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6.02 07:21최종 업데이트 23.06.02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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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증 환자 보내서라도 중증 환자 받아라?…"현장이 아닌 정치를 위한 응급실 대책"

경증 환자 민원 폭증에 경중 구분도 모호…지방은 야간에 돌려보낸 경증 환자 갈 곳 없고 응급실 종합상황판도 제 역할 못해

사진=게티이미지뱅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응급 환자가 치료할 병원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당정이 나섰지만 의료계에선 기대보단 우려가 크다. 

내용이 구체적이지 못하고 현실성이 없어 응급의료 현장이 개선되기 보단, 면피용 정책으로 그칠 확률이 높다는 게 현장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정책은 중증 환자 위주로 응급실에서 수용하도록 했지만, 당장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은 경증과 중증의 구분이 모호하고 법적 책임에서 의료진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응급환자 구급차 내 사망 이어져…당정 "경증 환자 보내서라도 중증 환자 받아라"

2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새벽 경기 용인시에서 후진하던 차량에 치인 70대 환자는 인근 대형병원 12곳에 확인한 결과 수용을 거절 당하고 구급차에서 심정지가 발생해 숨을 거뒀다. 

지난 3월에도 대구의 한 건물에서 추락한 10대 환자가 이송될 병원을 찾다가 2시간 넘게 응급실을 전전하다 심정지로 숨졌다. 두 사례 모두 응급실이나 중환자실 병상이 부족하거나 응급 의료진이 없다는 게 수용 거부 이유였다. 

실제로 응급 환자를 수용하지 못하고 돌려보내는 이송 건수는 최근 늘어나는 추세다. 119구급 서비스 통계에 따르면, 응급실 수용 거부로 재이송된 건은 2021년 기준 6771건에 달했다. 이는 2018년 4636건에 비해 46%나 증가한 수치다. 구체적인 재이송 이유론 '병원에 전문의가 없다'는 응답이 31.4%(2127건)로 가장 많았고 '병상 부족'이 17.1%(1156건) 그 뒤를 이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국민의힘과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31일 오후 '응급의료 긴급대책 당정협의회'를 개최하고 대안을 내놨다. 

당정은 최근 발생한 응급의료 문제와 관련해 ▲수술환자·중환자실 병상 부족 ▲경증 환자로 인한 응급실 과밀화 ▲구급대와 의료기관 간의 정보 공유체계 미비를 근본 원인으로 판단했다. 

이에 구체적인 대안으론 ▲지역응급의료상황실 설치(응급 환자 이송 및 전원 지휘) ▲지역응급의료센터를 통한 응급 환자 이송시 해당 병원 수용 의무화 ▲병상 부족시 경증 환자 병상에 중증 응급환자 배정 확보 우선 등 내용이 발표됐다. 

지원 대책에 대해서도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비번인 외과 의사가 응급수슬을 집도하면 응급 의료기금을 통해 추가 수당을 지원하는 방안도 강구할 것"이라며 "중증 응급의료센터 특수근무수당 등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31일 오후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서울 여의도 국회 회의실에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측 인사들과 응급의료 긴급대책 당정협의회를 개최하고 응급의료 인프라 확충을 위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국민의힘


이미 경증 환자는 응급실 병상 사용 안해…경중 구분도 모호

그러나 당정 대책에 대해 의료계는 기대보단 우려가 크다. 특히 경증 환자를 내보내고 중증 응급환자를 대신 수용하겠다는 주장엔 '현장이 아닌 정치를 위한 대책'이라는 쓴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미 현장에서 중증 환자 위주로 병상을 배치하고 있어 실효성이 없고 이를 강제화할 경우 또 다른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현장 지적의 골자다.

전남대병원 류현호 응급의학과 교수(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는 "우리 병원은 응급실 병상이 36개고 환자는 60명 가량이다. 이중 25명 정도는 경증 환자인데 이미 경증 환자들은 현장 상황상 서있거나 앉아있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류 교수는 "당정이 내놓은 정책의 의도는 알겠다. 그러나 현장과의 괴리감을 느껴 허탈하다. 개선되지 않고 반복되는 정책의 발표에 아쉬움이 크다"고 덧붙였다. 

응급실이 내보내야 할 경증과 중증의 구분이 모호하고 법적 책임에서 의료진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용인세브란스병원 이경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중증인지, 경증인지는 검사를 해봐야 한다. 문진단계에서 경증이니 나가달라고 해도 민원이 많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며 "경증환자를 내보내는 과정에서 이후 병세가 악화되면 이에 대해 응급실 의사가 법적인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수도권의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실 내 경증환자를 줄여야 한다는 취지는 공감한다. 그러나 어떻게가 빠졌다. 어느 선까지 경증환자를 내보낼 것인지 구분도 모호하고 혹시 내보냈다가 나중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며 법률 다툼으로 이어질 소지도 다분하다. 이번 대책은 현장이 아닌 정치를 위한 대책"이라고 말했다.

부산대병원 조석주 응급의학과 교수는 "이전에 홍남기 부총리 아들이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응급환자가 아닌데도 3일 동안 입원한 사실이 있다. 이번 대책으로 아무것도 없는 환자는 쫒아내고 돈과 빽이 있는 환자는 입원시키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지방이나 소아 응급환자는 상황 또 달라…단기간에 풀 문제 아냐

경증 환자를 돌려보낼 병원이 없는 지방의 경우 정책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류현호 교수는 "광주 전남 같은 지방의 경우 야간과 주말에 안과나 이비인후과 응급진료가 되는 병원이 없다. 이들 환자를 경증이라고 돌려보내면 이들이 갈 곳이 없다"며 "수도권과 달리 지방에선 전혀 현실성이 없는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소아 응급환자의 경우처럼 아예 경증환자 전원이 어려운 경우도 허다하다. 익명을 요청한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교수는 "소아의 경우 약물 용량도 굉장히 섬세하게 조절해야 하고 개별 사례가 다 다르다. 시간 경과에 따라 증상 변화 등이 급격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경증이라고 도중에 환자를 전원시키는 일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응급실 과밀화 문제가 단기간에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제언한다. 특히 오히려 단순하게 접근했다가 오히려 더 큰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응급실 문제를 너무 조급하게 접근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절대 성급해선 안 된다. 장기적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라며 "배후진료능력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선 응급환자가 이송되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며 "최소한의 중증외상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중환자실과 응급외상수술팀 등 배후진료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근본적으론 상급병원 과밀화를 해소하고 취약지 응급의료 인프라 확충에 힘써야 한다"며 "비정상적인 응급실 이용 행태를 해결하기 위한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응급실 종합상황판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중앙응급의료센터는 종합 상황판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상황판을 통해 응급실, 중환자실, 질환별 상황 등 세부 항목을 입력해 조회하지만 실시간 정보가 업데이트 되지 않아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교수는 "종합상황판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가 잘 안된다. 특히 격리실 등은 청소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해서 상황판과 현장의 괴리가 있다"며 "이 때문에 병원에서도 이를 100% 활용하지 못하고 전원에 있어서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형민 회장도 "현재 종합상황판은 응급실 간호사들이 입력하고 있다. 그런데 응급실이 과밀화면 이들이 진료에 투입되고 실시간으로 입력이 안 되고 있다. 믿지 못하는 정보가 되는 것이다. 이에 같은 병원 안에서도 중환자실로 보낼 때 따로 병상이 남아 있는지 전화를 해야 한다. 비용 대비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의료계 관계자는 "해마다 반복되는 구호만 있는 응급의료 대책이 아닌 현장에 맞는 대책이 필요하다"라며 "보건복지부가 책임을 지고 응급실에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의사, 응급실을 보유하고 있는 병원 등 이해당사자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콘트롤 타워를 구성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경대 기자 (kdha@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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