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1.05.21 06:24최종 업데이트 21.05.21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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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GFR 폐암 치료제의 마지막은 분해제가 될까

[칼럼] 배진건 이노큐어 테라퓨틱스 수석부사장/사내이사·우정바이오 신약클러스터 기술평가단장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EGFR(Epidermal Growth Factor Receptor)은 상피세포에 성장과 분화에 관여하는 성장인자 신호와 결합해 세포 안쪽으로 그 신호를 전달하는 수용체 단백질이다. EGFR 돌연변이는 폐암의 80~85%를 차지하는 비소세포폐암 중 30~40%에서 관찰되는 흔한 돌연변이 유형이다. 특히 두 가지 EGFR 활성변이(del19와 L858R)가 발생하는 비율이 아시아인에서 더 높다고 알려졌기에 대한민국을 비롯해 아시아 지역의 환자가 상당하다.

EGFR TKI(tyrosine kinase inhibitor)로는 이레사(IRESSA, 성분명 게피티닙)가 2003년 6월 기존 화학요법에 실패한 비소세포 폐암(non-small cell lung cancer, NSCLC) 치료제(수술 불가능 또는 재발한 경우)로 처음으로 허가를 받았다. 2002년 7월 5일 일본에서 세계 최초로 허가된 이후 2003년 1월까지 환자 2만 3500명에게 투약했으나 이중 173명이 간질성폐렴으로 사망하는 등 심각한 이상반응이 발생했다. 그래도 이레사는 비소세포 폐암환자에 대한 유일한 항암제이며, 기존항암제에 비해 간질성폐렴 발생율이 높지 않고 환자의 수명연장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시판허가를 받았다. 이어 2005년 7월 29일 로슈의 타쎄바(Tarceva, 성분명 엘로티닙)가 비소세포 폐암 및 췌장암 치료에 시판허가를 받았다. 1세대 치료제인 이레사와 타쎄바는 기존 치료법인 화학요법 대비 부작용은 줄이면서도 생존기간을 연장하며, '표적항암치료'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립하는 데 한몫을 했다.

EGFR TKI제제가 지속해서 개발되면서 EGFR 변이 양성 비소세포 폐암 환자들에게 쓸 수 있는 치료 옵션이 늘었다. 지오트립(Giotrif, 성분명 아파티닙)이 2014년 1월 29일자로 국내에서 허가를 받았다. 지오트립은 EGFR 활성변이가 있는 비소세포폐암 환자에서 암세포의 성장, 전이 및 대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ErbB Family(EGFR=ErbB1, HER2=ErbB2, ErbB3, ErbB4)에 모두 작용하는 2세대 표적항암제다. 특히 기존 표적치료제와 달리 수용체와의 친화도가 매우 높아 수용체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고 지속해서 작용해 암 세포의 신호전달을 비가역적으로 억제함으로써 장기간 질환의 진행을 억제하고, 내성 발현의 위험을 줄여 치료 반응률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2세대 약물인 화이자의 비짐프로(Vizimpro, 다코미티닙)가 2018년 9월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허가를 받은데 이어 2020년에 국소진행성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제로 국내서 품목허가를 받았다.

동양인에서 유독 발병률이 높은 EGFR 활성변이 폐암은, 표적항암제인 EGFR TKI가 개발된 이후 치료 성적에 괄목할 만한 발전이 있어 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 2세대 EGFR 표적치료제의 무진행 생존기간은 8~15개월로, 중추신경계 전이가 빈번하지만 혈액뇌관문(BBB) 통과가 힘들어 중추신경계 전이 조절이 어렵거나 치료 중에도 중추신경계 전이가 발생한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또한 1, 2세대 EGFR-TKI 치료 후 약 3분의 2의 확률로 T790M이라는 이차 돌연변이로 내성이 발생하고 있어 보다 효과적인 치료제의 개발이 필요하였다. 특히 EGFR 변이 폐암 환자에서 더 높은 비중으로 발생하는 뇌전이 치료에 대한 의료적 미충족 수요가 3세대 치료제의 개발로 이어졌다.

이런 측면에서 비가역적, 3세대 EGFR-TKI로서 EGFR 민감성 변이 및 T790M 내성 변이에 강력하고 선택적으로 표적치료를 진행하도록 설계된 타그리소(성분명 오시머티닙)는 최적의 치료 옵션이다. 타그리소는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에 기존 치료제 대비 개선된 생존혜택은 물론 대표적인 내성 변이인 T790M 양성 환자에 대한 치료 효과를 입증하면서 2016년 EGFR TKI 투여 후 EGFR-T790 변이가 확인된 국소진행성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환자에 대한 투여로 시판허가 받았다.

FLAURA 임상에서 기존 표준요법 대비 현저히 개선된 무진행 생존기간을 기록하며 1차 치료 적응증을 획득한 케이스다. 무진행생존기간(중앙값)은 1세대 EGFR TKI 치료군이 10.2개월, 타그리소 치료군이 18.9개월로 의미 있게 개선됐다. 아울러 3등급 이상 이상반응 발생률도 1세대 EGFR TKI 치료군과 유사하게 나타나 안전성도 확인됐다. 특히 뇌전이 환자에서 생존 혜택이 더욱 두드러지는 등 뛰어난 효과를 보이며 이제는 가이드라인에서도 최우선 권고되는 약제로 자리잡았고 2018년 미국 FDA는 1차 치료제로도 허가했다.

그러나 타그리소를 경쟁하는 강자가 태어났다. 1월 대한민국 신약 31번째로 허가 받은 유한양행의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다. 렉라자는 T790M 저항성 돌연변이가 발생해 1~2차 치료제 저항성 돌연변이가 발생한 3세대 표적치료제이다. 타그리소의 강력한 대항마다. 렉라자는 혈뇌장벽(BBB)을 잘 통과할 수 있어 뇌로 전이된 폐암환자에게 우수한 효능을 보인다. 그러기에 타그리소와 마찬가지로 1차 치료제로 적응증을 확대하고자 한다.

문제는 지난해 3조원대 매출을 올린 타그리소로 인해 발생한 내성 돌연변이이다. 물론 렉라자도 그런 돌연변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C797S’는 바로 4세대 돌연변이 치료제를 필요로 하는 돌연변이이다. 그런데 4세대 돌연변이는 단순하지 않다. 타그리소를 1차 치료제로 복용했다면 2중 변이이지만 1~2세대 치료제(T790M 돌연변이), 타그리소(C797S 돌연변이) 등을 모두 복용했다면 삼중 돌연변이이다. 브릿지바이오 테라퓨틱스가 바로 이 삼중 돌연변이를 지닌 4세대 치료제 시장에 뛰어들었다. 뇌로 전이되는 비소세포암 특성상 이 4세대 치료제는 뇌에 BBB를 넘어 들어가야 한다.

유전자 변이가 일어날 때마다 EGFR의 모양은 조금씩 바뀐다. 한 가지 약물이 모든 변이의 활성을 막을 수 있으면 좋은데 그것이 가능할까? 한가지 약물로 모든 변이체의 활성을 막으면 좋겠지만 선택성의 문제 때문에 가능하지 않기에 EGFR을 분해시켜 아예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 바로 선택적으로 단백질을 분해하는 '프로탁(PROTAC)' 접근 방법이다. 기존 약물들은 표적 단백질의 기능을 억제할 수 있는 특정 활성 부위나 결합 부위에 반드시 결합해야만 약효를 낼 수 있었다. 이에 비해 프로탁은 결합 부위와 상관없이 표적 단백질을 그저 분해할 수 있는 위치(Proximity)에 가깝게 붙들어줄 수만 있게 하면 되는 장점이 있다. 프로탁은 표적단백질에 결합하는 리간드(Warhead), 링커(linker), 그리고 E3 리가아제 리간드(Binder)로 구성돼 있다. ‘E3리가아제’는 체내 단백질 분해 시스템을 일으키는 효소다.

질병 단백질인 EGFR에 정확하게 결합할 수 있는 약물인 'Warhead'에 무엇을 붙여야 하는가? 1세대인 게피티닙, 엘로티닙이 첫 후보자로 떠오른다. 하지만 2세대 더 넓은 영역의 EGFR에 붙는 아파티닙 혹은 다코미티닙을 붙여야 할까? 다음 옵션은 3세대인 오시머티닙 혹은 레이저티닙일까? 3세대들은 비가역적이기 때문에 더 좋은 Warhead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프로탁은 촉매 역할을 해 분해효소가 다시 작용하는 특징이 장점인데 비가역적인 Warhead는 'recycle'이 되지 못한다. 즉 촉매가 되어 분해효소가 계속 돌아가지 못한다. 아마도 3세대 약물은 시스테인에 붙을 비가역적인 부분에 링커를 매다는 경우로 치환되는 전략은 가능할 것이다.

프로탁은 '위치 주도형(Proximity-driven)'이고 분해 유도 능력은 일시적인 표적단백질-프로탁-E3 리가아제 삼중 복합체 형성에 달려 있는 '발생 주도형(Event-driven)'이다. 분해 발생 이후에 분리된 프로탁이 표적 단백질과 추가적인 삼중 복합체를 형성해 표적 단백질이 없어질 때까지 여러 번의 분해 과정을 진행할 수 있다. 프로탁이 ‘마법의 묘약’으로 모든 EGFR 돌연변이 단백질을 분해시키는 끝판왕 등극이 가능할까?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려 봐야 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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