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는 페이스북에서 의사 입장에서 진솔한 심정을 전하고 있는 외과 전문의 'Antonio Yun(엄윤 원장)의 진료실 이야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진료실 현장에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에피소드와 그 속에 담긴 의사의 고심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진료실 이야기는 각 에피소드별로 몇 회에 나눠서 연재됩니다. 독자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기대 바랍니다.
외과의사의 기도 #2.
" 아무리 그래도 이 시간에 누굴 어디로 옮기라고 그러세요?"
" 무슨 무슨 환자 있어요? ICU에..."
들어보니 이런 환자, 저런 환자 각양각색이다.
" 그럼 그 김OO 과장 환자 빼요. 과장님 한테는 내가 아침에 얘기할게요. "
" 몰라요, 저흰... 과장님이 책임지셔야 해욧. "
쌩하니 가버린다.
수술실.
수술실 당직 간호사는 열심히 수술기구들을 모아다가 수술상을 펴고 있다.
" 콜당직 불렀어요?"
" 예, 그런데요 과장님, 콜당직 오려면 한시간 정도 걸려요.
집이 중랑구라서 택시타도 오래걸려요."
" 그럼 circulating(수술시 scrub 간호사 보조)은 오는대로 서라고
하고 필요한 것은 미리 다 상에 펴 놔요.
subclavian은 준비됐어요?"
" 과장님이 방금 전화하셨잖아요..."
" 아 쫌 빨리빨리 하라고...
우선 환자부터 수술대로 올리고 shock position 잡아요."
주) shock position : 머리쪽을 낮추고 다리쪽을 들어올려 뇌와 심장 등 생명과 직결된 장기들로 피를 몰리게 하는 자세로 중심정맥관을 잡을 때도 이 자세를 취하게 된다.
수술방.
subclavian(중심정맥관)을 잡으면서 물었다.
" 피는? "
" cross matching해야해서 좀 시간 걸린대요."
" 그럼 피 오는대로 subclavian에 연결하고 50cc syringe(주사기)를
3 way로 연결해서 피 좀 짜줘요. 어시스트 이 새끼는 왜 아직
안와? "
" 연락 했는데..."
" 다시 전화 해요. 지금 당장. "
말 끝나기가 무섭게 뻘건 눈으로 수술방으로 들어온다.
" 야 이새끼야, 넌 연락한지가 언젠데 지금 나타나? "
" 죄송합니다. 과장님. 수술방에서 전화를 다시 주기로 했는데..."
" 어머, 왜 내 탓을 해요? 내가 오라고 연락했잖아요. "
" 아 C 환자 올라온다고 응급실에서 전화오면 다시 연락 주기로
했잖아..."
" 나 혼자 수술 준비, 마취준비 하고 마취과장님 전화받고 하는데
그럴 시간이 어디있어요? "
" 아 그래도..."
" 뭘 그래도야...체..."
" 아 시끄러 둘다. 너도 이 새끼야 빨리 준비 안해? 니가 다
보고받고 일하는 군번이야? "
"...."
"...."
마침 마취과장이 들어온다.
" 과장님, 환자 상태는요? "
" 예, 죄송해요 과장님. 지금 fluid를 full로 주고 해서 조금 올랐어요.
70/40 입니다. "
" 바로 마취할게요. "
" 예, 전 바로 painting(수술시에 소독약으로 수술부위를
광범위하게 닦는 과정) 하겠습니다."
마취제가 투여되고 마취과장이 intubation(기관삽관)을 하는 동안
수술포가 덮여지고, 곧이어 바로
long midline incision(복부 정중앙에 길게 세로로 하는 절개)을
시작한다. fascia(근막)까지 한 칼에 드러난다.
주) 복벽은 총 7층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복강 안에까지
들어가려면 수술용 메스로 피부를 절개하고도 bovie라는
전기소작기를 사용하여 여러 층을 반복해서 열고 들어가야
한다.
마취과장에게 말했다.
" 과장님, 배 열리면 BP(혈압) 떨어질 겁니다."
어시스트에게 말했다.
" 넌 열리자 마자 suction 두개 다 넣어. "
배를 열자마자 마취과의 모니터가 저음과 고음으로 번갈아가며
시끄럽게 울려댄다.
" 어...어... 과장님 혈압떨어져요.."
" 예, 압니다. fluid좀 세게 틀어주시고 혈액 좀 syringe로
짜 주세요. "
복강안에는 다량의 혈액이 고여있고 일부는 응고되어 소위 '선지'가 가득하다.
이럴경우 suction으로는 흡입되지가 않는다.
" 야..이 C... 잘 좀 잡앗, 손으로 퍼 내야됏...
석션... 석션... 옆에 넣으란 말이얏...
아니 거기 말구 이새끼얏..."
욕설이 난무하지만 아무도 반항하지 못한다.
" Bleeding focus(출혈부위)를 찾아야 한다 말얏...
안 보이잖아... 불 좀 제대로 맞춰봣..."
이런 대량의 복강내 출혈 환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출혈부위를 빨리 찾아내어 지혈을 하는 것인데, 복강안에 혈액과 선지가 가득 차 있다보니 찾기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열심히 찾는 동안에도 출혈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 vein(정맥)에서의 출혈은 압력이 낮아서 질질질 흘러 나오는 양상이지만 artery(동맥)에서의 출혈은 심장의 수축과 함께 펑펑펑 솟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그 출혈량도 많다.
어지간히 선지를 걷어내고 suction을 해내면서 시야가 확보되기 시작한다.
" saline !! "
" 예. 여기요. "
간호사가 수술용 스포이드(실험실에서 쓰는 그런 작고 귀엽게 생긴게 아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엄청 큰 스포이드이다.)에 saline(생리식염수)을 담아준다.
" 아이 C... 이거말고 큰 통에 담아서 주란 말이야..."
" 예, 죄송해요."
scrub 간호사가 스테인레스 통에다 생리식염수를 두 통(2L)을 담아서 건넨다.
촤아악...
suction은 희석되기 시작하는 혈액을 연신 빨아낸다.
" 또..."
촤아악...
" 더..."
촤아악...
혈액과 섞인 물이 밖으로 흘러나와 수술가운, 수술복을 지나 팬티까지 적신다.
기분나쁜 뜨듯함이 발 아래 슬리퍼까지 흘러내린다.
' 까짓거 팬티야 벗어버리면 되지...'
그때...
보인다. 찾았다...
소장의 장간막에 찢어진 부위와 함께 artery에서 펑펑 솟고 있는
출혈부위가 보인다.
" Kelly(수술용 겸자) !! "
따라락...
경쾌한 소리와 함께 출혈부위가 결찰되자 혈압이 훅 올라간다.
" 됐어요, 과장님. 혈압 올라갔습니다."
마취과장이 안도의 한숨으로 미소짓는다.(물론 눈만 보이는거지만...)
" 자.. 이제 한숨 좀 돌리자...휴..."
▶3편에서 계속 ※’Antonio Yun의 진료실 이야기'의 저작권은 저자인 외과 전문의 엄윤 원장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댓글보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