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6.09 07:25최종 업데이트 24.01.2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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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료 최강이라는 영국 NHS 들여다봤더니…환자 절반이 암 선고 받고 두달 넘게 병원 못가

의사 임금은 오히려 15년간 25% 삭감, 진료 대기 환자는 12년만에 250만에서 720만으로 증가

 
[특별기획] 영국 NHS 의료체계 붕괴, 한국 공공의료 방향성은 

영국 공공의료체계인 국민보건서비스(NHS)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최근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상황에서 영국 소비자 물가가 10% 이상 올랐지만 영국 의사들의 실질 임금은 오히려 하락하면서 여러 문제가 연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최근 의사 파업까지 진행 중이다. 여기에 NHS 만성 재정 적자 문제가 겹치면서 영국 의료 인프라는 말그대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심지어 암 선고를 받고도 62일 내에 치료를 받는 환자가 55%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NHS 실패 사례를 토대로 국내 공공의료 정책 방향을 재설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①공공의료 최강이라는 영국 NHS 들여봤더니…환자 절반이 암 선고 받고 두달 넘게 병원 못가
조 단위 NHS 재정 적자…한국 의료, NHS 공공의료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질라
 
영국 NHS 소속 전공의들이 오는 14일 3차 파업에 나선다. 이들은 임금 35%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영국의사협회(BMA)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국민보건서비스(NHS)가 위기를 겪고 있다. 의사들은 진료를 멈췄고 의료 체계는 사실상 붕괴 수준이다. 진료 대기 중인 환자만 720만명이 넘는데 이는 12년 동안 3배 가량 증가한 수치다.

현재 NHS 소속 전공의들은 실질 임금을 요구하며 파업 중이다. 이들은 이미 지난 3월과 4월 각각 72시간 파업을 두차례 진행했고 6월 14일부터 17일까지 3차 파업을 준비 중이다. 영국 전공의들은 물가인상률을 반영한 임금 35%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15년 동안 의사 급여는 오히려 삭감…'임금동결'과 '근로시간 제한'이 문제
 
9일 영국의사협회(BMA) 통계에 따르면 영국 전공의들의 급여는 15년 간 25% 가량 삭감됐다. 이들의 실질 임금이 줄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임금동결과 근로시간 제한이다. 

BMA에 따르면 NHS 의사들의 임금동결은 2009년부터 본격화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되고 영국 은행들이 대거 흔들리면서 영국 정부가 은행들을 살리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 같은 신분으로 분류되는 NHS 소속 의료인에 대한 임금은 6년 가량 동결됐다.  

의사 근로시간 제한은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정책 시행 전까진 전공의들이 필요에 따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효율적으로 일하고 수련받는 시스템이었지만 근로시간 제한으로 주 48시간으로 상한이 생겼다. 

실질 임금을 낮추는 간접적인 이유도 존재한다. 우선 매월 의사 연금 납입액이 증가한 부분이 크다. 의사연금은 영국 내에서 군인연금 다음으로 금액이 큰 편에 속한다. 퇴직 이후 연금을 기다리면서 그나마 영국에서 NHS 소속 의사로 일하는 의료인이 대부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연금 월 납입액이 월급의 6.5%에서 최근 9%로 오르면서 의사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연금을 통해 받게 되는 액수는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매월 납입하는 비용만 늘어나면서 실질 소득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외 ▲의료인 면허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교육 프로그램 비용이 2배 가까이 상승한 점, ▲무료로 제공되던 숙소가 유료로 전환된 점도 현지 의료인들의 불만을 가중시키는 이유 중 하나다. 

실질 임금이 줄면서 의사도, 의료진들도 영국 의료계를 떠나고 있다. 2016년 의사 파업 이후 2017년에만 9000명 가량이 NHS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BMA SAS위원회(specialist, associate specialist and specialty doctors committee) 모히테(Ujjwala Anand Mohite) 의장은 "동료들이 급여 기관인 DDRB의 권고에 따라 연간 급여 인상에서 제외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정부가 발표하는 인플레이션이 의사 급여 인상분에 포함돼야 한다"며 "급여 인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NHS 운영을 위한 의사들의 역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다리다 다 죽는다…진료 대기 환자, 12년만에 250만→ 720만 증가

만성적인 재정 적자와 더불어 의료인들이 대거 영국을 떠나면서 질병 대기 기간은 최대 1~2년까지 늘어난 상태다. 짧게는 4~8개월이면 되는 경우도 있지만 NHS에 따르면 진료 대기 중인 환자만 720만명이 넘는다. 

실제로 지난해 NHS 통계에 따르면 영국 전국 의료기관 잉여 병상률은 단 2%에 불과하다. 이미 병상 100개 중 98개가 꽉 차있어 새로운 환자를 받을 여력이 없다는 뜻이다. 
 
NHS 의료기관 치료 대기자 수. 사진=NHS Key Statistics, House of Commons: UK Parliament.


2023년 3월 영국의회가 발간한 'NHS 핵심 통계' 보고서를 살펴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NHS 의료기관 치료 대기자 명단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250만명선에 그쳤으나 2012년부터 2020까지 점진적인 증가세를 보이다가 코로나19 대유행 초기에 소폭 하락하다가 2021년부터 다시 급격한 증가세(2023년 현재 720만)를 보여 연일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다. 

병실 부족으로 인해 병원 응급실에서 4시간 이상 보내는 환자의 비율도 꾸준히 증가 중이다. 이 같은 사례는 2015년까지 10% 미만을 유지했지만 2015년부터 꾸준히 상승해 2023년엔 응급실에 오는 환자의 50% 정도가 4시간 이상 대기하는 실정이다. 

특히 지난 2년 동안 긴급 입원 결정이 이뤄졌지만 12시간 이상 대기해야 하는 환자 수도 크게 증가했다. 2021년까진 입원 결정 후 12시간 이상 대기하는 환자가 0명에 가까웠지만 2022년부터 급격히 상승 중이다. 

심지어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는 암 수술 대기 시간도 점차 길어지고 있다. 

NHS는 암 환자를 일반 주치의(GP)가 긴급 의뢰할 경우, 2주 이내에 치료를 시작하고 62일 동안 1차 치료를 완료하도록 하고 있다. 영국은 정상적인 의료체계에선 62일 내에 암 수술을 받은 환자가 85% 정도로 유지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최근 62일 내 암 환자 진료 수치가 55% 미만으로 떨어졌다. 즉 암 선고를 받고도 두달이 넘도록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가 절반 가량되는 셈이다. 이는 NHS 역대 최저치다.  
 
NHS 병원 응급실에서 환자가 4시간 이상 대기하는 비율. 
 
긴급입원이 허가된 이후에도 12시간 넘게 대기하는 환자 수. 
 
GP 의뢰 후 치료를 위해 62일 미만 대기 중인 환자 비율. NHS는 적정 비율을 85% 이상으로 잡고 있지만 최근 55% 미만까지 떨어졌다. 


최근 떠오르는 또다른 NHS 문제는 입원이 필요없는 환자들이 병실을 차지하고 고령환자들의 퇴원 지연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국가감사원(NAO: National Audit Office)에 따르면 영국에서 최초에 응급 환자로 입원한 고령 환자의 3분의 1은 더 이상 입원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NHS 전체 병원 입원일 중 65세 이상 고령 환자의 입원일이 62%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많다. 

더 이상 급성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고령 환자가 270만 개 병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NHS가 부담하는 비용은 8억 2000만 파운드(약 1조 3354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NHS 병원의 54%가 고령 환자의 퇴원 지연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신속한 퇴원 계획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자택 요양 서비스 부족은 퇴원이 지연되는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혔으며 요양원 배치와 요양시설 간병 배치로 인한 지연도 급증한 것으로조사됐다.

상황이 이렇게되자 영국 시민들은 오히려 해외 원정 진료를 선택하고 있다.

영국 국가 통계국(ONS) 자료를 살펴보면, 2019년 한 해에만 해외 원정 치료를 떠난 영국인 수는 24만8000명이다. 2015년 12만명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4년 만에 2배 이상 급증한 셈이다. 영국을 떠난 환자들은 대개 지리적으로 가깝고 진료 비용이 저렴한 리투아니아 등 주변국으로 원정 진료를 떠나고 있다. 
 
2015년과 2020년 한국과 영국의 의료지표 비교 표. 사진=OECD Health Statistics 2022 자료, 메디게이트뉴스 재가공. 


NHS 시스템의 비효율은 한국과 비교해보면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2020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의료비는 영국이 12%로 한국(8.4%)에 비해 월등히 높지면 암 사망률과 회피가능 사망률, 영아사망률, 총 병원 병상 수, 환자 1인당 병원 평균 재원일수 등 모든 의료 지표에서 한국보다 낮은 수준에 있다. 

영국 버밍엄 의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영국 맨체스터대학교 국립일차의료연구센터 연구원을 지낸 한양의대 한동운 교수는 "영국 NHS 시스템에서 가용할수 있는 재정이 부족하다 보니 의료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요즘 영국 정부의 정책 추세를 보면 오히려 인건비 등 전반적인 비용을 더 줄이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문제 해결이 요원한 상태"라고 말했다.  

하경대 기자 (kdha@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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