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현지조사를 한 날로부터 8여년 후에 의사면허정지처분을 했다면?
법원이 복지부의 이 같은 늑장처분에 대해 제동을 건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특히 이번 판결은 대한의사협회가 추진중인 의료인 행정처분 시효제도 도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서울행정법원 제4부는 지난 5월 보건복지부가 A정형외과의원을 운영중인 K원장에게 면허정지 1개월 처분한 것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이 사건은 지난 2005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복지부는 A정형외과의원의 2004년 4~9월치 요양급여 전반에 대해 현지조사를 벌였다.
복지부는 현지조사 결과 A정형외과의원이 일부 수진자에게 단순운동치료를 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실시한 것처럼 허위로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한 사실을 적발했다.
그런데 복지부는 어찌된 일인지 현지조사일로부터 7년 8개월이 지난 2012년 10월에서야 면허자격정지 1개월 처분을 통보했다.
그러자 K원장은 행정처분이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으로 맞섰다.
K원장은 "복지부는 2007년 7월 의사면허자격정지처분을 사전 통보했는데 그로부터 4년 동안 아무런 처분을 하지 않다가 2011년 6월 자격정지처분 안내 공문을 보내 갑자기 처분을 했다"면서 "이러한 행위는 정당한 신뢰에 반한다"고 항변했다.
법원은 K원장이 허위청구한 사실이 있어 처분사유가 존재하지만 처분을 지연한 것을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현지조사 후 7년 8개월 이상 경과하고, 처분 사전 통지와 의견 제출 후에도 4년이 지나서야 처분이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K원장은 이 기간 동안 불안정한 지위에 있었다고 할 것인데, 복지부가 처분에 이르기까지 위와 같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볼만한 합리적인 사정을 찾기 어렵고, 이와 같은 처분 지연의 사정을 형량 요소로 참작한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원고의 허위청구비율은 면허정지처분의 기준인 0.5%를 0.02% 초과한 0.52%이고,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8만 4천원 정도"라면서 "이런 사정을 종합해 보면 이 사건 처분은 참작해야 할 형량요소를 고려하지 않았거나 이익형량을 잘못해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위법이 있다"며 면허정지처분을 취소하라고 선고했다.
이 같은 판결은 매우 이례적이다.
현재 변호사나 공인회계사 등은 처분 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3년이 경과하면 징계 또는 자격정지처분을 할 수 없도록 시효제도를 두고 있다.
변호사법 상 시효 규정
하지만 의료법에는 의료인에 대한 행정처분 시효가 없어 처분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기간이 아무리 경과해도 업무정지나 면허정지, 면허취소 등의 행정처분을 할 수 있다.
법원 역시 의료법에 처분 시효 규정이 없어 복지부의 처분에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취해왔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이 기존 판결과 달리 복지부의 늑장처분에 제동을 걸고 나서, 의료인 행정처분에도 시효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료계의 주장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박인숙 의원은 면허자격정지 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5년이 경과하면 처분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상태이며, 의사협회 역시 시효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1심 패소에도 불구하고 항소를 포기해 K원장에 대한 면허정지처분에 하자가 있음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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