 지연되거나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으면 이차외상도 이어진다"고 말했다.

강력범죄를 경험한 후 두통, 과호흡, 구토, 어지럼증, 소화기계장애 등 신체적인 후유증이 발생하며, 우울장애, 알콜의존 등 정신적인 후유증도 같이 발생한다. 행동변화가 악화되면 만성적인 정신장애로 이어지면서 사회 부적응자가 될 수도 있다.

노 교수는 "피해자는 물론 피해자 가족들도 직접 목격하거나 간접경험을 통해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이 발생하기 때문에 반드시 피해자와 가족 같이 치료를 받아야 한다"면서 "특히 트라우마적인 사건 발생 후 첫 4주를 응급단계로 보고, 신체적인 응급치료처럼 심리 역시 응급처치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응급단계 1~3주간 신체적, 경제적, 심리적 돌봄이 필요하며, 특히 가해자가 구속되지 않거나 가정폭력으로 범죄현장에 머물러야 하는 경우에는 입소 프로그램을 통해 안정적이고 집중적인 치료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법무부에서는 이 같은 범죄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이 하루빨리 심리적으로 회복하고 일상으로의 복귀를 돕기 위해 스마일센터를 운영 중이며, 이를 통해 심리치료 지원과 진료 연계를 받는 것은 물론 법률·소송 지원과 주거 지원, 임시생계비·직업훈련 연계 등 사회적 지원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산업재해 역시 상당한 트라우마가 발생할 수 있어 조기 개입을 통한 사회심리재활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사진 = 한양대 직업환경의학과 김인아 교수 2022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춘계학술대회 발표 갈무리.

한양대 직업환경의학과 김인아 교수는 "산업재해는 조사, 수사 등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치료를 위한 상담에서도 다시 이를 진술해야 하기 때문에 심리적 괴로움을 호소하는 사례가 많다"며 "최근 이차피해 발생을 줄이고 적정 시기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산재병원에 업무관련성 특별진찰제도가 도입됐으며, 의료적인 재활 프로그램 외에도 직업훈련, 직장복귀지원금, 직장적응훈련비 등 직업재활과 심리상담, 가족면담, 멘토링, 심리재활프로그램 등 사회심리재활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고 밝혔다.

국내에도 산재 트라우마 치료를 위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으나 담당 의사, 의료진 수와 프로그램 등에 있어서 독일, 캐나다 등에 비해 다소 부족하다고 부연했다. 김 교수는 "산재노동자와 동료에 대한 조기 개입, 사회심리재활 활성화가 필요하지만 통합적인 관리가 가능한 전문가가 매우 부족하고 법적 지원, 프로그램도 미비한 실정"이라며 "신체적 기능과 심리적 기능, 조직적 특성과 자원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직장복귀를 염두에 둔 통합적인 개입, 심리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한 "근거기반의 정신건강 프로그램과 자살예방을 포함한 조기 개입이 가능한 정책·제도을 마련하고, 작업장 정신건강프로그램도 필요하다"면서 "장기적으로는 해당 전문가 양성 계획을 수립,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국립정신건강센터)도 "해바라기센터와 스마일센터를 제외한 트라우마센터, 재난심리지원센터 등은 예산이 1~2억원에 불과해 운영상 어려움이 있다. 특히 최근 이슈가 많은 산재의 경우에는 어떠한 법적 근거도 없다"면서 "여러 트라우마 관련 센터에 대한 실질적인 정부 지원과 함께 법적인 근거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민지 기자 (mjse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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