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2.06.03 05:56최종 업데이트 22.06.03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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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무의미한 수가협상, 의료계는 왜 ‘고시제’로 돌아가자고 했나

밤샘 협상을 하고서도 아무도 웃지 못하는 수가협상의 비극...재정운영위 공급자단체 입장 반영 필요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16년간 9번의 ‘결렬’. 지난 2008년 유형별 수가협상이 시작된 이래로 대한의사협회가 의원급 의료기관의 수가협상으로 받은 성적표다. 올해도 의원급은 협상 성적표에 '결렬'이란 단어를 추가했다.
 
하지만 올해 수가협상 결렬은 어느 때보다도 뼈 아프다. 코로나19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았고, 임금인상, 물가상승 등으로 개원가의 경영 상태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건보재정 흑자와 누적 적립금 20조원 돌파 소식에 이번 수가협상에 기대감을 보였던 대한의사협회 수가협상단은 그야말로 절망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측이 제시한 최종 인상률은 2.1%였는데, 이는 지난 2009년도 협상에서 받은 수치와 동일한 역대 최저 인상률이다.
 
의협 수가협상단은 ‘분노’를 넘어 ‘모멸감’을 느낀다고 했다. 특히 의협의 화살은 수가 인상을 위한 추가재정소요분(밴딩)을 결정하는 건보공단 재정운영위원회를 향했다.
 
수가 인상률은 정해진 밴딩 범위 내로 제한되기 때문에 재정운영위의 결정은 수가협상 결과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올해 협상에서는 재정운영위가 가진 강력한 권한이 더욱 두드러졌다. 통상 1차 밴딩은 재정운영위 소위원회(재정소위) 2차 회의 이후 나왔었는데, 올해는 재정소위 3차 회의가 끝난 협상시한 당일인 5월31일 밤에서야 나왔다. 협상시한 종료를 불과 3시간여 앞둔 시점이었다.
 
하지만 공급자 단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협상 시한일 전날 재정운영위를 규탄하는 공동 성명서를 내는 것 뿐이었다.
 
결국 협상은 밤을 새워 6월1일 오전까지 진행됐고 밴딩 결정이 늦어진 탓에 협상종료까지 예년보다도 더 긴 시간이 소요됐다. 법정 시한은 무의미했고, 제시된 밴딩도 공급자 단체들의 요구와는 큰 간극을 보였다.
 
이에 의료계 일각에선 다시 고시제로 돌아가는 게 낫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수가 인상률은 과거 정부가 일방적으로 고시했으나, 의료계의 요구로 법 개정을 거쳐 2000년부터 계약제로 변경됐고 2008년부터는 유형별 계약제가 도입됐다.
 
수가협상에 참여한 대한일반과의사회 좌훈정 회장은 1일 아침 6차 협상을 마치고 나오며 재정운영위에 비난을 쏟아냈다. 그는 “차라리 재정운영위가 인상률을 정해 그냥 통보만 하라”라고 일갈하며 협상장을 떠났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우봉식 소장은 1일 페이스북에 “역사의 아이러니다. 수가계약제, 심평원은 과거 의료계에서 환영한 내용들”이라며 “일단 제도가 만들어지면 관료들은 계속 권한을 확장하려 한다. 지금의 수가계약제도는 폐기하고 고시로 처리하는 게 차라리 나을 것”이라고 허탈감을 표했다.
 
공급자 단체들과 직접 협상에 나서는 건보공단 수가협상단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재정운영위가 결정한 밴딩 내에서만 인상률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의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좌 회장이 “건보공단 협상팀은 허수아비냐”고 목소리를 높인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앞서 2020년도 수가협상에서는 당시 건보공단 강청희 급여상임이사가 “난감할 정도의 (낮은) 밴딩이 제시돼 공급자 단체에 이해를 구하고 협상을 시작하는게 맞다”며 협상에 앞서 공급자 단체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일도 있었다.
 
올해도 예년과 다르지 않았다. 건보공단 이상일 급여상임이사는 수가협상 종료 후 브리핑에서 올해 재정운영위에서 결정된 밴딩이 공급자 단체들의 기대와 간극이 매우 컸다고 털어놨다.
 
공급자 단체들이 요청한 인상률을 합하면 2조9000억~3조9000억원 정도의 밴딩이 필요했지만, 재정운영위가 제시한 1차, 2차 밴딩은 1조원을 크게 밑돌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단과 공급자 단체간 협상이 가능한 수준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건보공단은 올해 초부터 가입자, 공급자 측과 수십회에 걸쳐 간담회 등을 가지며 의견 조율을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정운영위가 내놓는 밴딩이 협상에 미치는 절대적 영향력을 생각해보면 그 같은 노력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현재 밴딩을 결정하는 재정운영위원회는 직장 가입자 대표 10인, 지역 가입자 대표 10인, 공익 대표 10인 등으로 구성된다. 공익 대표 측에 의료계 인사 일부가 포함돼 있지만 의료계가 실제로 큰 영향력을 미치기 힘든 구조다.
 
이에 의료계는 최소한 밴딩 설정 과정에서 공급자 단체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재정운영위 구조를 개선해달라고 강조했다.
 
실제 올해는 최초로 공급자 단체들이 재정소위에 입장을 전하는 자리가 마련되기도 했다. 의협 김동석 수가협상단장이 3차 재정소위에서 10분여의 시간을 할애받아 공급자 단체들이 처한 어려움과 수가 인상의 당위성을 피력했다.
 
앞으로는 가입자와 공급자들이 직접 만나 소통하는 자리가 더 많아져야 한다. 더 나아가 밴딩 결정 과정에 공급자 단체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제도 개선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무의미한 밤샘 협상을 하고서도 아무도 웃지 못하는 수가협상의 비극은 영원히 반복될 수밖에 없다. 

박민식 기자 (mspark@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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