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병원의 생존법칙
지역사회, 지역주민과 연계 실천
대형병원 선호로 위기의식도 고조
서울 중랑구 면목동 녹색병원.
최근 취임한 김봉구 원장의 집무실은 지하 2층이다.
어두컴컴하고, 공기도 텁텁하지만 2003년 병원이 개원한 이후 한 번도 지상으로 올라간 적이 없다.
볕이 잘 드는 공간은 환자들에게 양보한다는 병원의 철학이 녹아 있다.
원진레이온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에게 집단 직업병이 발견되자 이들을 돕기 위해 원진재단이 만들어졌고, 이 재단이 설립한 게 녹색병원이다.
녹색병원에 들어서면 특이한 점 몇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병원 엘리베이터 타워 외벽에 길이 23m, 폭 3m 크기의 ‘2003년 여름이야기’라는 작품이 있다(위 사진 좌측).
임옥상 화백은 양길승 초대 원장이 환자들에게 예술을 선사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자 생활물품을 활용, 1m×1m 크기의 69개 작품을 엘리베이터 타워 외벽에 붙여 작품화했다.
또 녹색병원 1층 진료실 앞에는 ‘글비 나리는 뜰’이라는 특이한 쉼터가 있다(위 사진 오른쪽).
원진직업병 환자들이 자신들의 꿈과 염원을 담은 글귀를 한자 한자 줄에 이어 7층에서 매달았다. 위를 올려다보면 진짜 글비가 쏟아지는 듯하다.
천장이 없다보니 햇살에 반짝이는 글비가 장관이지만 원진노동자들의 슬픈 과거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병원 1층에 ‘주민사랑방’을 만든 것도 인상적이다.
병원을 방문한 지역 주민들이 담소를 나누거나 쉬었다 갈 수 있게 배려한 것이다.
녹색병원의 사명은 '지역사회와 함께 만드는, 삶의 질을 높이는 공익병원'이다.
최근 김봉구 원장은 메디게이트뉴스와 1시간여 동안 인터뷰 하면서 '지역사회' '지역주민'이란 단어를 족히 100번 넘게 언급했다.
녹색병원 직원들은 일정 시간 이상 의무적으로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중소병원들은 대학병원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고가 의료장비를 들여와 플래카드를 내걸고, 비급여 진료에 관심을 가진다.
반면 녹색병원은 지역사회에서 답을 찾고 있었다.
김 원장은 "2차병원은 거기에 맞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면서 "지역주민들의 이웃 같은 병원, 그래서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병원이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김 원장은 의사들이 독거노인이나 저소득층 환자들을 찾아가는 '왕진' 의료봉사를 계획할 정도로 지역사회 연계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와 함께 김 원장은 "국민 의료비가 계속 상승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지역 주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여 생활이 향상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필요한 검사나 비급여를 자제하고, 설명 잘하는 병원, 친절한 병원을 만들어 지역사회에서 사랑받는 병원이 돼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그럼에도 녹색병원 역시 다른 중소병원과 마찬가지로 생존 위기에 처해있다고 한다.
김 원장은 "녹색병원의 병상 가동률은 85.9%로 낮은 수준이 아니지만 직원 월급 주고, 시설 개선하기가 만만치 않을 정도로 위기라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고 설명했다.
환자들이 대형병원을 선호하면서 '지역사회와 함께 해도'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중소병원들의 현실은 녹색병원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김봉구 원장에게 3년후의 소망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경영 걱정을 안하는 병원, 직원들이 월급을 많이 받지는 못하지만 재미있는 병원, 비록 명의는 없지만 진료실에서 지역주민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는 병원이 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김 원장의 소박한 꿈은 이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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