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살고있는 의사 친구로부터 천연두 백신 원료인 우두(cowpox) 바이러스를 변형해 개발한 암치료제의 임상시험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기고 중이던 치매에 대한 글을 잠시 미루고 이 기회에 바이러스와 암의 연결고리, 항암면역치료제 바이러스 T-VEC의 성과, 다른 면역치료제 바이러스 개발 가능성 및 바이러스 치료제를 다른 면역치료제(예: PD-1/PDL-1, CTLA-4 inhibitors, CAR-T)와 사용했을 때 만들어 질 시너지 효과를 알아봤다.
다양한 바이러스들이 사람에게 질병을 일으킨다. 인류는 바이러스가 퍼뜨리는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바이러스 혹은 바이러스 유래물을 이용해 백신을 개발했다. 겨울철에 흔한 독감을 예방하기 위해 독감백신을 맞으면 독감에 대한 면역이 높아진다. 연구자들은 바이러스를 질병 예방용 백신 뿐 아니라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악성종양 치료제로 개발했다. 과학자들은 어디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얻었으며, 바이러스의 역할과 바이러스의 효용이 얼마나 더 개발될까 궁금해진다.
바이러스가 암세포를 죽일 가능성은 광견병균을 약화시켜서 제조한 백신을 맞은 사람의 암조직이 사라지는 경험을 목격한 1900년대부터 시작됐다. 그때부터 바이러스를 암 치료제로 개발하기 위한 시도가 간헐적으로 이뤄졌다. 대부분 실험은 암세포를 죽일 수 있도록 만든 바이러스들이 사람들에게도 독성을 나타냈기 때문에 실패했다. 정상세포는 손상시키지 않고 암세포만 공격할 수 있는 바이러스를 개발해야 했다. 간혹 사람에게 독성이 약한 바이러스들이 만들어지기는 했으나, 피부 혹은 간과 같은 특정한 조직에 있는 암세포만 죽이는 한계를 보였다.
계속된 실패속에 2015년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암 치료용 바이러스가 개발돼 2019년 현재까지 유일한 예로 남아있다. 이 치료제는 T-VEC(talimogene laherparepvec)으로 알려진 면역치료제다. T-VEC은 선택적으로 암세포만 죽이는 바이러스인데, 정상세포를 제외한 암세포 안에서만 분열해 개체수를 늘린 후 세포막을 터트리고 나온다(아래 Box 참조).
이 치료제는 사람의 입주위에 피곤할 때 물집이 생기게 하는 성가신 헤르페스 심플렉스 바이러스 1(herpes simplex virus 1, HVS-1) 게놈에서 유전자 2개를 제거하고 사이토카인의 일종인 GM-CSF(granulocyte macrophage colony-stimulating factor) 유전자를 첨가해 만들었다. 이 바이러스가 세포안에서 증식하는 동안 이 유전자로부터 면역세포 생산을 자극하는 단백질이 만들어 진다.
암 조직을 죽이는 바이러스는 일반 세포나 암세포에 비슷한 빈도로 들어가는데 정상 세포에서는 활동이 정지되지만 암세포에서는 왕성하게 증식된다(아래 Box 참조). 암세포 속에서 증식된 바이러스들은 세포막을 용해하고 세포 밖으로 나와 주위로 퍼진다. 막이 용해된 세포는 사멸되며, 세포막이 터질 때 새로 만들어진 바이러스들과 GM-CSF 단백질 및 암세포 항원들이 방출된다. 이들은 주위에 있는 암세포들은 물론이고 신체의 모든 영역에서 암세포를 제거하도록 면역 반응을 유발시킨다.
효능을 검사하는 3상 임상시험에서 수술이 불가능한 흑색종 환자 436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GM-CSF와 T-VEC의 효과를 비교했다. 기존 치료 방법대로 GM-CSF는 피하조직에 28주 간격으로 매일 14일간 주사하고 T-VEC은 암조직에 2주 간격으로 주사했다. 항암제 임상에서 1차로 관찰하는 생존기간 중앙값(median)이 기존치료법 18.9개월에 비해 23.2개월로 4.3개월 증가했고, 약효가 6개월 이상 지속되는 환자도 2.1%에서 16.3% 증가돼 2015년에 FDA 승인을 획득했다.
이 분야 연구자들은 10.8% 환자들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이 환자들은 T-VEC을 주사 받은 암조직과 신체의 다른 곳에 있는 암조직들이 모두 사라져 전신의 암이 완치됐다. T-VEC이 몸 전체에 암을 제거하도록 면역 반응을 촉발시킨 것처럼 보였다. 치료받은 10명 중에서 1명밖에 완치되지 않았으며, 모든 환자들을 고려하면 4.3개월밖에 생명이 연장되지 않은 결과는 크게 신통하지 않은 성공처럼 보일 수 있다. 당연히 치료효과가 전혀 없었던 환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말기 흑색종 환자를 치료한 점을 고려하면 항암 치료제로서 아주 좋은 결과였다.
치료과정도 감기 백신주사 맞는 것처럼 간단하다. 이 바이러스 암치료제는 부작용이 미미해 환자들의 건강과 일상생활에 영향이 적으며 삶의 질에도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는다. 또, 병원에 입원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담도 적다. 가장 큰 부작용인 발열과 두통은 아스피린이나 타이레놀을 먹으면 해결된다. 그러므로 시술 받은 날 바로 업무에 복귀할 수 있다. 이 치료제는 일선에서 종사하는 의사들과 환자들로부터 큰 기대를 받고 있었다. 기대에 맞게 바이러스를 이용한 치료법 덕분에 흑색종 암환자들의 생존율은 십년 전에 비하여 크게 향상됐다.
앞으로 CAR-T (chimeric antigen receptor-T)와도 병용치료법이 개발될 것으로 예상된다. 2019년 발표된 논문들에 따르면 말기 흑색종 환자 26 명 중 16 (61.5%)명이 완전히 치료되는 효과를 보였다(Franke et al. 2019. Int J Cancer. doi10.1002/ijc.32172; Louie et al. 2019 JACS 228:644-649). 26명 밖에 치료하지 않았으므로 아직 이약의 잠재력을 모두 이해하기는 어렵다. 다만 치료에 적합한 환자들을 선별하면 치료 효과를 훨씬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라 추측한다. T-VEC은 암세포를 용해시키는 최초로 승인 받은 현존하는 유일한 oncolytic 바이러스로 좋은 선례를 여러모로 만들어가고 있다.
현재 임상시험 중인 바이러스들 중 몇 가지는 멀지않은 미래에 FDA 승인을 받게 될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임상시험을 시작한 cowpox 바이러스는 상대적으로 초기 단계이지만 이런 바이러스들 중 한 가지다. Cowpox 바이러스는 소에 우두라고하는 붉은 점이 생기도록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이용해 천연두에 면역력이 생기도록 하는 백신을 만들어 사용했다. 이제 한 단계 더 진보해 미국 과학자 위만 퐁(Yuman Fong)은 이 바이러스의 게놈을 조작해 정상 세포는 공격하지 않고 다양한 고형암세포를 공격하는 신무기를 개발했다.
현재 치료하기 매우 어려운 삼중 음성 유방암, 흑색종, 폐암, 방광암, 위암, 대장암 등을 앓고 있는 모든 환자를 등록시켜 가장 효과적으로 치료되는 암종을 찾으려 한다. 전임상 동물 실험 결과 항암효과가 뛰어나지만 환자들에게 사용했을 때, 어떤 암에 가장 효능이 높을지 먼저 결정하고 그 이후에 한 가지 암을 선정해 임상시험 2/3상을 이어갈 것이다. 한가지 암에 대한 FDA의 승인을 받으면 그 이후에 적응증을 확장하기 위한 추가적인 임상시험을 시행할 것이다.
2013년 사이언스(Science)지의 '올해의 괄목할 발전'에 선정됐던 '면역관문 억제제'는 효과가 입증됐다. 그러나 이 요법이 일부환자들에게만 효능이 있었으므로 새로운 면역치료방법이 필요성이 대두됐다. 바이러스 면역치료는 그 자체로 새로운 면역치료의 장을 열어 갈 것으로 예견된다. 또 면역관문 억제제와 병용치료 방법을 개발하면 치료가능한 환자층을 대폭 넓혀 줄 것으로 기대된다. 첨단을 걷는 연구자들은 자연으로부터 끝없이 배우며 새로운 세상을 개척해가고 있으며 일부 연구는 선례가 없다. 선례가 없는 창의적인 연구를 위한 연구비를 받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어렵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선례가 없을지라도 연구가 가능한 환경이 만들어 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Box. 암세포만 공격하도록 개발된 안전한 치료용 바이러스 T-VEC
T-VEC은 herpes simplex virus 1(HSV-1)의 게놈에서 ICP34.5 유전자와 ICP47 유전자를 제거하고 싸이토카인 유전자 하나(GM-CSF)를 넣어서 제작했다. ICP 34.5가 제거된 바이러스는 정상적인 사람세포에서 단백질 합성이 저해돼 바이러스의 복제와 폭발적인 증식이 불가능하다. 그에 비해 흑색종 세포 내에서는 여전히 폭발적인 증식이 가능한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사람의 건강한 세포는 자신의 생존과 기능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단백질만 최소한으로 합성한다. 에너지 소비를 막기위해 단백질 합성이 너무 많이 만들어 지지 않도록 PKR라는 브레이크를 이용한다. 바이러스가 사람세포에 침투하면 이 브레이크의 작용을 무시한다. ICP 34.5는 브레이크를 무시하고 세포 안에 있는 단백질 생산 공장의 일부인 eIF-2의 기능을 활성화시켜 중단 없이 단백질 합성이 계속 일어나도록 한다. 사람세포는 모든 에너지를 사용해 바이러스 증식에 필요한 단백질들을 합성하며, 지속적으로 합성되는 단백질들을 이용해 폭발적으로 증식한다. 그러므로 자연형 바이러스가 감염되면 사람에게 해로우며 치료용으로 개발된 바이러스에는 이 기능을 제거한 것이다.
그런데 흑색종 세포 중에서 70% 정도는 BRAF나 NRAS에 암 유발 변이를 가지고 있는데 이들이 PKR의 활성을 억제하며 그 결과 단백질이 연속적으로 생산된다. 암세포는 PKR의 활성을 억제해 주위의 건강한 세포들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증식만 하도록 이기적으로 변화됐다. 즉, 암세포에서는 PKR의 기능이 억제됐으므로 지속해서 단백질이 합성되며, 그 결과 ICP34.5를 제거한 바이러스도 덩달아 증식할 수 있게 됐다.
ICP47은 MHC class 1에 항원이 결합하지 못하도록 한다. 항원이 항원을 면역체계에 소개시켜 주는 세포(antigen presenting cell)의 표면에 있는 MHC에 결합된 후에 이 단백질에 대하여 면역반응이 일어날 것인지 결정된다. ICP47은 건강한 세포에서 바이러스 단백질을 생산하더라도 면역세포들이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스텔스 기능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ICP47을 제거하면 바이러스 단백질 뿐 아니라 암세포 항원들이 MHC와 결합을 촉진해 면역반응이 잘 일어나도록 해 준다. 결과적으로 종양 세포에서는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한 면역 반응을 활성화시키며, 그 반대로 정상 세포에서는 HSV-1의 면역기능 회피기능을 제거했으므로 환자에게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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