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적이고 애매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조항이 제약업계와 의료인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국민권익위원회는 케이스 별로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아, 법 시행 후 혼돈이 더 심화될 전망이다.
김영란법은 공무원·사립대학 교수·언론인 등이 제3자로부터 금품을 수수하면 형사처벌 및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으로, 1회당 음식물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이상 받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업계는 이 3·5·10만원 금액이 현실과 동떨어진 규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면, 신제품 출시 기자간담회를 열 때 장소를 대관하면서 대관료 대신 식사비를 납부하는 방식이 많다. 그리고 그 식사비가 3만원 미만인 곳은 거의 없다.
제약사 관계자는 "이렇게 되면 식사 대신 3만원짜리 커피를 깔고 간담회를 열 가능성이 높아진다. 5만원짜리 식사를 제공하면 끝날 것을 비싼 커피를 시키게 하는 실효성 전혀 없는 규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김영란법 때문에 식사 제공없는 간담회 방향으로 간다고 하자. 서울 시내에 그럴 수 있는 장소는 접근성을 고려할 때 몇 개 없다"면서 "몇 개 안되는 곳을 대관하기 위한 피튀는 경쟁만 난무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나마 대규모 간담회는 김영란법 예외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김영란법은 8개의 예외 사항을 허용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공직자 등의 직무와 관련된 공식적인 행사에서 주최자가 참석자에게 통상적인 범위에서 일률적으로 제공하는 교통, 숙박, 음식물 등의 금품등'이다.
그럼 뭐가 공식적인 것인까? 제약사가 신제품 홍보를 위해 여는 의료인 대상 제품설명회는 공식적인 자리일까? 최신 임상 데이터를 소개하기 위한 소규모 RTM(ROUND TABLE MEETING)은 비공식적인 것인가?
현재로선 아무 것도 명확화 되지 않았으며, 사안별로 판단하겠다는 권익위 방침이 뚜렷해 앞으로도 세부 가이드라인이 나오긴 힘들 전망이다.
권익위원회 청렴총괄과 관계자는 "일률적인 기준은 제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누가봐도 공식적인 기자간담회도 있지만 기자 몇 명만 불러 밥 사주면서 진행하는 비공식 간담회도 있다. 의사 대상 제품설명회도 마찬가지다. 케이스별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고 답했다.
그는 "뭐가 공식적이고 비공식적인가는 미세한 차이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어 법원의 최종 판단이 필요하다"면서 "업계의 답답한 마음 안다. 최대한 고려해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국제약협회와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는 권익위에 공정경쟁규약을 김영란법 예외 적용하자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학교법인 근무 의사나 국공립병원 교수는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 되지만, '의료인'에 대한 업체의 제공 범위를 담은 '공정경쟁규약'만을 적용함으로써 혼란을 막자는 것이다.
김영란법 예외 조항 중 '그 밖에 다른 법령·기준 또는 사회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금품등'에 공정경쟁규약을 포함하자는 내용.
그러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시각은 부정적이다.
보건복지부 최봉근 약무정책과장은 "법률 적용 대상을 이미 공무원, 공공기관, 학교 등으로 정했는데 학교법인 근무 의사 등만 제외시키자고 하면 권익위가 긍정적으로 검토할까"라며 "또 공정경쟁규약 전체가 사회 상규에 해당될지는 조문마다 이슈가 있어, 일괄적으로 적용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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