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외과 의사들, 수가 현실화∙의료분쟁 특례법 제정 촉구...복지부 "필수의료 중에서도 시급한 분야 우선 지원"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신경외과를 비롯한 필수의료 분야를 살리기 위해 수가 현실화와 형사 처벌을 면제해주는 의료분쟁특례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의사들이 환자를 살릴수록 적자가 나오는 저수가 구조와 최선을 다했음에도 형사 처벌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는 상황을 개선하지 않고선 필수의료의 붕괴를 막기 어렵다는 것이다.
10일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국민의힘 김미애 의원 주최로 열린 '수술방에 갇힌 신경외과 정책, 이제는 바꿔야 한다'라는 제하의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신경외과 의사들이 자신의 삶의질도 포기하고 환자를 살리는 데 매진하고 있다며 정부와 국회의 지원을 호소했다.
실제 신경외과 의사들은 10시간이 넘는 장시간 수술이 잦은데다, 집에서 쉬다가도 응급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실려오면 병원으로 달려가야 한다. 새벽에 밤샘 수술을 한 후 바로 외래진료를 이어가기도 한다. 이렇게 몸을 갈아 넣어가며 환자를 진료하지만 수술의 결과가 나쁜 경우 유가족들이 소송을 제기해 법적 다툼에 휘말리는 일들도 있다.
환자 사망하면 소송 걸리고 살려도 남는 건 적자...의사 '헌신'에 기댄 체계 한계
발제자로 나선 대한뇌혈관외과학회 김용배 상임이사(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역시 지난 2016년 뇌지주막하 출혈이 일어난 환자를 수술 끝에 잃은 바 있다. 그는 당시 유가족 측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여전히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매일같이 수술을 이어가는 그를 더욱 허탈하게 만드는 것은 비현실적인 저수가다.
이날 김 상임이사가 공개한 자신의 지난해 원가실적현황 자료에 따르면 의료이익률은 –4%였다.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장 많은 개두술을 한다는 그가 정작 병원에는 재정적 손해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세브란스가 수익을 갖고 의사를 평가하진 않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속상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김 상임이사는 이처럼 신경외과 의사들의 희생과 헌신에 기대 현 체계를 유지하기는 힘든 시점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밤낮없이 수술하는 신경외과 의사의 모습을 동경해 신경외과로 들어온 전공의들 마저 열악한 현실을 직접 경험한 후에는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신경외과 전문의 배출 수는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신경외과 전문분야 중에서도 응급, 중증환자의 비율이 높은 뇌혈관 분야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김 상임이사는 “국내 뇌혈관외과 전문의 수는 133명에 불과하다. 전국 수련병원 85개로 나누면 병원당 2명이 채 안 되는 현실”이라며 “그마저도 수도권에 치우쳐 있어 지방의 전문가 부족 현상은 매우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그래도 수술 포기않는 건 의사로서 '양심'...획기적 수가 가산∙의료분쟁 특례법 제정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에 대해 인터넷에 실명으로 글을 올려 주목받았던 대한뇌혈관외과학회 방재승 학술이사(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도 패널로 참석해 과거 소송에 걸렸던 일들을 설명했다.
방 학술이사는 “어려운 수술을 했다가 소송 걸린 케이스가 몇 개 있었다”며 “아무리 다른 병원에서 포기를 해도 웬만해선 포기하지 않는 편인데, 수술을 하고 나서 결국 환자가 사망하면 소송을 걸더라. 그 때 느끼는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어려운 수술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선 의사로서의 양심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내 가족이면 어떻게 치료했을까라고 자문해보면 답이 나온다”며 “전공의들이 밤에 전화가 와서 뇌출혈 환자인데 어떻게 할까요 물어보면 똑같은 말을 해준다”고 했다.
이어 “이번 아산병원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문제는 단순히 수가, 당직비 조금 올려주는 걸론 개선이 어렵다”며 “전공의들의 사기 진작이 중요하다. 적어도 지금 흉부외과 전공의들이 받는 가산액 정도는 해줘야 전공의들이 신경외과를 선택하고 뇌 쪽으로 지원을 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경외과 전문의인 대한의사협회 박진규 부회장은 신경외과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도 제언했다. 박 부회장은 “그날 그날 진료만 가능한 병원, 시술 가능한 병원, 수술 가능한 병원 등을 배정하는 식으로 인력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모든 병원이 24시간 365일 스탠바이 하고 있어야 하는데, 환자가 가끔 오는 병원들의 경우는 큰 낭비”라고 했다.
그는 또 “제일 중요한 건 의료분쟁 특례법이다. 소송 한번 걸리면 의사도, 수술도 하기 싫어지는데 심지어 환자를 살리려 한 의사를 구속까지 시킨다”며 “의료분쟁특례법을 제정하고 분쟁 비용은 국고에서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필수의료 '심뇌혈관 분야' 국가 책임제...인력 갖춘 병원도 제도 탓에 활용 안 돼
대한뇌혈관내치료의학회 박석규 정책이사(순천향대서울병원 신경외과)는 심뇌혈관분야와 같은 필수의료를 국가에서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도 했다.
박 정책이사는 “지난 정부에서 치매 국가 책임제를 시행해 좋은 효과를 내고 있다. 심뇌혈관 분야도 예를 들어 뇌출혈 등은 환자에게 장애를 남길 수 있는 건 물론 가족들도 큰 고통을 안게 된다”며 “중증으로 진행이 되지 않게 미리 예방하고 치료 받을 수 있도록 국가에서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중앙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어렵다. 해외에선 지자체가 지역 내에서 필요한 의사 수를 컨트롤하고 지원, 육성도 같이 한다”며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지역에서도 이런 작업이 같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포항에서 뇌혈관분야 전문병원 에스포항병원을 운영 중인 김문철 원장은 신경외과 전공의들의 열악한 근로 여건과 제도상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김 원장은 “우리 병원에 뇌혈관만 보는 의사가 8명이다. 대학병원도 인력이 모자라 난리인데, 시골에서 뇌혈관 수술 하는 의사를 8명 모으기가 쉬웠겠나. 온갖 감언이설로 겨우 가능했다”며 “문제는 그렇게 데려와 혼자 수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가르쳐놔도 결국 나이가 들면 응급실 당직 서는 게 힘들어서 병원을 떠난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우리 병원은 나라에서 안주는 콜 당직비도 주면서 응급 뇌졸중 환자 치료하기 위해서 신경외과 의사들이 밤을 새운다”며 “그런데 중증 뇌졸중 환자는 지역 응급의료센터 이상으로 이송토록 한 제도 탓에 119가 응급의료기관인 우리 병원에 오지 않는다. 우수한 인력이 준비하고 있는 병원임에도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탁상공론”이라고 지적했다.
복지부 "수가 인상 필요하지만 급한 분야부터...인력 문제도 다양한 방안 검토"
복지부는 수가 인상과 관련해선 한정된 재원을 갖고 필수의료 분야 중에서도 어디를 우선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인력 충원 문제는 의대 증원부터 전공의 지원까지 다양한 안들이 테이블 위에 올라와있다고 했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고형우 과장은 “필수의료 분야에 대해 수가를 어느 정도 올려줄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한다”면서도 “결국은 비용 문제다. 지금 필수의료협의체 안에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흉부외과∙비뇨의학과 6개 과가 들어와 있는데 어디까지가 의료계가 공감하는 필수의료 분야인지에 대해 먼저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그런 부분을 감안해서 한 번에 모든 필수의료 분야의 수가를 올릴 수 없다면 정말 필요하고 급한 분야에 대해서는 좀 더 체계적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며 “물론 이런 검토는 정부가 단독으로 하는게 아니라 의료계와 같이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고 과장은 또 “필수의료 인력 확충 문제도 의대 정원 확대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 전공의 쪽부터 해야 한다는 의견 등 다양한 의견이 있다”며 “정부는 이런 모든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데 쉽지 않은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조만간 수가, 필수의료 인력 확충 문제에 대해 정부가 정책을 마련해 발표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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