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만 책임 묻는 '응급실 뺑뺑이', 해외는 달라…"구급대와 병원 간 '분절' 해결해야"
소방청과 복지부, 병원 전과 병원 정보 수집·교환 원활하지 않아…의정연 "응급이송 책임질 조직 필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응급실 뺑뺑이가 연일 논란이 되면서 정부와 국회가 응급실이 응급환자를 원천적으로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내놓으며 마치 해당 문제의 원인이 의료기관에 있는 것 처럼 비춰지고 있다.
하지만 해외의 경우 한정된 자원으로 인해 무한대로 제공할 수 없는 '응급의료'의 특성을 고려해 응급의료 현장에서 병원까지 이송되는 '응급이송체계'에 초점을 맞춰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1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응급이송체계의 문제에 대한 분석과 해결방안 연구'이 해외 응급의료체계를 비교해 우리나라가 응급환자 이송 지연이 발생하는 원인은 분절적인 응급이송체계에 있다고 밝혔다.
응급실에만 책임 묻고, 응급실이 '무조건 수용' 해라?…해외는 '응급이송체계'에 초점 맞춰
최근 응급실 뺑뺑이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함께 정부가 본격적인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2023년 3월 대구에서 발생한 10대 중증외상 환자 사망 사건이 계기가 됐다.
당시 정부는 배후 진료 의료진 부족 등을 이유로 환자 수용 곤란을 고지한 의료기관들에 행정 처분을 명했고, 국민들은 생명이 위험한 응급환자를 '거부'했다며 의료기관에 분노를 쏟아냈다.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이 응급실 뺑뺑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의료기관에 '무조건 수용 원칙'을 추가하는 응급의료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의료계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 '응급실 뺑뺑이' 문제는 무한할 수 없는 응급의료 자원의 한계로 인해 어느나라에서나 발생하고 있는 문제다.
다만 그 해결책을 환자를 수용하지 않는 의료기관으로 돌리는 우리나라와 달리, 해외는 의료 현장에서 의료기관까지 환자 이송을 조정하는 응급이송체계에 보다 초점을 두고 있었다.
미국 메릴린드 주의 경우 주 전역의 응급의료시스템을 Maryland Institute for Emergency Medical Services Systems (MIEMSS)에서 관리하면서 일관된 응급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응급의료 자원센터 및 시스템 통신 부서를 통해 병원, 응급의료팀, 외상 센터 간의 통신을 관리하며 긴급 상황 시 환자 이송을 조정하는 시스템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구급대가 직접 현장에서 인근 응급실에 전화를 걸어 수용능력 여부를 문의하고, 응급실도 병상 및 최종치료 인력 여부를 확인해 수용 가능 여부를 통보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 역시 'CritiCall'이 의사가 현재 병원에 있는 환자에게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운 경우 연락하면, 급성 치료병원의 서비스와 리소스 인벤토리가 포함된 Provincial Hospital Resource System(PHRS)을 사용해 상담을 제공하고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병원과 전문의를 찾아 준다.
도움이 필요한 병원, 의사에게는 전체 CritiCall을 사용하는 방법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특히 위중한 환자의 경우 이송까지 담당해 주고 있다.
소방청, 복지부로 나뉜 부처…중앙전원조정센터, 응급실 종합상황판 의료진, 구급대 모두 "불편"
우리나라 역시 중앙전원조정센터와 광역응급의료상황실이 응급이송 등에 관여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환자 이송 흐름을 돕는 데는 역부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중앙응급의료센터가 운영하는 종합상황판을 통해 응급의료자원을 별도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여기에 표출되는 최종치료 제공 능력이 현장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일단 환자를 수용한 병원이 진단을 한 후 환자를 타 병원으로 전원하려 해도, 다른 병원의 배후 진료 능력에 대한 정보 수집이 어려워 애초부터 배후 진료 능력이 없으면 환자 수용 곤란을 통보하게 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응급의료기관에서 근무중인 130명의 응급의학 전문의에게 응급의료체계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급실 종합상황판은 수정 또는 개선이 필요하거나 새로운 플랫폼의 구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94%로 높게 나타났다.
중앙전원조정센터와 광역응급의료상황실 이용 만족도에 대한 질의의 경우 만족도는 10점 만점의 4.6점으로 낮았고,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는 '이용해도 전원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78%, '이용 과정이 불편하다' 22%를 차지했다.
이러한 평가는 구급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전국에 있는 총 759명의 구급대원에게 같은 질문을 한 결과, 응급실현황판과 중앙응급의료센터에서 운영하는 종합상황판의 사용 시 만족도는 각각 10점 만점의 3.2점, 3.1점으로 매우 낮았다.
그 이유는 응급의료자원 정보와 실제 현장과의 차이, 병원 선정에 있어서 부족한 자료, 사용 과정에 있어서 불편함 등이 제기됐다.
이에 구급대원들은 응답자들 중 79%가 보다 원활한 병원 선정을 위해 응급의료자원 정보의 새로운 플랫폼 구축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의 병원 전 정보, 복지부의 병상·배후진료 등 정보 실시간으로 교환돼야
이러한 연구를 통해 의정연은 우리나라에서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하는 이유를 현 응급이송체계의 '분절화'로 들었다.
응급이송체계는 구급대와 응급실을 아우르는 연속적인 시스템으로, 소방청(행정안전부)과 보건복지부가 모두 관련돼 있다. 하지만 부처가 각자의 역할에만 치중하며 의견충돌을 벌이다 보니 현장에서 유기적인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즉 병원 전 환자 이송을 담당하는 구급대와 그 환자를 수용해야 하는 의료기관 간에 정보 교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원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 병원의 자원에 대한 정보가 체계적으로 수집돼야 한다. 이를 위해 복지부(중앙응급의료센터)가 응급실과 배후 진료, 병상, 수술실 등에 대한 실시간에 가까운 정보를 구축해야 한다. 이처럼 응급이송체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 몸처럼 유기적으로 기능해야 하는 두 기관을 상위에서 조정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응급이송 지연으로 환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거시적인 해결책들이 다양한 비상설 조직을 통해 제시되지만, 결국 실행 단계에서 각 부처 간의 이해관계 충돌로 인해 공염불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를 지속적으로 조정하고 책임감 있게 시행해 나갈 조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응급의료의 병원 전과 병원 단계의 정보가 구급대와 병원 간에 유기적으로 교환된다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소방청은 사실상 구급상황일지에 대한 정보를 외부에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어 환자 이송과 전원에 있어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연구원은 분절된 이송체계를 하나로 합쳐 책임감 있게 시행해 나갈 조직을 구축해 병원 전과 후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응급 의료진에 대한 법적 책임 문제, 방어 진료 초래…"법적 보호 장치도 필요"
이와 더불어 연구원원은 응급실 의료진에 대한 법적 보호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원은 "최근 응급실 의료진에 대한 여러 가지 판결 결과를 통해 응급실 의료진들은 방어적인 진료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각 사건의 판결에 제한되지 않는다. 환자 수용 시에 응급실 의료진들은 중증환자 수용에 더 소극적이게 될 것이고, 배후 진료가 안되는 경우에는 환자의 상태에 관계없이 환자 수용을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의료진이 일정 정도의 수고와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환자를 위해 진료할 수 있는 선한 의지를 고무시키기 위한 시스템을 위해서라도 응급의료진에 대한 법적 보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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