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인산화효소들은 세포가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꼭 필요한데 지속적으로 활성화되면 정상적인 세포가 암세포로 전환될 수 있다. 암세포들은 주위 세포들의 안녕을 해치면서 이기적으로 영양분을 소비하며 증식한다. 암세포는 암조직에 따라 서로 다른 몇 가지 인산화효소들이 지속적으로 활성화돼 있다. 암세포들이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것을 멈추게 하려고 항암제 개발자들은 이 단백질들의 기능을 억제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이 효소들 중에서 BTK(아래 설명 참조)가 큰 관심을 받게 된 약물 타겟으로 떠올랐으며 비교적 최근에 획기적인 신약들이 차례대로 개발됐다. 기능을 억제하는 저분자의약품이 2016년 제1세대 백혈병 치료제로 허가됐으며, 2017년과 2019년 제2세대 치료제 2가지가 추가로 허가됐다. 지금은 혈액암을 넘어 고형암까지 적응증을 확장하기 위한 임상시험들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제1세대 치료제의 성공과 제2세대 치료제의 출현 및 앞으로 발전 방향에 대해 알아봤다.
소아과 의사였던 오그돈 브루톤(Ogdon Bruton)은 1950년대 폐렴 감염증상을 반복적으로 보이는 8살된 환자가 앓고 있던 병의 원인을 이해하고 항체로 예방 치료했다. 환자들의 혈액에는 림프구들 중에서 항체를 생산하는 B-세포수가 적었으며 혈장에 항체농도가 매우 낮아 거의 존재하지 않는 수준이었다.
이런 병을 앓는 환자들은 항체가 몸에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생후 9개월 이후 혈장내 항체가 거의 소진돼 없어진다. 환자들에게 B-세포와 항체양이 적은 이유는 항체를 분비하는 B-세포들이 증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993년 원인 유전자를 찾았는데, X염색체상에 있는 타이로신 인산화효소로 확인됐다. 이 단백질은 브루톤이 연구하던 X-염색체와 연관된 성염색체 열성 범저감마글로블린혈증(X-linked agammaglobulinemia, XLA)의 원인이었으므로 브루톤의 타이로신 인산화효소(Bruton's tyrosin kinase, BTK)라는 이름을 붙였다.
BTK의 기능과 기능을 억제하는 혈액암 치료제
BTK는 항체를 생산하는 B세포 증식에 관여하는 신호전달계에서 신호를 증폭하는 단백질인데 크게 세가지 역할에 관여한다.
① B 세포의 분열에 필요하며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 유전물질이 복제되는 합성기(synthetic phase) 단계에서 세포 분열이 멈춘다.
② 세포들이 림프절안에서 정해진 조직으로 이동하도록 주화성을 유도하며 안전한 조직에 붙어 있도록 유지 보호한다.
③ B 세포의 자살을 방지한다. 이 효소가 없으면 세포의 자살을 방지하는 단백질(Bcl-xL)이 생산되지 않으며 그 결과 B 세포들은 대부분 자살을 수행한다. BTK가 B세포의 분화와 증식 및 생존에 필요하지만 너무 많으면 혈액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 B 세포의 양을 적정수준으로 유지하려면 BTK의 양이 적당하게 유지돼야 한다. 세포내에서 이 효소의 양이 너무 증가하지 않도록 제어하는 관여하는 몇가지 분자들과 방법이 알려졌다(아래 Box 1 참조).
Box 1. 세포내 BTK 양 조절과 만성림프성 백혈병. BTK는 자신이 스스로 많이 만들어지게 하는 (+)조절작용을 한다.
우리 몸에는 이 단백질의 양이 너무 많아지면 혈액 암으로 발전할 수 있으므로 양이 더 늘어나지 못하도록 (-)조절하는 방법도 있다. 예를 들면 B세포 표면에서만 발현되는 수용체(FcγRIIB)은 혈액내에 항체가 많아졌을 때 이 항체들과 결합하면 인산화된 BTK에서 인산을 제거하고 기능을 억제한다. 그 결과 B-세포 증식이 중단된다.
BTK 기능 억제는 전사 RNA수준에도 이루어진다. iBTK 단백질을 직접 RTK에 붙어 기능을 억제하고 기금까지 3가지 miRNA들은 mRNA를 제거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그런데 BTK의 발현에 영향을 미치는 부위 혹은 단백질 코딩부위에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이런 조절기능이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거나 효능이 감소한다.
만성림프성백혈병(chronic lymphocytic leukemia, CLL) 환자들의 몸에서 인산화효소인 BTK가 관여하는 정황이 있다. B세포 증식과 관련된 신호전달체계에서 첫 단계에 있는 수용체(BCR)에 박테리아와 같은 외부 항원 뿐 아니라 비근육성 미오신, 비멘틴, 자살한 세포, LDL 단백질과 같은 자체항원이 붙는다.
그러면 BTK에서 신호가 증폭돼 B세포가 증식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병균과 같은 외부항원에 반응해 이 병균을 제거하는데 필요한 세포가 증식된다. 그런데 이 수용체들이 자신의 항원에 반응해 필요이상으로 B세포를 증식시키며 그 결과 만성림프성백혈병이 시작되는 증거들이 쥐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혈액 암세포 생존에 필수적인 이 단백질의 기능을 억제하면 백혈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추론됐다. 2013년 최초로 이 단백질의 기능을 억제하는 저분자약물인 임브루비카(상품명 Imbruvica, 성분명 ibrutinib)를 약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증거가 만들어졌다.
이 물질은 소규모 임상시험에서 뛰어난 치료효과를 보였다. 만성림프성백혈병 환자 85명 중에서 암이 더 진전되지 않고 생존하는 환자들이 75%였으며 전체 생존율은 83%였다(Byrd et al, 2013 N Eng J Med 369:32-42). 이보다 뛰어난 효능을 보인 항암제는 없었다.
이 약은 유전자에 돌연변이 유무 혹은 이전 치료경험과 관련없이 모든 부류의 환자들에게 뛰어난 치료효과를 보였다. 임상시험 2상에서도 68% 치료효율을 보였으며, 임상시험 1/2상 결과들을 바탕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혁신신약후보로 지정(Breakthrough Designation)됐다. 임브루비카는 2013년부터 2019년까지 꾸준히 적응증을 확장했으며 각 임상시험마다 획기적인 신약, 우선심사권(Priority Review) 혹은 희귀질환용 신약(Orphan Drug)으로 지정됐다.
그 결과 임상시험결과 리뷰와 승인절차의 속도를 높이거나 시장과 약값을 보장받았다. 신약을 개발했을 때 초기 승인부터 점차적인 적응증 확대를 해가는 과정을 교과서와 같이 보여주고 있으므로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이 글 밑에 전과정을 요약해 놓았다(맨 아래 표 1 참조).
임브루비카는 다른 일반적인 항암제들과 달리 암세포를 직접 죽이지 않는다. 그 대신 B세포의 증식 및 생존과 암조직의 미세환경을 변화시키는 신호전달체계를 억제한다. 이 과정을 통해 림프구증가증을 원래 상태로 회복시킨다. 약을 사용한 초기에는 림프구가 잠시 증가하지만 몇 주 내에 정상적인 상태로 감소하고 장기간 복용하면 빠르고 확실하게 감소한다.
전통적인 항암제들은 암세포들을 죽이기 때문에 많은 암세포들이 터지면서 생기는 대사이상증상이 나타나지만 임브루비카는 이런 증상을 유발하지 않는다. 암세포들을 집같이 편안하고 안전한 림프기관에서 붙어있지 못하도록 쫓아내므로, 이들이 부랑아처럼 은신처 밖으로 흩어져서 떠돌다가 몸 이곳 저곳에서 서서히 죽어간다(anoikis).
임상시험에서는 짧은 기간동안 약의 효능을 기존에 사용하던 치료약과 비교했으며, FDA 허가를 받은 후 몇 년간 효능과 부작용을 추적 조사했다. 몇 년간 복용하면 효능은 더 좋아지고 부작용은 감소했으며 암이 진전되는 환자들은 거의 없었다.
5년 이상 추적한 결과 다른 약으로 치료한 것보다 환자들에게 안전하며 효과적이었다. 다른 약으로 치료를 받다가 재발한 환자와 처음부터 치료한 환자들을 모두 합하면 89% 환자들에게 효능이 확인됐다. 이 약은 효능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암을 완치시키는 증거가 없으며 평생 복용해야 한다.
효능이 뛰어난 항암제 이기는 하지만 장기간 복용하는 동안 약에 내성을 갖는 환자들도 나타났다. 또 이 약을 복용할 때 심한 출혈 혹은 면역과 관련된 부작용이 보고됐다. 이런 부작용은 임브루비카가 RTK 외에도 TEC계열 인산화효소(TEC, BMX, ITK)에도 결합하기 때문이라는 증거들이 밝혀졌다.
경쟁의 서막, 제2세대 RTK 억제제 승인
다른 인산화효소에는 붙지않고 RTK에만 선별적으로 붙는 물질들이 개발됐다. 이렇게 특이도가 높은 첫번째 약물은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ca)에서 개발한 칼퀜스(상품명 Calquence, 성분명 acalabrutinib)였다. 이 약은 임브루비카와 효능은 비슷한데 출혈과 면역관련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다.
칼퀜스는 2017년 8월 1일 FDA로부터 획기적인 치료약(Breakthrough Therapy)으로 지정됐으며 같은 달 2일 신약신청접수를 접수 받으면서 우선심사권(Priority Review)을 부여했다. 그리고 약 3달이 지난 2017년 10월 31일 성인 MCL(위 그림 1 참조) 환자 치료제로 허가했다. 추가적인 임상시험 결과 그 후 2년이 경과한 2019년 11월 21일 성인에게 흔한 만성림프성백혈병(CLL) 환자 치료제로 적응증을 확장했다.
적응증을 확장하기 위해 이전에 다른 방법으로 치료를 받다 재발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ASCEND)과 이전에 치료경험이 없는 환자들을 모집한 임상시험(ELEVATE-TN) 두 가지를 시행했다. 올해 2019년 봄에는 이 약이 재발한 환자들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적합하다고 발표했으며, 6월에는 다른 방법으로 치료받은 경험이 없는 환자들도 암진행이 멈추고 생존율이 높아진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2019년 11월부터 이 약은 1차 및 2차 치료제로서, 단독으로 사용하거나 병용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됐다. 칼퀜스를 임부르비카와 직접 비교한 임상실험은 없었다. 그러나 칼퀜스는 효능은 비슷하지만 부작용은 확실히 개선된 2세대 MCL/CLL/SLL치료용 항암제로 간주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제약회사인 베이진(BeiGene)이 브루킨사(상품명 Brukinsa, 성분명 zanubrutinib)를 MCL 환자 치료제로 허가를 받았다. 이 치료제도 올해 8월 21일 우선심사권(Priority Review)을 받았으며 3달이 경과하기도 전인 11월 14일 신약 승인을 받았다. 이 약은 중국에서 개발해 처음으로 FDA 승인을 받은 항암제로 기록됐다.
미국 머크(MSD)는 2019년 12월 아큘(ArQule)을 인수해 기존 BTK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들에게 효능을 보이는 새로운 BTK 저해제를 확보, 이 분야 경쟁을 달궜다.
제2세대 약물인 칼퀜스와 브루킨사 모두 적응증을 확장하기 위한 추가적인 임상시험을 실시하고 있다. 한편, 제1세대 약물인 임브루비카는 혈액암을 넘어 고형암 치료제로 사용하기 위한 임상시험들 및 면역관문 억제제와 같은 다른 항암제들과 병용치료를 위한 임상시험들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크리스탈지노믹스에서도 BTK저해제 물질 CG-806을 앱토즈 바이오사이언스(Aptose Bioscience Inc.)에 기술이전 했다. 이 회사는 표준 항암치료요법에서 치료효과를 보지 못했거나 실패한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소림프구성 림프종 (CLL/SLL) 및 비호지킨스림프종 (NHL)을 포함하는 재발성 또는 난치성 B세포 악성종양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1상을 현재 미국에서 진행하고 있다.
크리스탈지노믹스에 따르면 미국 FDA로부터 개발 단계에 있는 희귀질환치료제(Orphan Drug) 지정을 받아 7년간 시장 독점권 및 신속 승인 신청을 할 수 있게 됐다.
1세대 RTK 억제제 임브루비카에서 얻은 교훈과 숙제
RTK의 기능을 억제하는 저분자의약품 개발의 역사를 되돌이켜 보면 배울 점들이 다수 있다.
첫째, 여기서 임브루비카의 개발역사는 기술하지 않았지만, 어느 분야이든 그 분야에 선례가 없는 퍼스트인클래스(first-in-class) 신약을 개발하기는 매우 어렵다. 신약개발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은 물질탐색에서부터 첫 번째 FDA 승인을 받는 과정까지 어려움이 녹아 있는 역사를 찾아보도록 권하고 싶다.
둘째, 임브루비카 개발 역사를 보면 혈액암들 중에서도 처음부터 시장이 큰 혈액암을 공략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승인 받기 쉬운 혈액암인 MCL치료제로 일차 허가를 받은 후 점진적으로 적응증을 넓혀갔다.
셋째, MCL 환자는 미국의 경우 연간 8990명 정도밖에 발생하지 않는다. 환자수는 적더라도 희귀질환치료제(Orphan Drug status)로 지정 받았기 때문에 시장규모가 결코 적지 않다.
넷째, 신약개발 단계마다 논문들이 발표됐다. 예외적으로 많기는 하지만 1세대 약물에 대해 총 3621개의 논문이 발표됐으며 그 중 36개는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슨(NEJM)에 발표됐다. 이렇게 발표된 논문들이 FDA 승인과정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다섯째, 이 신약들은 모두 임상시험결과를 리뷰하고 허가를 부여하는 과정이 신속하게 처리되는 속성과정을 거쳤다. FDA는 치료방법이 없는 질병 치료방법이나 기존치료방법보다 월등히 우수한 치료방법을 환자들이 빠른 시일내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①신속심사(Fast Track) ②혁신치료제(Breakthrough Therapy) ③가속승인(Accelerated Approval) ④우선심사(Priority Review) 네 가지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이런 제도를 이용하면 개발기간을 최소한 6개월 이상 단축할 수 있으며 그만큼 개발경비는 줄이고 매출은 높일 수 있다. 참고로 임브루비카는 출시 첫해에 1조원 매출을 기록했다.
여섯째, 임브루비카의 가격은 환자 한 명당 1년에 14만 4000달러(약 1억 5000만원) 정도다. 이 약을 자몽과 복용하면 흡수양이 4배 정도 증가한다. 약 값을 4배 정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된다. 개발사는 약 값을 줄이기 위한 임상시험은 할 이유가 거의 없다. 이런 임상시험은 의료보험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위해 국가기관에서 수행하는 방법을 고려해 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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