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정명관 칼럼니스트]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면허 없이 운전을 하면 무면허운전으로 처벌받기 때문이다. 대충 운전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늘어난다. 그래서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운전면허제도를 시행한다.
그러나 면허소지자들만 운전한다고 해도 예상치 못한 사고는 늘 일어나기 마련이다. 고의로 사고를 낸 것도 아닌데 그럴 때마다 운전자를 처벌한다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에 종합보험에 가입한 운전자는 대물사고나 대인사고에서 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도록 했다. 사실 민사상 책임조차 거의 지지 않는다고 해야 옳다. 보험 한도 내에서 대부분 보상해 주기 때문이다.
사망 사고의 경우에도 주요 법규 위반이 아니라면 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 반면, 무면허 운전자라면 운전하는 순간부터 무조건 처벌을 받고 사고라도 나면 보호를 받을 수 없어 파산하기 십상이다.
국가가 이렇게 운전면허를 관리하는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최적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시나 응급환자가 있을 때 같이 긴급 상황에서조차 면허가 없다고 운전을 못 할 수는 없다. 긴급 상황에서는 무엇이라도 닥치는 대로 해야 한다.
하지만 긴급 상황에서 운전면허가 있는 사람이 나서서 도와주면 더 고마울 것이다. 긴급 상황에서 운행 중 사고가 났다고 하더라도 운전면허가 있는 사람이 면허가 없는 사람보다 더 큰 처벌을 받을 이유는 없다. 이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옛날에는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이 있는 사람은 그냥 환자를 치료하면 됐다. 그러나 의학이 발전하고 복잡해지면서 의사면허를 관리할 필요가 생기게 됐다.
기본적인 이유는 운전면허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제대로 배우지 않고 치료하면 제대로 배우지 않고 운전하는 것처럼 사상자를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일정한 기준을 통과한 사람에게만 국가는 의사면허를 준다.
의사면허는 ‘이제 환자 진료를 할 수 있다’는 국가 자격증이다. 의사면허가 없는 사람은 무면허의료 행위로 처벌돼 공식적인 의료 업무에 참여할 수 없다. 이에 반해 의사면허가 있는 사람은 환자 진료를 할 수 있다. 당연히 치료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의사면허를 확대 해석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의료사고에 관한 것이다. 현대국가에서 의사와 환자는 상호 계약관계에 의해 의료를 제공하고 비용을 지불한다. 의사는 최신 의학지식에 따라 성실히 진료할 의무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특히 미용 등이 아닌 필수 의료의 경우 결과에 대한 비용 지불이 아니라 과정에 대해 비용을 지불한다. 치료결과가 좋으면 비용을 지불하고 그렇지 않으면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수술실이나 응급실에서 치료 도중 환자가 사망했다고 해서 의사에게 책임을 묻거나 비용을 지불하지 않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왼쪽 무릎을 수술해야 할 환자인데 오른쪽 무릎을 수술했다든지 치명적인 약물을 착오로 투입했다든지 하는 사고는 병원과 의료진이 책임을 져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까지 이 잡듯이 파헤쳐서 작은 오류나 실수까지 처벌하지는 않는 것이 관례다.
의료행위 속성상 불확실성이라는 것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러한 관행이 자리 잡는다면 의사들은 적절한 진료보다 방어 진료에만 급급해 하거나 중환자를 회피하는 압력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소수의 이익보다 다수의 손실이 더 커진다. 정당한 진료와 방어 진료의 차이는 환자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NHS를 시행하는 영국에서는 전공의의 경우 의료사고에 대한 배상을 국가가 책임진다고 한다. 의사가 방어 진료보다 적정 진료에 집중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운전과 비교한다고 하더라도 멀쩡한 사람을 치어 죽이는 것이 아파서 병원에 온 사람이 잘못되는 경우보다 더 황당한 일이고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사고 운전자보다 의료사고를 낸 의사를 더 살인마라고 욕하며 처벌하려 하지는 않는지 돌아 볼 필요가 있다. 운전자도 의사도 고의로 사고를 내려는 사람은 없는데 말이다.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종합보험에 가입한 운전자를 보호하듯이 의사면허를 취득하고 의료배상보험에 가입한 의사도 보호할 의무가 있다.
판사가 잘못된 판결을 내려도 변호사가 패소를 해도 형사처벌 받지 않는데 의사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시정돼야 한다. 물론 피해자에게는 책임 정도에 따라 적절한 보상이나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
두 번째는 선한 사마리아인법에 관한 내용이다. 길거리나 비행기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일반인이든 의사든 도움의 손길을 내밀려고 달려올 것이다. 주위에 일반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있다면 더 다행스런 일일 것이다. 환자와 계약관계가 없는 의사가 순전히 선의로 도우러 왔지만 단순히 체한 증상 일 수도 있고 심정지 상태일 수도 있기 때문에 결과는 장담하기 힘들다.
어떤 상황이든 일반인보다는 의사의 도움이 조금이라도 더 필요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환자가 잘못됐을 경우 일반인보다 의사에게 더 과중한 책임을 묻는다고 한다면 납득하기가 어렵다. 응급구호과정에서의 잘잘못을 가리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그는 환자와 계약한 의사로서가 아니라 일반인보다 의료를 더 잘 아는 사람으로서 도움을 제공하러 달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긴급 상황에서 운전면허가 있는 사람이 도우러 와 운전을 하다가 사고가 났을 경우 더 크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하물며 의사면허는 운전면허보다 훨씬 취득하기 어렵고 의료기술을 쌓는 것은 운전기술을 습득하는 것보다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선의로 도움을 제공하러 달려온 의사에게 책임을 묻기 시작한다면 앞으로 긴급 상황에서 의사의 도움을 어떻게 요청할 것인가.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으로 재판받는 전공의들과 한의원 봉침사건으로 구호를 제공한 의사가 소송을 당했다는 뉴스를 보고 의사면허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국가는 의사면허를 취득하는 의사들이 실력을 충분히 쌓았는지 검증해야하고 면허를 받은 의사들이 업무 중이든 업무 외 시간이든 의료적 도움이 필요한 환자에게 본인의 능력 범위에서 최선의 의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국민들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 의사면허는 완벽하게 치료할 수 있음을 보증하는 증서도 아니고 사람을 살리는 증서도 아니며 진료를 허용하는 증서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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