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의약품 도매업체 쥴릭파마코리아가 법률상 2년까지 가능한 비정규직의 근무기간을 7년까지 연장시키며 비정규 직원들에게 한달 118시간의 연장근로를 종용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와 관련 쥴릭파마 직원들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하고, 노조 조합원 100여명이 24일 본사(서울 용산구 LS타워) 앞에 나와 노동법 위반 중단을 촉구했다.
노조에 따르면, 쥴릭은 현장노무직(물류센터 등)과 내근직 직원 일부를 비정규직으로 채용한 후, 법정 비정규직 채용기간인 2년을 넘어 최소 3년에서 최대 7년까지 불법 사용했다.
현행 기간제법(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사업주는 2년 안에서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으며, 2년을 초과해 기간제 근로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할 경우는 '정규직'의 한 종류인 '무기 근로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2년을 초과한 경우 그 근로자는 무기근로계약을 체결한, 즉 정규직으로 간주되는데 문제는 회사 측이 직원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고지하지 않고 비정규직으로 대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민주제약노조 장환 정책실장(공인노무사)은 "이 직원들은 법률적 지식이 없다보니 자신이 기간제(비정규직) 상태라고 인지하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서 "작년에서야 직원들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자 회사는 토익 700점을 받아오라는 기막힌 요구를 했다"고 지적했다.
사측의 토익 700점 요구가 기막힌 이유는 비정규직 대부분이 물류센터에서 포장‧운반 등을 담당하는, 즉 영어 실력을 크게 필요로하지 않는 직종이라는 게 노조 설명이다.
장 노무사는 "이들은 정규직 대우를 못 받고 비정규직 계약 조건을 유지한 채, 정규직의 임금인상률을 적용받는 정도였다"면서 "하지만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70% 수준이다. 사측은 임금이 싼 비정규직에 연장근로를 요구해 한달 최대 118시간을 연장 근무했다"고 고발했다.
이어 "한달 118시간이 일주일 평균 20시간씩 연장근무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물류센터는 월초‧월말에 일이 몰리므로 이들은 이 기간 동안 잠자고 밥먹는 시간을 빼곤 계속 일을 한 것"이라며 "정규직보다 더 큰 강도의 업무를 요구하면서도 정규직 전환 사실을 고지하지 않다가 노조가 문제 삼자 부랴부랴 계약 체결을 시작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더 큰 문제는 서둘러 정규직 전환을 시작한 쥴릭이 기존의 정규직보다 낮은 새로운 등급(D등급)을 만들어 정규직보다 못한 대우를 합법화하려 한다는 것이다.
장 노무사는 "일반 정규직은 대리 직급을 다는 데 통상 5~7년 걸리지만, D등급의 무기계약직은 12년이나 걸린다"면서 "이들이 정규직과 동일한 일을 하기 때문에 법률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쥴릭의 비정규직 총 인원은 사측이 '기업 기밀'이라며 밝히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노조에 따르면 2년이 넘는데도 비정규직 상태로 남아 있는 직원이 19명이며, 이 중 6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사측, 불법 여부에 대해 '함구'
사측은 노조의 주장에 대해 일부 인정, 일부 반박했다.
쥴릭은 '노조 쟁의 관련 입장자료'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회사는 업무 성격 및 개인 능력 등에 따라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는 시스템을 재정비했다"면서 "2년 넘는 직원의 경우, 프로젝트로 고용된 일부 직원을 제외하고 법적으로 근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계약 상태이며, 2년 넘는 직원 중 계약이 부당하게 종료 된 일은 지금까지 한 건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인사 담당 이사는 7년 동안 비정규직 상태로 둔 게 불법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노조와 협의(?) 중인 사항이라 '불법 혹은 합법'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며 답을 피했다.
118시간 연장근로(근로기준법상 연장근로시간 주 12~16시간)와 관련해서는 "일련번호제도 시행에 따른 일시적 업무량 증가 및 시장의 불규칙한 물량 수요로 인해 법정한도를 초과한 연장 근무가 발생한 것을 확인했고, 이에 대한 시정 조치를 완료했다"고 시인했다.
노조가 제기한 또 다른 쟁점은 사측이 내년 임금 인상률을 물가 인상률보다 한참 낮은 0.7%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인사 담당 이사는 "임금인상률은 통상 노조와 협상하는 절차를 거친다. 0.7%는 첫 제시안이었고, 지금은 노조 제시안(7.8%)과의 격차를 줄이고 있다"면서 "최종 인상률은 노사 간 격차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토익 점수 700점 요구에 대해서도 "정규직 선발 시 토익 등을 요구하는 글로벌 추세에 맞추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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