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월 의료계 파업과 9월 4일 의정합의 이후 전공의들은 아직 파업의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의대생들의 국시 미응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국회는 각종 의료계를 옥죄는 법안을 잇따라 발의하면서 의료계는 그야말로 혼돈의 연속을 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41대 대한의사협회 후보자 등록이 2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메디게이트뉴스는 의료계 전현직 리더들로부터 차기 의협회장이 투쟁과 협상의 갈림길에서 회원들과 함께 갖춰야 할 덕목을 심도 있게 살펴보고, 이를 차기 의협회장 후보자들의 공약과 정책에 반영해보고자 릴레이 기고를 마련했다.
[메디게이트뉴스] 안토니오 그람시는 의사에게 아주 낯선 이름이다. 그는 부르주아지 자본계급을 전복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 공산주의를 건설하자는 소위 원조 빨갱이 사상가이다. 그람시는 책 ‘옥중수고’에서 상부 지배구조의 이론이나 문화에 참호를 구축하고 장기적인 진지전을 벌여 결국 헤게모니를 장악해야 계급 없는 공산주의 혁명이 완수된다고 주장했다.
구글링을 해보면 그람시가 우리사회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 있다. 우파의 대표적인 논객 조갑제 기자의 ‘안토니오 그람시란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를 보자. 언론과 노조, 교육과 문화계의 좌파 독과점 성향이 전적으로 그람시 진지론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람시의 후예들이 우리나라 도처에 있다. 물대포와 차벽을 두고 격렬하게 부딪치는 대규모 시위를 기동전이라고 한다면 암암리에 비트를 파고 기존 질서를 부정하는 이데올로기 투쟁을 진지전에 비유할 수 있다.
그람시의 이데올로기적인 헤게모니 전략은 타도와 폭력이 수반될 수밖에 없으므로 그의 사상은 대다수 의사에게 극심한 알레르기를 일으킨다. 의사는 ‘자유와 경쟁’을 강조하는 우파 논리에 더 친화적이다. ‘평등과 복지’를 주장하는 좌파 논리는 일부 의사단체를 제외하곤 시혜적이고 부차적이다.
요즘 그람시를 학습한 소위 강남좌파들의 내로남불 때문에 시끄럽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기억하는 아스팔트 우파는 본분도 모른 채 아직 지리멸렬 상태이다. 조만간 주역으로 등장할 IMF 세대와 2030 SNS 세대가 변수이긴 하나 광화문에서 한번 더 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교과서대로 진료할 수 없고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기 때문에 올바른 의료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의사는 주장한다. 그런데 의사의 문제해결 방식이 환자 희생적이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길게 보면서 그람시의 진지론을 응용하고 여론에 호소하라고 권유한다. 이런 처방이 꽉 막힌 사방의 적들을 내편으로 만들 수 있을까. 대다수 사람들이 발전된 사회에서는 하루아침에 이름이 뒤바뀌는 혁명은 없고 점진적인 변화만이 있을 뿐이라며, 장기적인 차원에서 헤게모니를 구축하기 위해 진지부터 쌓는 것이 필요하다고 의사에게 충고한다.
몇 달 후면 제40대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 집행부가 끝난다. 최대집 회장은 3년 전 “강한 투쟁만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며, “의료를 멈추어 의료를 살릴 투쟁으로 나아가겠다”는 슬로건으로 당선됐다. “감옥 갈 각오로 투쟁하겠다”는 그에게 화려한 공약은 애초부터 맞지 않았고 투박한 발걸음과 거친 언사가 한때 의사들을 뭉클하게 했다.
지난 8월 ‘4대 악 의료정책’을 반대하며 여의도광장 크레인에 올라 “저, 최대집이 책임지겠다”고 외친 전술적 퍼포먼스를 보자. 최 회장은 진지전보다 아스팔트 기동전에 특화된 인물이다. 그런데 안타깝고 아쉽다. 개원가의 참담한 참여와 전공의 지도부와의 소통 부재에 따른 성급한 새벽 협상은 최 회장을 불신임 구렁텅이로 몰아 넣었고, 문무를 겸비한 하이에나에게 살가죽을 뜯기는 치욕을 경험하게 했다.
이제 의협은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캐스팅보드를 쥐었다. 의약분업 이후 그랬듯 여름 총파업 투쟁에 적극 참여한 개혁적이고 젊은 의사들의 뜻에 따라 차기 회장이 결정되고 움직여질 것이다. 누가 의료를 제대로 바라보고 담지자가 될까 자천 타천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개원의, 봉직의, 병원장 등 각 직역의 이해가 서로 다르다. 내과와 외과의 문제도 다르다. 학회와 개원의 입장도 제 각각이다. 전공의와 학생이 바라보는 의협의 모습은 세대만큼 차이가 난다. 다양한 각 직역을 아우르고 의협을 이끌어 가려면 소통과 화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한다. 누군가 회장의 정치적 편향과 소통부재를 지적하며 여러 직역을 아우를 수 있는 협치의 리더십이 차기회장의 기본 조건이라 말한다.
그런데 코로나19 시대 공공의료에 대한 요구가 크다. 한 학자는 ‘민간병원 덕분이라는 거짓’이란 글로 의사를 분노하게 하고, 어떤 이는 국공립병원 신설과 확충만이 공공의료의 전부라 주장하며 300병상 병원을 여기저기에 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년엔 비급여의 정부통제가 강화될 예정이다. 전체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비급여 진료비용의 공개를 실시하고, 비급여 사전설명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에 대한 불만과 폐해가 커지고 있다.
의료는 ‘국민 모두가 평등하게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지금보다 더 나은 건강한 삶을 누리게 하는데 있다’며 무상의료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의사는 의료 헤게모니를 많이 빼았겼다.
우리나라 의료의 하부구조는 의협과 민간병의원의 생산력과 생산방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상부구조는 소위 공공의료 프레임을 전가의 보도처럼 내건 특정 의료관리학파와 국공립병원 우선주의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의사는 상부 구조의 주도권을 잡지 못한채 의약분업과 문재인 케어로 끌려 왔다.
“지식인들의 실수는 이해 없는 지식의 획득, 특히 느낌과 열정의 부재로 비롯된다”는 그람시의 경구가 지금 우리 의사에게 아프게 다가온다. 코로나19는 국민들에게 무상의료의 달콤함을 주고 있어, 하부가 상부를 장악하는 역사적 유물론을 넘어 상부 이데올로기가 레짐 체인지를 시도하고 있다. 생활이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생활을 규정한다.
이제 의사들에게 참호와 진지에서 그람시가 권한 것처럼 고민하고 유기적 지식인이 되기에는 의협 집행부 3년 임기가 너무 짧고, 끊어지는 전문성이 안타깝다. 상부 의료 이데올로기를 타파하기 위해 오랜시간 진지에서 고민하고 인적 물적 토대를 준비하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이나, 매년 되풀이되는 회장 불신임을 볼 때 타협과 협상 위주의 인물보다는 단기적 기동전을 수행할 수 있는 비타협 불복종이 한번 더 요구된다.
의사 불복종(Doctor disobedience)은 국가의 법이나 정부의 명령 등이 부당할 때 이를 공개적으로 거부하는 행위를 말한다. 의사가 지향하는 목적이 정당하고 처벌을 감수한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의사들을 옥죄는 각종 현안이 산적하다. 단상에 제대로 머리를 박는 사람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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