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정명관 칼럼니스트] 올해 말 시행 예정인 왕진 시범사업을 앞두고 전기자전거를 구입했다. 도보로 20분 거리가 5분 거리로 단축됐다. 가방을 자전거 바구니에 올려둘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사례1. 서울시의사회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함께 진행하는 ’올바른 약물이용 지원 시범사업‘에 참여해 환자의 집을 방문했다. 함께 방문한 건보공단 간호사 혹은 약사가 환자가 이용한 의료기관과 복용 중인 모든 약물(처방약뿐만 아니라 약국에서 구입한 약물과 건강보조식품과 영양제까지)을 파악하는 동안 의사는 환자의 포괄적 노인평가를 시행하고 향후 환자의 약물 복용이 적정한지 검토하고 조정하게 된다. 오랫동안 진료실에서 봐 왔던 환자이지만 약물 복용력과 관련해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복용하는 약물뿐만 아니라 환자의 거주 환경과 보호자가 있는지를 파악하는 일도 포괄적 진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금까지 의사들은 진료실에서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만을 진료하고 처방하는 일을 해 왔다. 그것은 환자의 문제들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사례2. 독감 백신 접종을 위해 점심시간에 환자의 집을 방문했다. 집에 들어서니 94세 어머니는 마침 점심식사 중이셨고 관절염으로 병원까지 오기가 쉽지 않은 75세 아들이 맞아주셨다. 환자의 집은 경사가 심한 언덕길 위에 다시 계단 길로 이어져 있는 곳이었는데 작년까지 병원에 와서 독감 예방 접종을 하셨던 할머니는 올해는 도저히 거동하기가 힘들어 병원에 나오실 수가 없었다. 혈압이 있는 두 분의 혈압을 재고 간단한 진찰을 한 후 독감 접종을 했다.
앞의 두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지역사회에서 의사의 방문진료(왕진)는 가정 호스피스 환자나 중환자 진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말기 환자나 의료기기(소변주머니, 호흡기 등)를 부착하고 있는 환자는 소수에 불과하고 갈수록 고령이나 만성질환으로 거동이 힘들어 병원으로 오기 힘든 노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일차의료현장에서는 만성질환관리를 위한 방문진료의 수요가 상당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논의 중인 방문진료(왕진) 시범사업이나 일차의료 왕진수가 시범사업은 이런 문제들은 도외시한 채 주로 일회성 진료를 위한 수가 책정에만 집중하는 한계가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30일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재택의료 활성화 추진계획안'을 보고하고 빠르면 올해 말부터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왕진 수가는 왕진료에 의료행위비를 모두 포함한 포괄형(11만5000원)과 별도 의료행위 산정이 가능한 비포괄(8만원+α)로 나눠졌다.
대한의사협회는 왕진수가가 낮다고 반대하고 있으며 건보공단은 수가가 높으면 왕진이 너무 많이 이뤄지거나 보험 재정 소요가 많아질까 봐 왕진횟수 제한을 하는 등 대립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주로 주치의가 없는 일본의 사례를 따라가다 보니 발생한다. 일본은 왕진 수가가 높다 보니 왕진 전문 의사들도 있는 형편이다. 일본을 따라가면 안된다.
반면에 쿠바나 이탈리아는 왕진전문의사가 따로 없다. 주치의가 필요한 경우에 자신이 담당하는 환자를 방문한다. 자신의 환자의 집을 방문해 장애인이나 노인에게 독감 백신 접종을 하는 이탈리아의 주치의는 흔한 모습이다.
쿠바의 주치의는 자신이 담당하는 환자를 ▲건강한 집단 ▲위험인자를 가진 집단 ▲질병이 있는 집단 ▲장애가 있는 집단 등 4개의 집단으로 분류해 건강한 집단 이외에는 최소한 1년에 한번은 방문 진료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방문진료(왕진)은 꼭 필요하다. 병원에 오는 환자만을 진료하는 현재의 제도는 병원에 올 수 없는 더 건강하지 못한 환자들을 의료 소외 영역으로 남겨뒀다. 또, 거동이 불편한 채로 병원에서 퇴원해 집으로 돌아가는 환자들을 의료사각지대로 남겨뒀다. 커뮤니티케어에서도 해결해야 할 의료의 핵심 문제로 방문진료를 꼽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지금까지 명목뿐이었던 왕진이 실질적으로 가능하도록 수가개선사업을 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여러 의료 제도들처럼 분절된 의료를 부추기는 방향으로 제도를 만들어서는 곤란하다.
단골의사 혹은 주치의가 자신의 환자 가운데 병원 방문이 힘든 환자를 방문해 진료하고 퇴원 후 관리를 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만들어가야 의료 정보가 주치의에게로 모이고 통합되며 의료사각지대 없이 촘촘하게 환자를 돌볼 수 있다. 왕진전문의원이나 왕진전문의사를 양산하는 일본식 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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