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본지의 자매 사이트 메디게이트(www.medigate.net, 의사 전용 포털 사이트)의 관리자는 한 의사 멤버에게 칼럼니스트 서준혁 씨를 소개받는다.
본인을 일본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가라고 소개한 서 씨는 한국과는 다른 일본 의료 환경을 모국의 의사와 공유하고 싶다며 기고를 제안했다.
37세(1978년생), 게이오대학교 IT Professor 조교수, 일본 의사 정신과 수련의
그가 가진 독특한 이력이다.
서 씨는 고등학교 중퇴 후 검정고시에 합격했으나, 고등학교 때 설립했던 전자상거래 사이트가 게이오대 관련자 눈에 띄어 최연소 교수 제안을 받아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2006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
최근 서 씨는 의료 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선, 2009년 게이오의대에 입학해 의사가 됐다고 밝혔다.
메디게이트 포털 사이트(뉴스 말고)가 그의 고정 칼럼을 긍정적으로 고려할 때 쯤, 서 씨의 이력에 호기심을 갖던 전문지들은 인터뷰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얼마 후 SNS엔 그의 인터뷰가 떠돌았고, 새로운 지식에 감탄하는 댓글들이 이어졌다.
4월 4일 그의 첫 메디게이트 칼럼은 게재됐고, 기자는 그 내용에 약간 당황했다.
당시 기자는 해외 원격의료에 관한 기사를 쓴 직후였는데, 서씨가 소개한 일본 원격의료가 기자가 정리한 내용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당시 '권위자'의 오류 가능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기자는 '내 취재가 왜 이따위로 된건가?'라는 자괴감이 먼저 들었다.
권위 앞에 의심을 해제했던 기자
기자의 지식은 권위자 앞에 무릎 꿇었다.
기자의 기억 어딘가에 있던, '미국조차 인공지능 왓슨의 의료 도입이 2010년 이후였다'는 사실은,
서 씨가 전문지 인터뷰에서 주장한 "왓슨, 2009년부터 이미 일본 40개 병원과 협업 중'이란 말에 의심 없이 꼬리를 내렸고,
아직 '일본의 원격의료 수가에 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었던 취재 결과는
"일본 정부, 원격의료 땐 일반 수가 대비 최고 6배까지 지원한다"는 서 씨의 주장에 현지 사정을 모르는 부족한 정보가 됐다.
기자가 넋 놓고 무비판적이었던 건, 그의 칼럼 내용이 다가 아니었다.
"서 교수는 1997년 일본으로 건너가 게이오대에서 정보기술(IT) 박사 과정을 마쳤다. 원격의료, 인공지능 등 의료IT 연구에 주력하기 위해 2009년 게이오의대에 입학했다. 그는 게이오의대병원에서 의료IT 전공 교수 겸 신경정신과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 C일보의 서준혁 씨 인터뷰 기사 중
기자는 조금만 생각해도 오류가 확인되는 이런 기사도 별 의심 없이 지나쳤다.
우리나라처럼 의대 과정이 6년제인 일본에서 서 씨가 기사처럼 2009년에 게이오의대에 입학했다면, 2015년이 돼야 인턴(견습의)을 시작할 수 있다.
게다가 인턴 과정이 2년인 일본에선, 내년은 돼야 서 씨가 '신경정신과 전공의'라는 직함이라도 달 수 있다.
설령 일본 의대에 국내처럼 편입이 존재해 서 씨가 짧은 기간에 마쳤다 해도, 그가 인터뷰에서 밝혔던 것처럼 '수련의 신분'으로 "안식년을 얻어 국내에 6개월 체류하러 왔다"라는 건 말도 되지 않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과정
기자가 서 씨의 사기 가능성을 안 건, 얼마 전 지인에게 문자를 받고 나서다.
지인은 기자에게 "서준혁 씨가 사기꾼인 것 같으니, 그의 칼럼을 내리는 게 좋겠다"고 충고했다.
그의 프로필 중 사실로 확인된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미 서 씨가 여러 학회에 연자 초청을 받고, '일본의 왓슨 활용 사례에 관한 데이터'를 공유하기 위해 정부 관계자까지 접촉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나서다.
지인의 말이 맞다면, 전문지와 의료계 전체가 사기꾼 한명에게 농락당한 셈이다.
이런 '초현실적인 현실'을 확인하기 위해, 기자는 서 씨에게 확인요청 메시지를 건넸다.
기자는 일본으로 다시 건너간 서 씨에게 확인 메시지를 보냈고, 그가 건넨 대답은 이랬다.
기자는 추가 메시지를 보냈지만 대답을 듣지 못했고, 어렵게 전화를 시도해 연결에 성공했다.
서 씨는 전화를 받자, 해명을 먼저 했다.
서 씨 "현재 본인 프로필과 관련해서 한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다. 거기에 대해선 말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기자 "그럼 이거 하나만 묻겠다. 현재 일본 의사 신분이 맞나?"
서 씨 "그 부분에 있어서 확인을 해 줄 수 있는 근거가 없다."
말이 어려워서, 바꿔 물었다.
기자 "일본 의사 국가고시에 응시해 합격한 사실이 있는가?"
서 씨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없고, 그런 오해를 풀기 위해 현재 일본에서 1개월 간 증명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겠다(?)."
그가 답을 두루뭉실하게 해준 덕분(?)에, 기자는 현재 다음 두 가지를 확인 중이다.
1. 프로필 진위 여부
-구글의 검색 능력으론 그가 게이오 대학과 관련 있다는 어떤 정보도 찾지 못했다.
-게이오대학엔 그의 프로필에 적혀있던 'IT Professor course'라는 게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서 씨가 2006년에 경제 전문지에 알렸던 프로필과 올해 의료 전문지에 공개한 프로필은 서로 상충되는 내용이 많다. (검정고시 합격 후 게이오대 진로 VS 고졸 후 국내 대학 2년 수료)
-기자는 현재 게이오대, 게이오대 대학병원과 신경정신과 의국에 그의 소속 확인을 요청한 상태다.
-그리고 일본의사협회에도 그의 일본 의사 자격 확인을 요청했다.
2.그가 전파한 일본의 원격의료
그는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친 바 있다.
1)후생(노동)성은 원격의료를 늘리기 위해 의사들에게 ‘당근’도 줬다. 의사가 한번 원격의료를 하면 진료비로 1만 5000엔(15만원)을 받는다. 원격의료 1회당 진료비는 보통 진료비 2500~4000엔 보다 최대 6배 이상 많은 금액이다.
2)일본은 20억원을 들여 원격의료와 대면진료의 동등성을 평가했다. 원격의료의 오진율은 전체 진료의 1%에 불과했다.
기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아냈거나, 확인 중이다.
-아직 서 씨가 주장한 상기 내용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일본에서 체류 중인 몇몇 한국인 의사에게 해당 내용 확인을 요청했으나, "관련 사실에 대해 들은 바가 없다"라는 내용을 전달받았다.
-서 씨의 칼럼과 지식, 인터뷰 내용은 모두 일본의 인터넷 기사(특히 니혼게이자이신문)를 짜깁기한 내용이다.
-현재, 일본의 후생노동성(우리나라의 보건복지부 역할)에 관련 내용 확인을 요청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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