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 “공공의대 능사 아냐 의료계 강력 대응 필요...수가 인상‧기존 의대 활용부터"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공공의대 설립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금까지 주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전라권 국회의원들이 주로 주장했지만, 정부와 여당도 주요 어젠다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공공의대 설립에 유보적이었던 정부가 갑자기 입장을 선회한 것에 대해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특히 지역 필수의료 기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공공의대 설립이 아닌 수가 조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또한 의사 증원이 필요하다면 공공의대 신설안보다 기존 의과대학을 활용해 의사 수를 10% 정도 늘리는 방안이 더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국힘도 공공의대 설치법 동참…전남 이어 공주대 공공의대 특별법까지
29일 의료계와 국회에 따르면 그간 민주당을 중심으로 공공의대 설립 주장을 펼쳐왔다. 대표적으로 지난 문재인 정권은 공공의대 설립 추진을 강행했고 이에 의료계가 총파업을 단행했다.
이후 목포의대 설립 특별법을 발의한 민주당 김원이 의원을 필두로 최근엔 순천을 지역구로 둔 소병철 의원이 전라남도 의대 설치 특별법을 발의해 공공의대 설립 불씨를 이어갔다.
충남 서산시·태안군을 지역구로 둔 성일종 의원(국민의힘)은 25일 국립공주대학교에 의대를 설치하는 '국립공주대학교 의과대학 설치에 관한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성 의원이 발의한 공공의대 특별법은 민주당 의원들이 내놓은 법안과 대동소이하다. 공공의대 설치를 위한 예산을 국가가 지원하고 10년간 지역 의무복무를 명시한 '지역의사제' 부분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공공의대 설립이 법안발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부 주요 국정과제로 채택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은 공공의대가 별도로 존재하면 지속가능성이나 지역 연계성이 떨어질 수 있어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신중론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은 지난 22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공공의대 설립은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라며 추진 의지를 내비쳤다.
방 실장은 공공의료 인력 확충 계획을 묻는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의 질문에 “필수의료 인력을 확충한다는 방침하에 의료계와 논의를 하고 있다”며 “국립의학전문대학원(공공의대) 설립은 정부가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이다. 의료계와 원만히 합의해서 마무리 짓겠다”고 말했다.
공공의대 문제는 정치적 포퓰리즘으로 전락한 지 오래
그동안 산발적으로 이뤄져왔던 공공의대 법안 발의와 달리, 이번 국정과제 추진 발언은 무게감을 더하면서 의료계는 사안을 더욱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우봉식 소장은 “그동안 공공의대 등 문제가 지역 민심 잡기 전략으로 활용됐다.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실효성이 없음에도 일단 단 것을 주고 나중에 당뇨병이 오는 부작용 등은 나몰라라하는 잘못된 처사”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지난 6월 지방선거 때도 당시 전북 지역 윤승호 남원시장 후보가 공공의대 설립을 공약했다. 이어 전남 지역에서도 박홍률 목포시장 후보, 장만채‧손훈모 순천시장 후보 등이 모두 의대 설립을 공약했다. 모두 지역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나온 것으로, 일종의 포퓰리즘 정책인 것이다.
그러나 법안이나 공약 수준을 넘어 정부 국정과제에 공공의대 설치 문제가 포함된면 법안 논의가 탄력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공공의대 설립에 유보적이었던 윤석열 정부도 전반적인 공공의료 확대 분위기에 편승하기 시작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정치권 분위기를 보면 공공의료 확대 기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공통된 선거전략은 단연 공공의료 확대였다. 오세훈, 김동연, 박형준, 유정복 등 당시 선거에서 승리한 주요 당선인들은 모두 공공병원 추가 설립 및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이들 당선 지역에 이미 의과대학이 설치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국 대부분의 지역이 공공의대 및 공공병원 설립 등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을 원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단국의대 박형욱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공공의대 설치 논의는 정치적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정책의 실효성을 따지기보단 의대 설치 자체를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강력 대응 필요” 주장부터 “수가조정‧기존 의대 활용” 제언까지
의료 전문가들은 우선 공공의대 설치 문제가 국정과제로까지 언급되는 상황에 반감을 드러냈다. 의료계가 당장 나서서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우봉식 소장은 "정부가 공공의대 설립을 국정과제로 추진하겠다는 것은 국회가 법안을 발의한 수준과 전혀 다른 문제"라며 "대통령에게까지 업무보고가 이뤄진 수준이라면 없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의료계가 당장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선대위 보건바이오의료정책분과 위원장을 맡았던 연세의대 박은철 예방의학과 교수도 "공공의대 문제는 공약집에도 없었고 선거 때도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이었다"며 "보건복지부 장관이 공석이 된지 너무 오래되다 보니, 정책 자체가 구체적인 수치적 산정없이 바람에 휩쓸려 다니는 느낌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의학계 전문가들도 공공의대를 설립한다고 해서 지역 필수의료 기피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같은 맥락에서 필수의료 강화 측면에서 공공의대 설립 대신 기존 의과대학을 활용하거나 상급종합병원 수가 조정 등이 더 우선시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김장한 회장(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은 “각 과마다 모자란 의사 수가 다르고 이는 매년 바뀐다. 의사가 더 필요하면 의과대학을 더 늘리면 된다. 굳이 공공의대일 필요가 전혀 없다. 지금도 소아과, 산부인과 전문의가 없어서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상급종합병원 중심으로 수가를 재조정하는 것이 해법이라고 본다. 많이 보는 과에서 벌어서 적게 보는 과 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대대적인 수가 조정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은철 교수는 "지역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의사 증원은 필요할 수 있지만 그 방법이 공공의대 설립은 아니다. 현재 의사 수의 10% 정도를 기존 의과대학을 유지하는 수준에서 단계적으로 늘리는 방안이 가장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형욱 교수는 “공공의대 설립 문제가 아직 크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라며 "오히려 그동안 정치적으로 이용돼 오던 공공의대 문제를 실제 정책으로 실행할 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부작용과 어느 지역에 필요한지, 다른 대안은 무엇이 있는지 등 다양한 논의가 시작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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