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의사가 SNS에 올린 격앙된 표현이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 개원의는 올해부터 NIP(National Immunization Program, 국가예방접종사업)에 포함된 65세 이상 노인들의 독감백신 사업의 다양한 문제점과 그로 인해 일선 의사들이 겪는 혼란에 대해 지적했다.
표현 정도는 다르지만, 개원가 여기저기에선 이 사업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개원의들은 보건소에 전화해 주위 의원의 백신 수량을 확인하면서 어레인지(처리)해야 하는 상황인 거죠."
한 가정의학과 개원의는 현재 상황이 좀 아이러니하다고 성토했다.
"노인 독감이 NIP에 포함되면서 개원가에서 기대했던 건, 접종에 대한 수가도 수가지만 잠재 환자들에 대한 일종의 서비스였거든요? 그런데 그런 잠재 환자들을 주위 경쟁 의원에 보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거죠."
정부는 보건소에서만 가능했던 노인 독감백신 무료접종을 올해부터 병·의원까지 확대했지만, 백신 수요 예측이 어긋나면서 개원가는 혼란을 겪고 있다.
"어르신들이 여러 의원을 전전하면서 백신을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에요. 백신 있어요? 물어보고 물량을 확인한 후에 의원을 방문해야 하는 게 현실이죠."
다른 내과 개원의는 노인 환자들이 독감백신을 '구걸하듯' 여러 의료기관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분개했다.
"질병관리본부나 보건소 공무원들이 자기 부모가 접종 때문에 그렇게 헤맨다고 생각하면, 정책을 그런 식으로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접종 초기에 몰리는 노인들
무료 독감 백신 접종이 NIP에 포함되기 전, 그러니깐 보건소와 보건지소에서만 가능할 때는 과연 어떻게 진행됐을까?
"보건소 근무 첫해 가을쯤이었던 것 같아요."
보건소에서 공중보건의를 마쳤다는 가정의학과 전문의 K씨는 가을쯤 시행하는 노인들의 무료독감 접종의 상황에 관해 설명했다.
독감백신 접종 때의 일반적인 보건소 모습 <사진 출처 : 노컷뉴스>
"맘을 단단히 먹고 출근하라고 보건소 공무원들이 접종 시작 전날 경고를 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죠. 대기 중인 어르신들 줄이 보건소 건물을 3번 정도는 휘감았던 것 같아요."
독감 무료접종 시즌이 오면 보건소는 도떼기시장이 된단다.
일주일 내내 밀려드는 노인들을 위해 보건소는 충분한 백신 확보는 물론이고, 가능한 보건소의 인력을 총동원하고 아르바이트생까지 충원했다고 한다.
"보건소는 접종자가 초기에 집중적으로 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주하는 동네별로 날짜를 나눠 미리 안내하지만, 어르신들은 잘 따르지 않습니다. 어르신들이 막무가내인 것도 있지만, 사실 그들 나름대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어요."
2009년 가을, 신종플루 영향으로 노인들의 독감 백신에 대한 수요는 급증했지만, 백신 공급량은 그 전해보다 준 상태였다.
그해의 무료접종 기간 초기에 보건소를 방문하지 못한 일부 노인들은 보건소 공지에 맞춰 날짜를 미뤄 방문했지만, 백신이 부족해 접종받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보건소는 마을별로 나눠 접종 스케줄을 만들어도 무시되기 일쑤다.
"그다음 해부턴 아무리 백신이 충분하다고 설명해도, 천천히 오셔도 충분히 맞을 수 있다고 안내해도 어르신들은 믿질 않았죠."
K씨에 따르면 '늦으면 접종을 못한다는 선례'는 접종받은 사람이나 받지 못한 사람 모두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다고 한다.
노인들은 접종 초기에 무조건 백신을 맞아야 한다는, 일종의 신념 같은 게 생겼다고.
심지어 일부 노인들은 불안한 마음에 공무원들 업무가 바쁜 틈을 이용해 몰래 두 번씩 맞기도 했다.
초기 수요 60%의 근거는??
이런 현장 상황의 이해 없이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는 전체 예상 수요량의 60%를 초기 물량으로 잡아 접종 개시일 이전에 병·의원에게 공급했고, 나머지 40%는 5차에 걸쳐 차례로 배포할 계획이었다
"도대체 60%란 근거가 어디에서 나왔느냐는 거에요!"
K씨는 이런 질본의 계획이 백신 접종 현장의 사정을 무시한 채 너무 나이브했다고 평가했다.
"이전 사업을 진행했던 보건소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거나 이전까지의 초기 접종량 데이터를 따져 시뮬레이션만 해봤어도 예측 가능한 데 말입니다."
현재 질본은 부랴부랴 대체 백신 사용을 인정했지만, 개원가에선 대체 백신의 수가인정 비율이나 반품 문제 등으로 한 번 더 혼란을 겪고 있다.
K씨는 이런 혼란을 내년에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일부 노인들에겐 접종 초기가 아니면 제대로 못 맞는다는 믿음이 있었고, 보건소는 아니라고 설득해왔는데 말입니다."
K씨는 노인들의 '잘못된 신념'이 올해의 경우, 적어도 지금까지는 맞아가고 있는 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되면, 내년에는 아마 초기 수요가 더 폭발적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벌써 내년을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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