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1.01.29 07:52최종 업데이트 21.01.29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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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민족주의? 혹은 백신 평등주의?

[칼럼] 배진건 이노큐어 테라퓨틱스 수석부사장·우정바이오 신약클러스터 기술평가단장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이 지구는 정말 하나일까? 코로나19는 정말 고약하다. 젊은이와 나이든 사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 등이 하나가 되지 못하도록 분명한 구별을 만든다. 코로나19가 온 세상 사람들을 이런 저런 모양으로 심히 괴롭히더니, 백신 개발이 민족주의의 새로운 전쟁터가 되며 이제는 '백신 민족주의(Vaccine Nationalism)'까지 만들어냈다. 백신 민족주의는 개발된 백신 수출을 금지하거나 자국 백신 산업을 국유화하는 극단으로 갈수도 있다.

지구의 코로나19와의 심각한 전쟁 중 꼭 필요한 방어 무기는 백신이다. 백신을 맞아 집단감염이 일어나지 않으면 봉쇄조치와 일상생활의 제약과 그렇게 가고픈 다른 나라 여행이 풀릴 수 없다. 어떻게 77억 인구에게 백신을 균등히 접종할 것인가? 수십억 명의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계속 백신 접종을 기다리게 된다면 어떻게 지구를 코로나로부터 보호할 것인가? 지구상 어느 한 지역에서라도 바이러스가 존속하면 결국은 세계로 확산될 수밖에 없기에 지구상의 모든 사람에게 아무 차별없는 백신에 대한 접근권이 필요하다.

저소득 국가도 백신을 공급하겠다는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는 무엇인가? 화이자/바이오엔텍 백신이 임시사용 허가를 받고 접종이 임박해 올 무렵 대한민국 정부의 백신 확보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지난해 11월 23일 정례브리핑에서 질병관리청 정은경 청장이 1000만명분의 백신은 국제 백신협약 코백스를 통해 이미 확보됐고 나머지 2000만명분은 업체별로 경과가 다르지만 일부는 계약서 검토 단계라고 발표했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코백스가 우리에게 백신 공급할 좋은 회사(?)라고 어렴풋이 각인됐다.

코백스 퍼실리티는 세계백신면역연합((The Global Alliance for Vaccine and Immunizations, GAVI), 전염병대비혁신연합(Coalition for Epidemic Preparedness Innovations, CEPI),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해 공동으로 운영된다. 이런 단체들은 지구 상의 모든 사람에게 아무 차별없이 코로나19에 대한 접근권이 필요하다는 '평등주의'에 기초해 행동한다. 코백스는 당초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등 91개 국가의 전체 인구 중 가장 취약한 20%에 백신을 접종하는 것을 목표로 출범했다. 그러나 이제는 적시에 비용 효과적으로 백신을 확보하고자 하는 184개 국가와 경제 지역이 참여하고 있다.

GAVI와 WHO는 이름으로도 알만한데 CEPI는 또 무엇인가? CEPI는 2014년 에볼라가 퍼질 때 의료진이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아무것도 없다는 뼈아픈 경험에서 시작했다. 전염병의 발생은 잠재적인 위협이기 때문에 시장 형성이 되지 않고 또한 상업적 매력이 없기에 빅파마들의 관심이 적다. 가난한 나라에서 에볼라 창궐은 백신의 사전개발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CEPI는 2017년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에서 65억 달러의 자본금으로 공동 설립된 비영리 단체로, 주로 저개발국에서 유행하는 감염병 예방 및 치료 백신개발을 목적으로 한다. 앞으로 다가올 잠재적인 전염병의 위험에 대비해 백신의 사전개발 및 비축을 위한 연합연구집단(CEPI)으로 출범했다.

SARS-CoV-2가 창궐하자 CEPI는 재빠르게 백신 치료제 개발을 위한 1억 2500만 달러 펀딩으로 'COVID-19 Therapeutics Accelerator'를 런칭했다. 그리고 투자 대상으로 지난해 2월 큐어백, 이노비오, 모더나가 먼저 선정됐고 이어 3월 노바백스와 옥스퍼드대학이 선정돼 투자 총액은 2307만 달러에 이른다. 이렇게 코로나가 시작하자 CEPI가 인류 평등을 위해 발 빠르게 큰 돈을 쓰고 있지만 빌 게이츠가 암호를 심어 놓은 백신을 맞으면 큰 일 난다는 수퍼과학적인 주장을 페이스북에서 만날 수 있다. 빌 게이츠가 노벨평화상을 받아도 모자란 상황에서, 일부 음모론자들은 백신이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 '666의 인(印)'을 찍어 놓기에 백신을 맞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며 사람들을 세뇌한다.

백신 평등주의 분배 원칙에 따라 코백스 참여 국가들은 최근 발표된 WHO의 가치 모형에 기반해 전 세계 사람들이 백신을 공급받게 되고 향후 백신 사용에 대한 지침도 따른다. 미국 듀크대 글로벌보건연구소가 지난해 11월 11일 홈페이지에 올린 보고서에 따르면 이미 95억회 분량의 백신이 '예약'됐다고 한다. 고소득 국가가 34억회분, 중상위소득 국가가 6억 4900만회분, 중저소득 국가가 17억회분을 확보했다. 코백스는 약 7억회분을 확보했는데 저소득 국가는 여기에 의존해야 한다. 돈 없는 평등주의가 돈 많은 민족주의에 지고 있는 현실이다.

코백스는 아스트라제네카(AZ), 노바백스, 사노피/GSK 백신 등과 총 4억 회분의 백신을 계약했으나 법적 구속력은 없는 상태다. 결국 구체적인 백신 확보 시기는 물론 어떤 백신을 구매할 수 있을지도 결정되지 않았다. 당근 코백스를 통해 1000만명 분의 백신을 들여올 예정이었던 우리나라 정부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것은 분명하다. 코백스를 출범시킨 GAVI 이사회는 지난해 12월 15일 "자금 부족, 생산 리스크, 복잡한 계약 체결로 백신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로 인해 목표 달성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구체적 목표는 1회당 3달러의 비용으로 2021년 말까지 최소 20억 회분의 백신을 배포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GAVI에 따르면 현재 코백스가 구매 계약을 맺은 백신 물량은 7억 회분에 불과하다. 이중 실제 법적 구속력이 있는 계약 물량은 단지 2억 회분이다. 백신을 공평하게 공급하기 위한 국제프로젝트 코백스가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기에 '백신 평등주의'는 심하게 흔들린다.

지난해 10월 28일 사노피/GSK는 코백스의 백신 평등주의 정신에 보탬이 되고자 규제 당국의 승인이 나올 경우 2억 도즈를 코백스에 지원하겠다는 의향서를 체결했다. 안타깝게도 사노피와 GSK는 지난해 12월 11일 면역증강 재조합 단백질 기반 코로나19 백신 프로그램이 고령자에서의 면역반응을 개선시키기 위해 개발이 지연된다고 발표했다. 백신 후보물질 임상 1/2상 시험의 중간 결과에서 백신을 접종받은 50세 이상의 고령자가 불충분한 항원 농도 때문에 낮은 면역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18세에서 49세 사이의 성인은 코로나19에서 회복한 사람에서 관찰되는 것과 유사한 면역반응을 보였다. 사노피의 재조합 기술과 GSK의 전염병 대유행 면역증강제는 인플루엔자에 대해 성공적으로 입증된 백신 플랫폼이다. 백신 명가 사노피/GSK 단백질 백신도 모든 연령층에 효과를 내지 못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백신 평등주의의 받침목은 지난해 12월 28일 미국 3상을 시작한 노바백스의 성공 여부에 달려있다. 노바백스가 기대를 모으는 이유는 다른 코로나 바이러스를 타겟으로 일했던 탁월한 경험 때문이다. 노바백스는 바이러스 표면에 위치한 스파이크 단백질을 항원으로 인식하는 항체를 개발해 숙주세포를 감염시키지 못하게 하는 똑같은 원리로 에볼라(Ebola)와 메르스(MERS) 치료에서 효과를 증명했다.

팬데믹 불행 중 다행인 것은 mRNA 백신은 속도를 위해 만들어졌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mRNA를 합성하여 LNP에 넣어 접종하는 방식이기때문에 그 속도가 기존의 백신 제작과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그러나 백신 민족주의 때문에 화이자와 모더나는 미국 정부와 각 1억인분을 3월말까지 공급 계약을 맺었다. 이 납기를 지키려면 매주 750만 도스를 생산해야 하지만 현재 430만 도스밖에 생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계약물량을 맞추려면 7월 말이 돼야한다. 이에 더해 금년 7월 말까지 납품 조건으로 화이자는 미국 정부와 1억인분을 추가 계약했지만 현재 생산량으로는 연말이나 돼야 계약이 끝난다. 양사의 문제는 품질문제로 공장을 더 짓지 않는 한 더이상 빨리 생산할 수가 없다고 한다.

무엇이 백신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가? 첫째는 접종 후 중화항체의 양과 질이 백신의 효능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다. 예를 들어 AZ 백신의 효능(70%)이 화이자의 효능(94%)보다 낮기 때문에 접종 후 중화항체의 양이나 질도 낮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노피/GSK 백신처럼 접종했다 할지라도 50세 이상의 고령자에게서 중화항체의 양이나 질이 매우 낮거나 형성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두번째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요인은 각 개인의 서로 다른 유전자, 면역 상태, 영양과 환경 상태, 나이 등이다. 특별히 백신에 대해 반응이 낮은 현상(hypo-responsiveness)은 우리 몸에 존재하는 면역 반응을 억제하는 세포들(regulatory T cells 또는 regulatory B cells)에 의해 유도된다. 일반적으로 백신에 대한 낮은 반응은 65세 이상에서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면역 억제제를 사용하는 자가면역 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들이나 장기 이식을 받은 사람들에게도 백신 실패가 발생될 수 있다. 

대한민국에 백신의 물량이 충분히 들어왔을 때 어떻게 백신을 접종할 것인가? 정부는 백신 별 유통체계, 최적의 접종대상 등을 고려할 때 개인이 백신 종류를 선택해서 접종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것도 백신 평등주의에 입각한 생각이다. 그러나 과학에 기초한 결정은 노인들에게는 항체가 더 잘 생성되는 mRNA 백신을 그리고 50세 이하 젊은이들에게는 단백질 백신을 맞추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공평한 백신 접종은 방어효과와 상관성을 보이는 면역반응수치(Immunological Correlates of Protection)가 중요하다. 백신 부작용이 접종의 효용성과 비교해 미미하기 때문에 전국민 백신 접종을 통한 집단면역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대한민국의 ‘V-Day’는 어제나 올까? 올 연말이라도 왔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바램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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