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 강화는 우리와 상관없는 이야기다."
지방의 어느 보건소에서 수 십년째 '지방공무원 5급'으로 근무하고 있는 전문의 A씨의 말이다.
공공의료 강화, 의료취약지 해소는 국가의 기본 책무에 속한다.
지난 박근혜 정부 때는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의료취약지를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국립보건의대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의료계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문재인정부도 과거 어느 정부 못지않게 공공의료 강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A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역대 정부의 공공의료 강화가 한낱 구호에 그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A씨는 5년마다 근로계약을 다시 체결해야 하는 '계약직' 공무원이다. 대부분의 자치단체들이 보건소 의무직 공무원을 이렇게 계약직으로 전환하고 있다. 공공병원 일부 의사들도 계약직이다.
그는 "10여년 전부터 의사들을 계약직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면서 "5년마다 이력서도 다시 내고, 면접도 다시 보고, 신체검사도 다시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소장이라고 해도 예외는 없다.
그는 몇 차례 이런 절차를 밟아왔고, 앞으로 몇 년 후 다시 이렇게 해야 한다.
그는 "이런 절차를 거칠 때마다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고, 모욕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면서 "밉보이다간 사전 예고도 없이 해고된다"고 털어놨다.
의무직 공무원들은 이렇게 신분만 재계약하는 게 아니라 연봉도 다시 '계약직 공무원 5급 1호봉'으로 되돌아간다.
5년차까지 쥐꼬리 수준이나마 인상되다가 다시 첫 계약직 입사 당시로 되돌아간다는 의미다.
A씨도 마찬가지다.
A씨는 "5년 전 연봉을 받는 조건으로 재계약하고 나면 한번 더 모욕감이 밀려온다"고 하소연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보건소 의사들은 스스로를 '의사사회의 차상위계층'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는 "5년 지나면 올라갔던 연봉이 다시 떨어지는 게 계약직 의사들의 현실"이라면서 "사실상 중징계에 해당하는 감봉처분이다.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감봉하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피력했다.
그는 "스스로한테 창피하기도 하고, 이런 것 때문에 젊은 의사들이 상처를 받고 떠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환자나 민간병원의 동료 의사로부터 환영받는 것도 아니다.
그는 "환자들이 동네의원 의사한테는 '선생님'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냥 공무원 대하듯 한다"고 씁쓸해 했다.
특히 그는 "우리 보건소만 하더라도 의사들이 자치단체장한테 고혈압, 당뇨만 진료하겠다고 건의해 오래 전부터 그렇게 하고 있는데 외부에서는 보건소가 환자를 다 빼앗아가는 것처럼 생각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런 악조건에서도 보건소에 남아있는 이유가 뭘까?
A씨는 "돈을 벌려고 한다면 보건소에서 일할 수 없다. 그저 거동이 불편한 저소득층 환자들을 방문진료하고, 건강상담하면서 의사 역할을 하는데 만족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가 바라는 건 딱 세가지였다.
그는 "애들도 키우고, 학교도 보내려면 안정적인 채용, 기존 연봉 인정, 직무교육을 해야 한다"면서 "그래야 젊은 의사들이 들어오고 민간병원에서 하기 어려운 취약계층을 보호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의료취약지를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국립보건의대를 만드는 게 아니라 공공의료 일선에서 일하는 의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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