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서민지 기자] 보건의료 연구개발(R&D)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점차 증가하고 있으나, 제대로된 거버넌스 부재로 인해 기관 간 협력이 어렵고 질적으로도 저하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전문인력 양성과 기관 육성, 연구비 지원, 품질관리를 추진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미국의 21세기 치료법(21st Cures Act)을 벤치마킹해 R&D와 규제, 인력, 보험제도를 아우르는 통합적 접근을 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이 나왔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이명화 국가연구개발분석단장·고려대 의과대학 혈액종양내과 김병수 교수 등은 14일 글로벌 보건의료 R&D 지원체계 현황과 이슈 국회토론회에서 이 같은 추진방향을 제언했다.
고대의대 김병수 교수는 "보건의료 R&D의 질적 영향력(상위 10% 인용 논문 지율·영향력 비율 등)을 보면, 하버드대학 1곳보다 우리나라 전체 의학분야가 더 낮은 수준이며, 논문 저자 수와 역량도 더 떨어졌다"면서 "이처럼 보건의료 R&D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의과대 교육 부재와 예비타당성조사 등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R&D 중 특히 보건의료분야는 예측불가능성이 매우 큰데도 반드시 예타 경제성 평가를 통과해야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사실상 연구과제를 왜곡하거나 아예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가게 된다"면서 "실제 보건복지부의 질환극복사업의 경우 고유목적사업임에도 예타 대상에 포함돼 계속 예산이 짤려 정체되고 있는 상황이다. R&D 자체를 추진할 수 없게 하는 규제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R&D 추진체는 결국 사람인만큼 의사-과학자 양성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의대에서 R&D 소양교육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현재 진행 중인 전공의 과정 중 의사과학자 양성사업은 고무적이기는 하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의대 안에 기초적 내용에 대한 커리큘럼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전문의 육성에 집중된 의대 교육을 넘어 연구중심 의과대학을 마련하기 위한 지원을 하고, 현재 시범사업으로 진행하는 연구중심병원 지정사업을 '인증제도'로 전환해 지속적으로 연구중심병원을 육성해나갈 것을 제언했다. 연구중심병원에 대해 단순 연구비 지원을 넘어 보험급여, 신의료기술 평가 등 여러 측면에서의 지원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김 교수는 "이 같은 제도 개선 전에 현재 하나의 개념에 포함시킨 바이오R&D와 보건의료R&D를 구분하고, 인재양성과 기관 육성, 연구비 지원 등 보건의료R&D 전반을 이끌어 나갈 거버넌스 체계를 마련해 혁신성장을 이끌어낼 때"라고 말했다.
STEPI 이명화 국가연구개발분석단장은 미국과 일본, 영국의 관련 조직과 법·제도, 예산 등을 근거로 우리나라 보건의료 R&D 체질 개선을 위해 통합적 접근과 글로벌 협력, 체계화된 목표설정 마련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단장은 "일본 정부는 2013년 내각에 보건의료 R&D 컨트롤타워로 '건강의료전략추진본부'를 마련했으며, 2015년에는 기초연구부터 상품화까지 전 단계를 단절 없이 지원하도록 에이메드(AMED)를 설립해 1000억엔(1조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 중"이라면서 "영국은 효율적 R&D 예산 집행을 위해 7개 연구위원회와 이노베이트UK, 리서치 잉글랜드를 통합한 비정부 공공기관 'UKRI'를 설립하고, 보건부와 병합되지 않고 분리된 바이오헬스 R&D 관리 전문기관인 MRC를 마련해 연간 1조 2195억원에 이르는 예산을 집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미국은 국립보건원(NIH·National Institutes of Health)에서 보건의료R&D 대부분(85%가량)을 담당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예산을 외부 연구에 투입하고 있다"면서 "지난 2016년에는 의약품, 의료기기 제품 개발을 가속화하기 위해 '21세기 치료법'을 제정, 연구지원부터 인력, 규제 보험 등 전주기적 지원과 인허가 방식 개선, 연구인력 지원 등을 추진 중"이라고 강조했다.
이 단장은 "우리나라도 이 같은 각국 지원을 벤치마킹해 기초-응용-개발을 연계하는 전주기적 관점을 토대로, 부처 간 장벽을 허물어 R&D와 규제, 인력, 보험제도를 아우르는 통합적 지원을 해야 한다"면서 "동시에 여러 기관 간 협력, 네트워킹을 강화하고, 명확한 목표를 설정해 R&D 사업을 체계적으로 구조화하는 한편 글로벌 협력 플랫폼에 적극 참여해 한국의 위상을 제고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김은정 과학기술기획평가원 센터장도 R&D 체계의 변화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에 따른 투자 전략(포트폴리오)의 조정까지도 같이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서울의대 최형진 교수 역시 "보건의료 R&D는 기초과학부터 환자 적용까지 연계된 기획 및 장기적·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분야"라며 "여러 부처에 분산된 거버넌스 역할을 통합해 '컨트롤타워'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제언에 대해 보건복지부 정은영 보건의료기술개발과장은 "R&D 예타 지적에 대해 공감한다. 현재 R&D 기획은 복지부 담당이지만 예산편성 권한은 과기부, 예산 확정은 기재부 담당이기 때문에 예타 경제성평가로 보건의료R&D가 발목잡히는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면서 "과기부와 부처가 가지는 각각 고유 권한과 R&D 지원 개선을 위한 접점을 찾아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정 과장은 "미국의 NIH, 일본 AMED 등이 도입한 통합적인 거버넌스를 우리도 언제가는 도입해야 한다"면서 "이는 한, 두 해 논의된 사안이 아니지만 복지부 단독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만큼 폭넓은 논의를 이어갈 것이다. 이미 코로나19 사태로 범부처가 치료제, 백신 개발 TF를 통해 빠른 성과 도출을 경험한만큼, 추후 협의채널을 구출해 보건의료R&D 지원체계를 개선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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