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 우려로 고위험 진료 기피 현상 심화…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 관계 구축 도와 소신 진료 가능케 하는 법안 필요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신생아 5명이 사망한 사건에 연루된 의료진 대법원으로부터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사건이 발생한 2017년 12월부터 5년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고통받은 의료진의 무고함이 5년만에 증명된 것이다.
해당 사건 이후 의료현장 어느곳에나 도사리고 있는 '의료사고'의 검은 그림자가 의료계를 뒤덮었고, 의료분쟁의 소지가 다분한 고위험 수술 및 진료과목에 대한 기피 현상이 극심하게 두드러졌다.
특히 해당 사건이 발생한 '소아청소년과'는 한 번의 의료사고로 다른 전공과목에 비해 더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다는 점과 저출산의 여파를 동시에 맞으면서 2023년 전반기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이 16.6%로 집계되는 등 그야말로 소아청소년과는 의료사고 및 분쟁 위험으로 인한 의료진의 불안감과 기피현상에 따른 여파를 직격탄으로 맞았다.
의료계는 이대목동병원 사건처럼 고의 또는 중과실을 제외한 정상적 의료행위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형법상 과실치사상죄의 적용을 배제함으로써 의료인의 형사처벌을 면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8월부터 진행된 필수의료 지원대책에서도 제기됐던 대한의사협회 및 각 학회 등에서 '(가칭)의료사고 특례법'의 입안을 추진했지만, 정부가 12월에 발표한 필수의료 강화대책에는 포함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법조계와 의료계는 의료사고 특례법이 의사의 '특혜'가 아닌 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 관계를 마련해 환자의 진료권 확보 차원에서 필요한 법이라고 강조했다.
의료계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과 같이 고의 또는 중과실에 대해서만 명확한 처벌 기준을 명시하고, 그 외의 사고는 특례로 정함으로써 의료사고로 인한 형사처벌을 줄이고 환자에 대한 피해구제를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김이연 홍보이사는 "이대목동병원 사건으로 의료사고 및 의료분쟁 등에 대한 의사들의 불안과 우려가 더 깊어졌다. 애초에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피함으로써 방어진료를 하게되고, 위험하지만 꼭 필요한 필수의료 분야 수술 등을 지원하는 의사도 줄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김지홍 이사장도 "이대목동병원 사건에 연루된 교수는 구속됐고, 오랜 소송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사건 초기부터 증명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 무조건 의사 책임으로 몰아넣어 여론 재판하듯이 몰아갔다. 어떤 나라도 의사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을 묻는 나라는 없다. 진료 결과가 안 좋을 수 있지만 모든 것을 의사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그런 것을 보고 자란 전공의들이 과연 후배에게 소청과 진료를 권유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해당 사건이후 소아청소년과는 물론 산부인과에서도 의료사고 가능성이 높은 분만을 하는 의사들이 지속적으로 감소 중이며, 정형외과에서조차 분쟁에 대한 우려로 수술을 하지 않는 병원을 개원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이에 의협은 지난해부터 필수의료과 살리기 TF를 꾸리고 의료사고 특례법 제정을 추진했고, 지난 7월 서울아산병원 사건을 계기로 필수의료지원협의체를 통해 수차례 복지부에 특례법의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결국 국회와 정부를 설득하지 못해 이번에도 좌절됐다.
법무법인 세승 현두륜 변호사는 "의사들은 진료환경의 제약이 크다. 정해진 보험급여 기준에 따라 진료를 해야 하고 위험한 수술을 한다고 해서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의사는 사실상 공행정사무를 위탁받아 처리하는 공무원과 유사한 신분이라고 봐야 한다. 개원한 의사도 일종의 공무수탁사인이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경미한 의료사고마저 형사 소추를 하게 되면 의사들은 위험한 진료는 피하고 방어 진료만 하게 된다. 이렇게 될 경우 결국 피해는 환자들이 입게 된다. 진료비는 상승하고, 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 관계는 무너지고 꼭 필요한 수술을 할 의사들은 사라지게 된다"며 "이러한 측면에서 의료사고 특례법은 단순히 의사들을 위한 법안이 아니라 환자들이 안전하게 진료받을 수 있는 의료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필요한 법이다"라고 말했다.
의사 '특혜'로 오인해 입안 어려워…의료배상책임보험 의무가입제 등으로 국민 설득해야
하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의료사고 특례법이 마치 의사만 '특혜'를 받는 법안으로 오인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인 전성훈 변호사(법무법인 한별)도 "의료사고 특례법이 발의조차 힘든 이유는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이 법이 의사들에게 특권을 주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으며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정서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다. 이에 국회의원들도 해당 법안을 본인이 발의하게 되면 마치 자신이 의사 편을 든다는 인식을 준다고 생각해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의료사고 피해자는 정서적으로 '불가항력적 의료사고'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 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에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국민들은 해당 법이 시행되면 의사들이 어떤 의료사고를 일으켜도 형사처벌을 면제받을 수 있다고 이해하게 되고 본인이 피해자가 됐을 때를 고려해 법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법무법인 동진 전성룡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그 입증책임이 피해자에게 있다. 그렇다 보니 의료사고 피해자들은 형사고소를 통해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형사고소로 진료기록부와 수술실 CCTV 등 증거를 확보해 의사의 과실 여부를 따져야 민사 소송도 수월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전 변호사는 "형사 처벌이 안 되고 고소가 어려워지면 현실적으로 피해자인 국민 입장에서 의료사고를 입증하기 어려워진다는 문제가 생긴다. 이에 국민들은 형사 소추가 안된다는 사실에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의료사고 특례법에 대한 국민 정서가 부정적인 상황에서 국민의 여론과 정서에 민감한 국회의원으로서는 아무리 법의 취지가 좋다고 하더라도 국민 정서에 반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란 쉽지 않다.
이에 전성룡 변호사는 '특혜'처럼 보이는 의료사고 특례법의 '형평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의사들도 양보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사의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대신 의료사고 관련 민사 소송과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분쟁 조정에서 의사의 과실 범위를 넓게 적용함으로써 손해 배상을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래야 국민들도 굳이 형사 소추를 하지 않아도 민사를 통해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겨 무작정 형사소추를 해야 한다는 인식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전 변호사는 "의사의 과실 여부가 불분명한 경우라 하더라도 의사들을 보험에 강제 가입하도록 해 충분한 보상이 되도록 하고,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의료사고 분쟁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필수의료 분쟁 비용에 대한 기금을 만들어 필수 진료과는 물론 피해자도 보호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의료기관 의료배상책임보험 의무가입제는 의료계에서도 필요성을 인정하는 방안으로, 의료분쟁에 대한 국민과 의사의 부담을 경감하고, 대한의사협회 의료배상공제조합의 역할 및 배상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고 바라보고 있다.
전 변호사는 "이렇게 안전장치가 마련되면 국민들도 보상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반발이 덜 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대신 의료사고 책임성이 애매한 부분도 책임보험으로 혹은 국가 기금으로 책임지고 금전적 보상을 해 준다고 약속하면 국민들도 이를 받아들일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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