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정치에 참여하고 잘못된 법안 막으려면...의협이 정치인에 표심 연결시킨다는 인식 심어줘야"
박인숙 전 의원 박형욱·서민 교수 대개협 강연 "국민을 설득하는 의료정책, 의사 인플루언서 역할 중요"
[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의사들을 옥죄는 법안이 국회에서 끊임없이 발의되고 의료제도가 정치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의사들이 진료실만이 아니라 사회, 그리고 정치에 두루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대한개원의협의회는 16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의사와 사회, 정치’를 주제로 온오프라인 2021 의료정책 심포지움을 열었다.
대개협 김동석 회장은 “민주주의는 국가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한 정치제도다. 하지만 정작 주권을 가진 국민은 정치에 무관심하고 맹목적인 정치색으로 의사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대부분의 의사는 진료에 전념하면서 일반 국민보다 더 정치에 무관심할 수 있다"라며 "의료계를 압박하는 수많은 규제는 정부와 국회의 정치권에서 만들어내고 있고 의사의 명운을 좌우할 심각한 법안들이 정치적으로 처리되는 경우만 많아지고 다따”라고 했다.
김 회장은 “이에 따라 의사가 정치와 사회와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며 "진료환경을 개선해 의업이 신성하고 존중받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대개협은 지난 12일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필수의료 분야에서는 의사들의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을 건의했다.
의료계에 정치란...의협이 표심으로 연결시키는 힘있는 단체가 되고 나쁜 제도 막아야
이번 21대 국회에선 의사 출신 국회의원이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과 이용빈 의원 2명에 불과하다. 박인숙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의원은 '의료계에 정치란 무엇인가' 강연을 통해 의협이 국회의원들에게 표로 연결되는 중요한 단체로 부각돼야 한다는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전 의원은 “국회의원으로 일했던 지난 8년을 돌아보면 하루하루가 전쟁이었고 투쟁과 싸움의 연속이었다”라며 “현실은 훨씬 더 나쁘고 전쟁터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는데 눈치를 보면서 소신껏 하지 못해 굉장히 큰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은 3가지의 임무가 있다. 법안을 만드는 것과 중앙당의 임무가 있고 지역주민을 위한 임무가 있다. 각각 3분의 1씩 해야 하는데, 어떤 의원은 당만 쳐다보기도 하고 어떤 의원은 지역만 챙기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특히 중앙당의 당론을 눈치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그는 설명했다.
박 전 의원은 “코로나19가 시작한지 1년인데 앞으로 최소한 1년은 더 갈 것이라고 본다. 의료계가 직격탄을 맞고 있기 때문에 생존전략을 잘 짜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의료계에선 유일한 공식 정부와의 소통 채널인 대한의사협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의원은 “다른 단체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정부와 정치권은 공식적으로 의협과 이야기를 하게 돼있다"라며 "핵심은 국민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의협은)국민이 의지하고 신뢰하고 존중하는 단체가 돼야 한다. 이런 면에서 의료계는 실패하고 있고 갈수록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박 전 의원은 “정치인은 국민만 본다. 의료계는 정부와 정치권에 관심이 많다"라며 "정치권과 정부에서 볼 때 의협은 약자가 아니면서 표가 많지가 않다. 국민은 약자이면서도 표가 많다. 정치권의 대부분은 표 계산이라 국민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 전 의원은 "정부와 정치권에 의한 잘못된 의료정책의 피해는 국민에게 가기 마련이다. 국민이 모르면 의료계가 알려줘야 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라며 "대안이나 건의가 있다면 일단 국회의원에 의사가 많아야 한다. 하지만 국회의원 당선은 99%가 운이고 거의 로또 수준이다. 하고싶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전략을 잘 짜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료 관련 법안이 그냥 통과되는 일이 많다. 국회의원 당시 의사로서 국회에 있지 않았으면 수많은 법들이 어떻게 됐을지 소름이 끼친다. 위원회마다 의사들이 한 사람씩 있어서 잘못된 정책을 막아야 한다”고 전했다.
박 전 의원은 “국회의원만 고집할게 아니라 시의원, 도의원도 필요하다. 하지만 역시 (의사 출신 국회의원을 배출하기엔)현실의 장벽이 굉장히 높다”라며 “13만 의사들이 의료에 대해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그래야 겨우 개선된다”고 밝혔다.
가령 공공의대 설립은 인구 감소 지역에 선택적으로 의대를 만들자는 법안이었다. 의료표준 용어 사용강제법, 의사 강제 동원법, 필수의료 중단금지법, 검찰청 폐지법, 일가구 일주택법 등이 나오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박 전 의원은 “나쁜 제도도 너무 많다. 코로나19 병실이 모자라 상급종합병원에 병실 1%를 강제로 내놔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병원평가에 반영하겠다고 했다”라며 “이같은 문제를 해소하려면 의료계가 같은 목소리를 내고 '단순, 반복, 집요하게' 주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의원은 “회원들의 절반만 의협 회비를 낸다고 한다. 정치가 움직여야 제도를 바꾼다. 의협 회비도 내고 의사들이 모여서 정치인의 압력 단체가 돼야 한다"라며 "민주주의의 한계가 표심이고 이는 곧 선거제도로 연결된다. 정치인들에게 의협은 힘이 있고 표로 연결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라고 밝혔다.
좋은 정책이란 의료인 정책 관점에서 출발하되 의료인 관점 녹여내야
대한의학회 박형욱 법제이사는 '좋은 의료정책을 만들자' 강연을 통해 국민 관점에서 출발하되 의료인 관점을 녹여내는 정책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박 이사는 “19대 대선 직전에 2017년 더불어민주당과 젊은의사협의체가 간담회를 가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젊은 의사들이 요구하는 정책을 당시 민주당 민주연구원 김용익 원장에게 전달해 전공의 수련비용 국가 투자, 수련환경 개선 등 9개 핵심 어젠다를 제공했다"라며 "하지만 양측이 공통적인 의료정책으로 공유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박 이사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다. 의료계는 새 대통령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했다. 강청희 전 의협 부회장은 의료계 신진세력인 젊은의사들과 함께 더불어포럼 내 의사네트워크와는 별개로 ‘문마네트워크’를 만들어 운영했고 협의체 결성 후 정책건의안을 김용익 원장에게 전달했다고 한다"라며 "그는 대선 결과에서 민주당의 승리는 문재인 대통령을 만들기 위한 젊은 의사협의체의 공로도 컸다고 해석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우고 시행한 것이 건강보험 보편적 보장성 강화,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로 이른바 문재인 케어다. 이에 따라 그는 당시 이들의 비급여의 급여화에 대한 합의 여부에 대해 의문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박 이사는 “(문재인 케어는)의료계의 반대가 많았는데 당시 그런 것을 모르고 (민주당을)지지했나. 아니면 알고 지지했나”라며 “또한 공약 중에서 일차의료 활동을 위한 정책적 지원 약속은 얼마나 진행됐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박 이사는 “정책이라는 것은 정치의 산물이다. 정책은 정책목표와 정책수단에 대해 권위 있는 정부기관이 공식적으로 결정하는 기본방침“이라며 ”정책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의사를 위한 정책은 아니고 정확히 이야기하면 국민을 위한 정책이 될 것이다. 의료정책의 목적은 국민 건강과 삶의 질 향상이다“고 밝혔다.
박 이사는 “이는 의료정책 분야의 모순된 이야기도 한다. 정부는 의료의 질은 높으면서도 비용은 덜 들이려고 한다. 비용을 덜 들이면 의료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좋은 의료정책이란 국민 관점에서 출발하되 의료인의 관점을 녹여 내는 의료정책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타당한 정책 결정은 정책목표와 수단을 타당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 이사는 “좋은 의료정책은 앞뒤가 맞는 체계정합적인 의료정책이자 환자와 의사의 자율을 신장하는 의료정책이어야 한다. 국민과 의사의 관점의 조화가 필요하다”라며 “좋은 의료정책을 위한 전략은 우선 의료계 내부의 컨센서스를 도출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에게 의료의 미래를 어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 이사는 “(정책이 통과되지 않았다 해서)지나간 게 지나간 게 아니고 수많은 법안이 다시 나오고 다시 나오고 다시 나온다”라며 “의료의 미래를 어필하기 위해 지금부터 준비하고 시민단체, 정치인, 언론인 등의 정치적 우군을 두루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플루언서가 주는 말의 무게감...의사 인플루언서가 많이 나와야
단국의대 기생충학교실 서민 교수는 ‘인플루언서가 되자’ 강연을 통해 국민들에게 무게감을 주는 '의사 인플루언서'가 많이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서 교수는 “비타민C가 감기를 예방한다고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라이너스 폴링이 이야기해서 화제가 됐다. 감기가 실제로 줄어드는지를 봤는데 그 뒤로 60년이 지나는 동안 비타민 C가 감기를 예방하는지에 대해 계속 논란이 있었다"라며 "만약 그가 노벨화학상을 타지 않았으면 수많은 활동가들 중 하나에 불과했고, 어쩌면 법적 처벌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노벨상 수상을 통한 인플루언서의 사례다. 의사 입장에선 아무리 환자를 잘 봐도 인플루언서가 되기 힘들다. 서 교수는 "이국종 교수가 인플루언서이기는 하지만 수십년간 험난한 외상센터의 길을 걷고 진정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와 별도로 방송에 나가서 롱런을 하려면 예능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가장 현실적으로는 책을 써서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이다. 책을 써야 기사가 나고 방송에 나간다"라며 "소아과 명의는 '삐뽀삐뽀 119 소아과'라는 초베스트셀러를 쓴 하정훈 원장으로 알려져있다. 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정성근 교수는 '백년운동, 백년허리, 백년목'의 백년 시리즈 책을 내서 인기를 끌었고 헬스 매니아들의 우상이 됐다. 발언권을 가진 인플루언서가 됐다”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첫 출간 책인 '마태우스'를 시작으로 '닳지 않는 칫솔', '기생충의 변명', '대통령과 기생충' 등이 연달아 흥행에 실패한 것을 소개했다. 메시지를 담지 못한 탓이었다. 다음 책으로 준비한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은 헬리코박터와 위암이 별로 관계가 없다는 주장이었으나, 헬리코박터의 발견으로 노벨의학상을 수상하면서 책이 주는 메시지의 의미가 없어졌다.
서 교수는 “책을 조급하게 내기보다는 글이 잘 써질 때까지 꾸준히 준비했다. 세상에 나갈 기회를 보고 있다가 훈련 끝에 2013년 '서민의 기생충 열전'이 베스트셀러로 자리잡고 이제 10쇄를 냈다"라며 "현재까지 17권의 책을 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가 가장 많이 팔렸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의사 인플루언서가 되기 위해 책을 쓰는 방법이 있다. 한 사람이 아니라 몇 사람이 책을 쓰게 해서 인플루언서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라며 “책은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지는 만큼 베스트셀러로 만들기 위한 인플루언서로 참여해보길 바란다”고 제언했다.
댓글보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