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회장 "법적 책임소재와 수가 보전이 핵심...원격의료는 엄연히 대면진료 보조, 제도로 인한 손해 없어야"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의료계의 '원격의료'에 대한 시각이 변하고 있다. 그동안 원격의료에 강력히 반대만 하던 것과 달리 최근 철저한 내부 연구와 함께 현실적인 대안 모색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엔 지난 7월 창립된 서울시의사회 원격의료연구회가 있다. 원격의료연구회는 전국 지역의사회 중 처음으로 설립된 원격의료 관련 연구단체로, 최근 의료계 내 원격의료 설문조사를 시행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서울시의사회 원격의료연구회 김성근 회장(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위장관외과 교수, 서울시의사회 부회장)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가는 데 있어 의료계가 무조건적인 반대보다는 합리적이고 선도적인 방향을 찾아가자는 서울시의사회의 바램이 모여 원격의료연구회가 창립됐다고 밝혔다.
원격의료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로 인해 정확한 개념이나 파급효과 등을 모르는 의사들이 많고 내부적으로 구체적인 통계 자료가 없다 보니 효율적으로 원격의료 관련 정책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게 김 회장의 견해다. 특히 향후 원격의료가 확대될 수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이라면 제도 시행의 선행 조건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 중요한데, 김 회장은 ‘법적으로 불명확한 책임소재’와 ‘수가 문제’를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그는 “대면진료와 같은 수준의 법적책임을 묻겠다고 한다면 이에 동의할 수 있는 의사는 없을 것이다. 화면과 환자 진술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수집할 수 있는 정보의 양 자체와 정확성에서도 굉장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수가 문제에 있어서도 “저수가가 기본인 우리나라에서 투여되는 비용이 많은 원격의료에 대해 온전한 수가 보전이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들은 많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김 회장은 최근 연이어 발의되고 있는 원격의료 관련 법안들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전에 비해 구체적인 쟁점들이 포함된 것은 맞지만 의료계와 상의가 없었던 탓에 디테일한 부분에서 부족하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원격의료는 대면진료를 대체하는 수단이 아닌 단순 보조 역할이라는 전제가 확고해야 한다. 또한 제도로 인해 누군가 손해를 보고 불리한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합리적인 정책 방안을 세우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구회는 향후 의료계 내부 논의에서 정치권, 환자단체, 산업계까지 논의 주체를 늘려 원격의료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와 해결책을 연구하고 대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다음은 김성근 회장과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Q. 원격의료연구회 설립 취지는 무엇인가.
대한의사협회 집행부가 바뀌면서 이전 집행부 당시 의협이 정부와 너무 대립하는 모양새를 보이면서 오히려 의료계가 손해를 많이 봤다는 인식이 대의원회 내부적으로 있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무조건 반대만 하는 모습을 탈피하자는 취지가 우선 있다.
또한 지금까지 주로 정부 주도의 의료 정책이 만들어지고 의료계는 이에 뒤따라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이왕 만들어가야 할 제도라면 우리가 주도해 보자는 견해가 주요한 연구회 설립 취지다.
Q. 연구회의 현재 원격의료를 바라보는 시각과 논의 방향성은?
원격의료, 원격진료, 비대면 진료 등 말은 쉬운데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굉장히 복잡하다. 그런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다 보니 찬성과 반대만 놓고 양자택일하라는 식의 접근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으로 의료계와 정치권 모두 마찬가지다. 의료계와 정치권, 산업계가 같이 원칙을 세우고 가능한 분야와 범위는 어디까지고 가능하지 않다면 이유는 무엇인지 앞으로 많은 연구가 병행돼야 할 분야라고 본다.
단순히 해외사례만 따라갈 수도 없는 것이 우리나라는 우리만의 독특한 의료 시스템이 존재하고 사회문화적 차이도 있기 때문에 우리 사정과 상황에 맞는 원격의료 시스템을 찾아보고 이를 기반으로 자유로운 위치에서 정책 대안을 제시해보자는 것이 향후 목표다.
Q. 대한의사협회가 아닌 산하 서울시의사회가 직접 연구회 설립에 나선 이유는?
의협은 의료계 대표 단체라는 점 때문에 부담스러운 점이 있고 의료정책연구소의 기능과 겹치는 부분이 생길 수 있다. 의협이 연구회를 만들게 되면 원격의료를 받아들이는 것이냐는 정치권 해석이 있을 수 있어 운신의 폭도 매우 좁아진다. 이 때문에 지역의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다양한 단체들과 함께 자유롭게 컨센서스를 만들어가는 기회를 만들어보자고 기획하게 됐다.
아주 정확한 의료계 내부의 의견이라고 볼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시대의 변화가 빨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모두 받고 있다. 실제로 전화진료 등 비대면진료의 일부가 허용됐고 환자들의 경험이 쌓이다 보니 원격의료 확대라는 담론을 이어갈 수 있는 추진력이 생겼다. 이 때문에 향후 원격의료가 대폭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원격의료를 아직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아직 제대로 된 정의도 없고 법적인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원격의료가 진행되다 보니 편리하기도 하지만 굉장히 위험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의료계 대다수가 원격의료 확대 정책에 동의할 수 없다고 답변한 것이다.
Q. 원격의료 부작용들에 대한 구체적인 쟁점은 무엇인가?
우선 설문에서도 가장 많이 지적된 부분인 법적인 문제다. 비대면 진료를 했을 때 대면진료와 같은 수준의 법적책임을 묻겠다고 한다면 이에 동의할 수 있는 의사는 없을 것이다. 화면과 환자 진술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수집할 수 있는 정보의 양 자체와 정확성에서도 굉장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환자 안전 문제도 담보할 수 없게 된다. 향후 논의과정에서 혹시라도 환자 범위가 확대돼 초진 환자까지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게 된다면 법적인 면책 부분도 함께 늘어나는 것이 맞다.
또 다른 쟁점은 수가의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 정책은 저수가가 기본 전제다. 현실적으로 대면진료에 비해 비대면 진료에 투여돼야 하는 비용이 크다는 점에서 현재보다 큰 수가가 반영돼야 하지만, 고질적 저수가 정책으로 인해 이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는 의견은 소수다.
의료기관 입장에선 비대면 진료에 필요한 장비와 추가적인 시간 소요, 비대면 진료에 따른 전자 데이터 관리 등 비용을 보상할 만큼의 수가 보전이 있어야 원격의료 확대가 가능하다. 환자 입장에서 원격의료를 통해 왕복 교통비나 하루 휴가를 내야 하는 등 사회적 비용이 줄었다면 감소한 비용만큼 의료기관도 혜택이 있어야 한다.
Q. 산업계와의 관계 설정도 큰 이슈로 볼 수 있을까?
그렇다. 향후 원격의료는 의료산업에서 큰 축을 담당하는 분야가 될 가능성이 높고 많은 원격 의료 플랫폼이 생겨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 이득을 본다면 그 비용이 환자에게서 초래하는 것인지, 정부나 의료계에서 나오는 비용인지, 이런 부분부터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특히 원격의료 확장에 따라 발생하는 많은 의료 데이터를 어떻게 저장하고 보관할 것인지도 큰 이슈가 될 수 있다. 산업계에 해당 데이터에 대한 권한과 활용 여부, 접근 가능성을 부여해야 하는지도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최근 국회의원들이 관련 법안을 냈고 내용을 보면 우려되는 문제에 대한 제한점과 비용 지원, 일종의 면책 부분까지 언급하고 있다. 예전에 비해 굉장히 구체적인 부분까지 신경썼다는 생각은 들지만 디테일한 부분으로 들어가면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예를 들어 고혈압 환자라고 해도 계속 고혈압 환자라는 법은 없다. 재진 고혈압 환자가 주기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통해 약을 타가는 과정에서 다른 합병증이 동반될 수 있고 대면진료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환자의 정확한 상태를 체크하기 어려워진다. 또한 전자 처방 과정에서도 내용 변조나 전송상 문제로 인한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법안은 1차의료기관에서만 비대면진료가 가능하도록 명시했는데 일각에선 3차병원이 오히려 시설이나 장비, 공간적 측면에서 비대면진료에 적합하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는 개원가 혹은 대학병원급 중 어디가 원격의료에 적합하고 효율적일지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조차 없었다. 단지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쏠릴 수 있다는 의견만이 있을 뿐이다. 관련 논의도 더 필요한 상황이다.
Q.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대형병원 원격의료 확대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가.
3차병원들이 별로 원하지 않을 것 같다. 일반 환자 대비 10배 정도 수가가 지원되는 것이 아니라면 대면 외래 환자도 넘치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다. 또한 비대면 진료가 가능한 정도의 경증 환자를 점점 보지 않는 추세이기 때문에 대형병원의 원격의료 확대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Q. 발의된 관련 법안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향후 계획은?
연구회는 지금까지 두 번의 세미나를 진행했고 11월 말 3차 심포지엄을 진행할 예정이다. 어느 정도 내부적인 의견 교류가 끝나면 4차 때부턴 산업계와 정치권으로 논의의 장을 넓혀 의견을 교류하고 이후엔 환자단체 등과도 만나 논의를 진행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이후 진행될 설문조사에선 전문과목별로 원격의료에 시행 여부에 대해 물으려고 한다. 임상과별로 원격의료가 시행될 수 있는 사례와 그렇지 못한 사례가 나눠지는 이유에 대해 살펴볼 예정이다.
Q. 향후 원격의료 등 미래 의료 환경을 예상해 본다면?
물론 자율주행 자동차가 출시되는 것처럼 원격의료도 지금 보다 더 확대될 수 있다고 본다. 5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모르지만 원격의료로 인한 의료 환경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 같다.
특히 원격의료가 확대된다면 일부 병원은 인력 문제로 중환자실에 항상 의사가 상주하기 어려운 곳도 있는데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들만 집중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원격병원도 생길 수 있다고 본다. 즉 의사는 있는데 직접적으로 환자가 오지 않는 병원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성공하지 못했던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제대로 디자인해서 다시 시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만큼 변화가 빨리 도래하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율주행 기술이 있다고 해서 바로 도로에 자율주행 자동차가 늘어나지 않는 것처럼 해결해야 하는 법적인 문제, 안전성과 책임 소재 논란 등 아직까진 해결해야 할 쟁점이 많다.
Q. 원격의료와 관련한 해외 동향은 어떤가?
여러 나라에서 원격의료가 실제 진행 중이고 관련 논의도 많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단순 투약 감독 등 수준에 그치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중국과 미국 등 사례가 대표적인데 이들 나라는 땅이 넓어 의료접근성이 굉장히 나쁘다. 반면 우리나라는 의료접근성이 좋은 편인데 일부 도시와 지방의 격차를 어떻게 메꿔갈지가 우리의 향후 과제라고 본다.
Q. 마지막으로 원격의료 정책 추진에 있어 제일 중요한 한 가지만 꼽자면 무엇이라고 보는지?
우선 원격의료는 대면진료를 대체하는 수단이 아닌 단순 보조 역할이라는 전제가 확고한 상태에서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 또한 제도로 인해 누군가 손해를 보고 불리한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합리적인 정책 방안을 세우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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