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엔 개정판이 없다. 현재까지는.
그래서 대단하고 신기하다.
400년 동안 '변함없이' 한 분야의 교과서 역할을 하고,
그 기간에 한 번도 오류에 대한 도전을 받지 않았으며,
그래서 2000년대에 사는 우리가 1600년대에 살던 조상님과 같은 수준의 지식을 공유하게 만드는, 이 '의학서'의 성격이 드러난다.
반대로 의학의 역사는 '변화'와 함께였다.
그놈의 '선서'로 일반인까지 잘 알고 있는 히포크라테스.
히포크라테스는 의학사에 중요한 인물이지만, 현재 그의 의학을 활용하는 의사는 없다.
그가 이룩한 학문적인 업적을 후세 의사는 부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히포크라테스가 이룩한 의학은 대단했다.
'고대'라는 시대 보정을 통해서 말이다.
Tinsley Harrison <사진 출처 : www.newsouthbooks.com>
의사에겐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해리슨 내과학'조차 많은 내용이 끊임없이 바뀌었다.
1950년에 처음 선보인 이 책은 '짧은 역사' 동안 무려 19판까지 나왔다.
얇은 한 권으로 1판을 시작했던 해리슨 내과학은 회가 지날수록 내용이 추가되고 수정되면서, 현재는 제법 두꺼운 두 권짜리가 됐다.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건, 의학이 '근본 없는 녀석'이기 때문이다.
현대 의학은 스스로 불완전하다는 걸 깨닫고, 끊임없이 현재를 부정하며 진화했다.
한의학이 철학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자기 근본을 부정하는 데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을 '400년 동안 묵혔던 책'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
'태아의 성별 변화'나 '투명 인간', '손금' 따위가 언급된 책 말고,
이젠 제발 제대로 된 동의보감 개정판 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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