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대중(비의료인) 앞에서 의학 외 주제로 자기 의견을 개진하기란 쉽지 않다.
대중들에게 의사란 '폐쇄적이고 자기 이익밖에 모르는 집단'이고, 대중들의 그런 생각을 바꾸는 데 의사들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대중들에게 싸잡아서 매도당하는 게 억울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쉽게 바뀌지 않는 현실이다.
각인된 생각을 바꾸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진실하게 작은 것부터 접근해야 복잡한 실타래를 풀 수 있으며, 그것은 의사들의 상호 존중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반의, 본인의 선택
우리나라의 일반의 비율은 약 30%로 OECD 평균과 비슷하다. 의사 3~4명당 1명은 일반의이다.
전문의가 일반의보다 훨씬 많다 보니, 요즘은 전문의가 필수고 전공의 수련을 하지 않는 것이 옵션처럼 되었다.
모르는 의사를 만나면 습관처럼 전문과를 묻게 된다. 질문받은 일반의는 '난 보드(전문의 자격증) 없음'이라는 대답 외에 '보드 없는 이유'까지 '의무적'으로 부연 설명하게 된다. 오지랖 넓은 전문의 선배라도 만나는 날엔 명절날이 따로 없다.
진로의 선택에 '족보'란 없을 것이다. 의사는 각자의 적성, 철학, 경제, 기타 등등의 이유로 일반의 혹은 전문과를 선택한다. 여건상 수련을 하다가 그만두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의사 자격증이 있는 모든 사람은 전문과에 상관없이 거의 모든 형태의 진료를 할 수 있다. 법에서 인정하고, 문제가 생기면 진료했던 의사가 모든 책임을 진다.
따라서 합법적으로 성실하게 일하는 동료 의사를 전문의 자격증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깎아내리는 것은 옳지 않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전문분야를 살려 진료 보기란 어차피 쉽지 않다. 적지 않은 전문의들이 전혀 해 본 적 없던 비보험 진료를 필드에 나와서 배우면서 진료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문의 자격증이 무색해지기도 한다. "우리는 바이탈을 잡을 수 있어서 GP들이 배우는 것과는 다르지"라고 생각하시는 전문의가 있다면 주위의 마이너과 전문의들의 ICU care 숙련도를 상기해보길 바란다.
마이너과 전문의 선생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덜 해본 술기는 익숙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서툼'의 이미지를 '일반의'에게만 씌우고, 그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만드는 것은 옳지 못하다.
패륜 싸이트의 이름까지 빌려 붙여준 이름 : 의전충
구글에서 '의전충'으로 찾은 검색 결과 : '일베충'을 연상시키는 단어를 붙일 정도의 증오가 무엇일까?
의학전문대학원생도 마찬가지다. 의학전문대학원 제도의 호불호 혹은 옳고 그름에 관한 논의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비판은 '제도'만으로 한정해야 한다. 의전원생은 법에 명시된 제도를 정당한 방법으로 통과하여 입학한 예비 의사들이다.
어떤 의전원생 A가 만약 성적이 평균 이하거나, 병원실습 때 교수의 질문에 대답을 못하거나, 수술방에서 눈치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은 그 의전원생이 'A'이기 때문이지, '의전원생'이기 때문이 아니다.
모든 행동을 의전원생이라는 이름으로 비판하는 것은 특정 학력, 지방, 성별을 싸잡아 매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미 필드에서 활동하는 의전원 출신의 일반의나 전문의는 학부 출신이 통과했던 의사고시, 전문의 시험을 같은 조건으로 합격한 동료이다.
도대체 얼마나 큰 증오가 패륜 사이트를 연상시키는 합성어를 만들어 한 집단을 싸잡아 매도하게 되었는지 잘은 모른다.
하지만 편을 나누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집단을, 그것도 뒤에 숨어서 비하하고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치졸하고 비겁하다.
이미 많은 의사가 전문과, 각종학회, 출신학교, 출신의국 등으로 묶여서 필요에 따라서 속한 집단별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속하지 않은 집단에는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한의사의 현대의료기 사용에 대해서는 너나없이 달려들어 비난하면서도, '성형외과'의 상업성을 비판하는 기사에 대해서는 오히려 여론보다 더욱 심하게 비판한다.
약사의 임의조제 문제엔 하나같이 뜻을 모아 비판하면서도, '소아청소년과의 주치의제도 반대'에는 비교적 다시 상황이 나아진 소아청소년과가 배부른 소리 하면 안 된다며 일반인보다 더욱 이해를 못 한다.
의사의 '여론'에는 전략적인 사고도 없고, 오로지 자신 하나 혹은 자신을 위한 집단의 이익을 위한 일 외에는 모든 것이 무시된다. 진심으로 동료 의사를 격려하거나 박수를 보내는 일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의사들은 현재 대중에게 어떤 주장을 하더라도 '밥그릇 싸움'으로 매도당하고 있으며, 그것이 현재 의사가 국민으로부터 받는 평가이다. 이런 '매도당하는 현실'이 억울하다면, 그 감정의 깊이만큼이나 적극적으로 그런 일들이 적어도 의사들 사이에선 일어나게 해선 안된다.
가장 가까운 동료 의사조차 존중하지 못하는 집단이 대중으로부터 존중받길 원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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