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전 30분이 하루 중 밥 먹는 유일한 시간"... 대전협 '전공의 과로 실태조사' 결과 공개
전공의 10명 중 9명 정신적·육체적 피로감 호소... 휴게시간은 언제인지도 몰라
[메디게이트뉴스 정다연 기자] "자기 전까지 하루 30분 정도 밥 먹는 시간이 있습니다.", "2주간 점심식사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5일에 2번 정도 식사가 가능합니다."
전공의들이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밥을 먹지 못할 정도로 일하는 일상에 대해 호소했다. 전공의 10명 중 8명(84.1%)은 '휴게시간이나 식사시간이 있더라도 대개 또는 항상 방해받는다'고 답했다. 전공의 10명 중 9명(91%)은 '수련병원 등이 초과근무나 과도한 업무량에 대해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또 전공의들의 업무가 환자의 안전과 직결된 만큼 전공의들은 단순 노동보다 더 심적인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공의 10명 중 9명(89.9%)은 '본인이 맡은 업무의 강도 및 책임에 대한 부담감으로 인해 힘들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전공의 10명 중 6명(62.4%)은 '환자의 생사를 가르는 판단과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1일 고(故) 신형록 전공의 사망 이후 전공의 과로 실태 파악을 위해 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공의 업무 강도 및 휴게시간 보장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설문조사는 지난 3월 약 10일간 온라인으로 진행 됐으며 전국 90여 개 수련병원의 660여 명의 전공의가 참여했다.
전공의법이 만들어져도 쉬지 못하는 전공의들
전공의법이 시행 중이지만 의료 현장에 있는 전공의 10명 중 9명은 정신적·육체적 피로를 자주 또는 항상 느낀다고 토로했다. 전공의 10명 중 9명이 기본적인 휴게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공의 92.9%는 '작업종료 후 정신적 피로감을 자주 또는 항상 느낀다'고 답했다. '육체적 피로감을 자주 또는 항상 느낀다'고 답한 전공의는 무려 94.7%에 달했다. 정신적 피로와 육체적 피로 모두 '항상 느낀다'고 답한 응답자 비율은 응답자의 70%를 웃돌았다.
하지만 전공의들은 피로를 해소할 물리적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다. 응답자 70.2%는 수련병원 측으로부터 휴게시간에 대한 안내조차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응답자 89.8%는 수련 중 계약서 내용대로 휴게시간이 보장되지 않거나 휴게시간이 언제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전공의들은 수련병원으로부터 전공의 휴게시간을 보장 받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 됐다. 전공의 90.8%는 '휴게시간이 제대로 지켜질 수 있도록 소속 병원에서 지속적으로 충분한 안내 및 노력을 기울이고 있느냐'는 질문에 전공의 '아니오'라고 답했다.
또 전공의 10명 중 7명은 휴가를 원하는 기간에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공의 68.1%는 '휴가를 원할 때 사용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는 '1~2주 전에 통보', '스케줄 임의 배정', '연차를 모두 보장받지 못하고 남는 일수는 수당으로 받았다', '눈치가 보여 쓰지 못한다' 등이 자주 언급됐다.
전공의들은 자율적인 휴가 사용에 제한이 따르는 원인으로 '인력 부족', '무리한 업무 일정', '응급환자의 발생', '초과근로 관행' 등을 꼽았다. 응답자들은 '나의 업무를 대체할 인력이 없어서', '남은 동료들 업무 가중' 등 이유로 휴가 사용에 제한받고 있다고 밝혔다.
전공의 대다수는 근무시간을 초과해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공의 91.6%가 '지난 6개월 동안 하루 평균 1시간 이상 초과근무 한다'고 응답했다. '하루 평균 3시간 이상 초과해 일한다'고 밝힌 전공의는 41.1%에 달했다. '무려 7시간 이상 근무시간을 초과해 일한다'는 전공의도 8.3%나 됐다.
근무 스케줄 변경이나 초과근무가 발생하는 주된 이유로는 '인원 부족' 64.4%, '무리한 업무 일정' 64.1%, '응급환자의 발생' 60.9%, '초과근로 관행' 46.5% 순으로 꼽혔다. 초과근무 및 과도한 업무량에 대한 병원의 후속조치나 지원여부에 대한 질문에는 전공의 91%가 '아니오'라고 답했다.
환자의 안전과 직결된 업무에 대한 심리적 압박
전공의들의 과로는 비단 많은 노동 시간 때문만은 아니다. 전공의들은 환자의 안전에 대한 업무에 대한 압박으로 인해 단순 노동보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인이 맡은 업무의 강도 및 책임에 대한 부담감으로 인해 '힘들다'고 응답한 전공의는 89.9%에 이르렀다. 전공의 34.4%는 '매우 힘들다'고 답했다.
진료업무에서 겪는 주요 스트레스나 긴장 요인으로는 '환자의 생사를 가르는 판단과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가 62.4%로 가장 많았다. '본인의 실수로 인하여 병원과 본인, 환자에게 중대한 손실을 발생시킬 수 있는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48.4%로 뒤를 이었다. '본인에게 고함을 치거나 화를 내는 등 위협을 받는 경우'를 꼽은 전공의는 응답자의 43.8%, '진료업무 중에 발생될 수 있는 위험과 손실에 대한 책임을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어서 홀로 처리해야 한다'는 이들은 응답자의 37%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공의 A씨는 "처치가 실패할 경우 바로 사망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내 처치가 실패할 경우 의지할 교수가 없다"고 토로하며 "작은 실수로 교수가 폭언과 고함을 지른다. 환자의 상태가 아닌 교수의 기분으로 폭언의 빈도와 강도가 결정된다"고 말했다.
전공의 B씨는 "까다로운 환자를 응대할 경우 병원 측에서 대응하지 않고 바로 의사에게 전달하고 그 내용을 병원장에게 보고해 불이익이 가해질 것이란 협박을 받았다"며 "의료분쟁 발생 시에는 병원을 상대로 고소가 접수되었음에도 개인 의사에게 책임을 물었다"고 말했다.
전공의 C씨는 "정신과 환자 진료 시 흉기를 소지하고 있는 적도 있었다"면서 "지난 임세원 교수 살인사건에도 불구하고 안전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보장되어있지 않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대전협 이승우 회장은 "교수와 전공의 모두 과로하고 있는 현실에서 병원에 오는 환자들의 안전은 위협받고 있다. 특히, 전공의는 휴게시간이 언제인지도 모른 채로 계속되는 긴장 상태 속에서 환자를 진료해야 하며 때로는 폭언, 폭행, 성희롱 등으로 더욱 스트레스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환자가 안전하고 전공의가 안전하게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서 야간당직 시 담당 환자 수 제한과 입원전담전문의 제도 확대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대전협은 길병원 전공의 사망으로 또다시 대두된 전공의 과로 문제와 관련해 이번 전공의 과로 실태조사와 더불어 안전한 진료환경 마련을 위한 대정부 요구안 발표했다.
대전협은 추후 환자 안전과 전공의 권리 보호를 위한 전공의 노동조합 지부 설립 등의 방안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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