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근무가 설레는 다섯 가지 이유
정액수가제 특수성
비용 절감 위한 다양한 모습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도 인구 노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편이다. 노인을 상대로 한 산업이 커질 것은 명백하고, 의료라고 예외는 아니다. 2002년 54개이던 요양병원은 2012년 1,103개로 10년 만에 20배가 증가했다.
의사 일자리가 늘었다고 마냥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요양병원은 '일당 정액제'라는 독특한 수가제가 적용이 되고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은 병원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적응해왔기 때문이다. 잘 갖추어진 큰 병원에서만 근무하던 의사들이 요양 병원에서 처음 봉직의를 하게 되면서 마주치게 되는 점을 고려해 보았다.
1.신약(?)에 대한 다양한 경험
요양병원에 근무하면 처음 들어본 많은 약물이 우리를 설레게 한다. 즐비해 있는 낯선 약들은 내가 수련병원을 떠난 이후로 얼마나 안일했고 새로운 약에 관심이 없었나 반성하게 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니깐.
어떤 성분인지를 찾아내면 '이런 흔한 성분'에 '이런 낯선 상품명'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제네릭을 싸잡아 매도하던 '밀가루'라는 단어가 인제야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났음을 깨닫게 된다. 꽤 다양한 제네릭을 처방했다고 자부하던 의사들에게 '겸손함'은 보너스다.
2.중국어 향상의 기회
요양병원에는 2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간병인이 많다. 그들은 '한국말이 가능한 중국인(혹자는 조선족이라고도 한다)'으로 환자를 사이에 두고 그들끼리 중국말로 소통을 한다. 가끔 담당자에게 걸리면 혼나기도 하지만.
환자에겐 무심한 그들이지만, 의사에겐 "원장님"하면서 존중해주니 마음만 먹으면 중국어 1:1 과외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중국인 환자들이 밀려온다니 시기 또한 적절하다.
간병인 되는 과정이 간소화되어 '한국말 하는 중국인'들이 쉽게 일할 수 있다고 하니 여러모로 의사에겐 이득이다. 힘들게 한 욕창 무균 소독을 환자 목욕 시키면서 시원하게 날려주실지라도 말이다.
'한국말 하는 중국인'에겐 코리안 드림을, 요양병원 의사 당신에겐 중국어 향상의 기회를.
3. 임기응변의 향상
세상도 아직 내가 완벽한 의사가 아닌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다시 한 번 수련의 기회를 준다. 전쟁 가능성이 있는 좁은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갖춰지지 않은 환경에서의 최선의 의료'란 테마는 필수다. 부족하면 다시 쓰고, 없다면 대체하라.
한 번 쓰면 삶을 마감하던 많은 의료용품이 E.O 가스에 의해 새 삶을 찾고,
'PPI는 짱, H2blocker는 쓰레기'라던 본인의 생각이 얼마나 짧았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4. 놀라운 간호사(?)의 능력
대학병원에서 일개 레지던트였을 뿐이었는데, 순식간에 그것도 아직 머리가 빠지기도 전에 '원장님'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어딜 가나 사람들은 나를 '원장님'이라 부르고, '원장님' 힘드시다고 간호사들이 많은 일을 도와준다.
환자들 상처 소독을 해준다. 그런데 가끔 심한 욕창도 해준다.
T-tube와 L-tube도 갈아준다
술기에 시범을 보여 주면 적극성을 가지고 대신해준다.
재야의 숨은 고수 간호사들이 요양병원에 다 숨어 있었다며 감탄하던 찰나 그들 모두가 실은 간호조무사였음을 알고는 뒷맛이 약간 개운치 않게 된다.
5. 검사실 직원과의 돈독함 유지
검사 독촉 전화로 짜증만 내던 진단 검사실 직원을 인간적으로 대할 수 있다.
폐렴 환자에 항생제 주사 좀 쓸려면 조건이 있는데, X-ray에서 폐렴 소견이 없으면 일단 탈락이다. 2차로 패혈증 조건을 만지작거리게 되는데, 그때는 백혈구 수치가 중요하다. 아슬아슬하게 기준치에 도달 못 한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자비부담'의 이유를 한참 설명해줘도 보호자들은 납득을 못하는 경우가 많고, 전원을 보내자니 환자와 보호자 가는 것도 고생이고 나 역시 '폐렴도 못 고치는 의사'로 낙인찍히는 것 같아 기분이 영 별로다.
하는 수 없이 검사실로 달려가 백혈구 몇백 개는 오차로도 가능한 수치 아니냐며 백혈구 수치 좀 올려서 리포트 해달라고 부탁한다. 맘이 통했는지 순순히 올려준다.
부탁하고 진료실로 돌아오는 길에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스친다.
"내가 지금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거지?"
"그저 폐렴 좀 고칠려고 했을 뿐인데..."
1. 요양 병원에서 아무리 비싼 약을 쓰더라도 보험공단에서 받는 급여는 똑같고, 병원은 바보가 아니다. 요양 병원은 당연하게도 가장 싼 약을 제한적으로 사용하려 한다.
3. PPI와 H2blocker 모두 위궤양의 치료에 쓰이는 약으로 PPI가 더 효과가 좋고 확실하며 가격이 훨씬 비싸다.
EO GAS : 의료용품 멸균을 위해 쓰인다.
4. T-tube : 기관 절개관, L-tube : 비위관
5. 요양병원에서 정주용 항생제를 쓸 수 있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가. 흉부방사선 상 신규 또는 진행성 폐 침윤(new or progressive infiltration)의 소견이 있으면서 다음 중 2가지 이상에 해당되어 폐렴이 확진된 경우
(1) 폐렴으로 인하여 체온이 38°C를 초과하는 경우
(2) 백혈구수가 4,000/㎣ 미만 또는 12,000/㎣를 초과하는 경우
(3) 화농성 객담이 새로 발생하였거나 객담 양상이 변화된 경우, 기침이 새로 발생하였거나 악화된 경우
(4) 흉부 진찰 결과 Rale(Crackle)이 있는 경우
(5) 혈액가스 검사결과 이상이 있는 경우(PaO2가 60mmHg 미만 등)
나. 혈액 내 균 혹은 균 독소가 증명된 경우 또는 감염으로 인한 전신염증반응으로서 다음 중 2가지 이상에 해당되어 패혈증으로 확진된 경우
(1) 체온이 38°C 초과되거나 36°C 미만인 경우
(2) 심박동수가 90회(/분)를 초과한 경우
(3) 호흡수가 24회(/분)를 초과하거나 이산화탄소분압이 32mmHg 미만인 경우
(4) 백혈구수가 12,000/㎣ 초과되거나 4,000/㎣ 미만인 경우, 미성숙 호중성구(immature(band) neutrophils) 수가 10% 초과된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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