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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카자흐스탄 알마티발 인천행 아시아나 항공기 안에서 평소 허혈성 심장병을 앓고 있던 환자가 갑자기 쓰러졌다.
때마침 비행기 안에는 카자흐스탄에서 의료봉사를 마치고 귀국하던 메디시티 대구해외봉사단원 12명이 탑승해 있었다.
김종서 전 대구시의사회 회장 등 내과 전문의 2명을 비롯해 신경외과·신경과·영상의학과·피부과 전문의 등 6명의 의료진과 통역사까지 달려가 환자를 구했다.
기내 응급상황에서 이처럼 탑승자 중에 의사가 있다면 참으로 다행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모든 비행기에 의사가 탑승할 확률은 지극히 낮고, 의사들이 응급상황에 반드시 응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의 의사들은 기내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얼마나 진료에 응할까?
서울대병원 국제진료센터 임주원 교수는 18일 한국항공우주의학협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우리나라 의사들을 대상으로 기내 진료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발표했다.
참고로 1998년 미항공우주의학협회의 설문조사에 참가한 850명의 의사 가운데 기내 응급상황에서 진료에 응했다고 답한 것은 533명(62%)에 지나지 않았다.
임주원 교수가 설문조사한 결과 다행히 한국 의사들은 미국보다 높았다.
임주원 교수는 대한가정의학회와 한국항공우주의학협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기내 응급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하자 445명이 응답했다.
이들 중 기내 응급 상황을 경험한 의사는 96명.
이들에게 기내 응급상황에서 진료에 응했는지 묻자 73명(78%)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기내 응급상황에서 진료에 응하지 않은 의사들에게 그 이유를 묻자 26%는 소송 우려를 꼽았고, 17%는 본인의 진료과가 아니거나, 음주 상태 등 때문이었다고 답했다.
나머지 57%는 이미 다른 의사가 도움을 주고 있어서 응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설문조사 참가자들에게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진료에 응하겠느냐고 묻자 그렇다는 대답은 60% 대로 떨어졌다.
임주원 교수는 "응급 콜에 응하겠다는 답변은 40~50대에서 55%, 60대 이상에서 80%를 기록해 연령에 따라 차이가 있었고, 현행 국내 법률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을수록 도움을 받을 확률이 매우 낮았다"고 환기시켰다.
특히 상당수 의사들은 '선한 사마리아인법'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우리나라도 2011년 3월 응급의료법을 개정, 선한 사마리아인제도를 도입했다.
응급의료법 제5조 2(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에 따라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를 제공해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에 대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으면 행위자는 민사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지 않고,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이 감면된다.
하지만 의사들은 이 제도를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어야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고, 환자가 사망하면 형사적 책임이 따른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임주원 교수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중 96%는 기내 응급상황에 응한 의사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된다고 답했고, 93.7%는 패널티에 반대했다.
임주원 교수에게 의견을 보낸 상당수 의사들도 법적 책임 문제를 거론했다.
"개인적으로 진료에 나섰지만 돌아온 것은 책임밖에 없었다. 앞으로 다시는 진료에 나서지 않을 예정" "환자 사망시 처벌 감면 조항이 의료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 "의사가 무엇이라도 하면 모두 색안경을 끼고 보는 세상에서 기내 응급상황이든 어떤 상황이든 응급처치로 잘 되면 본전이고, 잘못되면 지탄 혹은 마녀사냥을 당할 게 뻔해서 나서지 않는 게 더 현명" "선한 의도에 대해 면책이 없으면 나서는 사람이 없게 될 것"
임주원 교수는 "기내 응급상황에서 의사의 개입은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라면서 "연구 결과를 보면 의료사고 책임에 대한 부담감이 의사들의 참여를 주저하게 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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