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방한 약물을 약사가 임의로 다른 약물로 대체한다는 것은 매우 분노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사전동의도 아니고 사후통보라니…
1. 대체조제 인정에는 오리지널 의약품과 카피약의 품질이 동등하다?
정말 그러하나??? 그렇지 않더라.
우리나라에서 카피약으로 인정하는 약물 효능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다.
오리지널 대비 80% 이상의 효과가 있으면 인정해 준다.
결국 내가 처방한 약의 효능과 대체된 약물의 효능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조금의 차이가 뭐 그리 중요하나?
할 수 있지만 환자의 상태를 주시하고 있는 의사의 입장에서는 환자의 상태가 안좋아진다면 그만큼 속상한 일이 또 없다.
실제로 나는 오리지널약과 카피약을 같이 쓰고 있으므로 그 효능을 직접 관찰하고 있다.(카피약으로 조절이 안되던 환자가 오리지널로 바꾸자 조절이 좋아지는 경우도 제법 있다.)
이런 말을 하면 약사들은 한결같이 되묻는다.
2. 오리지널 약을 처방하는 의사를 별로 본 적이 없다고? 자기들도 처방은 카피약으로 하면서 대체조제에 대해 왜 반대하느냐고?
이에 대한 답은 명쾌하다.
2년 가까이 진료를 해 본 결과 의사들에게는 고유의 처방이 있다.
요즘 TV에서 많이 나오는 유명 셰프들을 보면 각자 고유의 레시피가 있듯이, 의사들도 경험을 통해 자기만의 고유 처방 레시피를 가지고 있다.(카피약이라고 해도 효과가 좋은 약이 그 레시피에 들어간다는 건 두말 할 것 없음)
사람은 전부 다르다.
어느 사람에게는 효과가 좋고 부작용이 적고 등등의 장단점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결국 '오리지널+카피약'의 적절한 조합으로 자신만의 진료를 해가는 것이 의사이다.
그리고 카피약 중에는 오리지널약에 비해 효능이 떨어지지 않지만 약가가 저렴하므로 환자들의 경제 사정을 고려해 처방하는 경우도 매우 많다.
3. 대체조제 불가는 결국 의사 너희들이 제약사로부터 받는 리베이트 지키려고 하는 거 아니냐?
모르는 소리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로컬 개원병원 전체의 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100%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요즘 시대에 리베이트라는 건 헛소리나 마찬가지이다.
걸리면 감사나 조사도 많이 하고, 걸리면 법적 처분을 받는데 어떤 용기로 리베이트를 받을 것인가.
우리 보건지소는 의약분업 예외지역이라서 처방전을 발행하지 않고 직접 약을 드린다.
내가 처방하고, 직접 복약지도하고, 설명도 해주니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다.
약을 보건지소에 구비하다보니 수많은 제약사 영업사원들이 찾아온다. 많을 땐 한 9군데에서 온다.
자기들 약을 좀 써달라고 일부 제약사 빼곤 거의 다 카피약이다.
우리 지소에서는 약을 약 60가지 정도 사용하는데 약 20가지가 오리지널이다.(만성질환 등 장기복용하는 약들이 주로 그렇다.)
내가 온 후 서서히 바꾸어서 들여오는 오리지널의 수가 늘었다.
당연히 제약회사 직원들의 반발도 심했고, 중간도매 제약회사 직원은 노골적으로 이 약 저약 써달라고 반협박까지 했다.
오리저널 약은 보통 수입후 우리나라 제약회사들과 협력해서 유통시킨다는데 마진이 훨씬 적다고 한다.
제약사들이 써달라는 약들은 듣보잡 약들이 많다. 그런 약물은 아마도 이득이 많이 남을 것이다.
마찬가지로(대부분의 약사들이 안그러리라고 믿고 싶지만) 약국에서도 이러한 제약사의 유혹이 많을 것이고, 실제로 이득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제약사의 자본과 파워가 강하다.
나는 리베이트를 받을 이유도 없고, 받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주지도 않는다.
그리고 카피약이라고 해도 환자들에게 좋으면 쓴다.
어찌 보면 공중보건의사라는 직무의 특권이기도 하다.
남 눈치 안보고 좋은 약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시간이다.
대체조제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의사들의 돈 욕심이 아니다.
의사라는 직업의 고유권한에 대한 침해이고, 프라이드에 대한 침해이다.
전문성을 인정받은 직업이라면 당연히 그 권한을 인정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나는 아직 미약하지만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길'’에 대해 배우고 있고, 평생 그 소신을 잃고 싶지 않다.
<이 글은 모 공중보건의사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비실명 전제로 게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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