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은평마을서 노숙인 1200명 만난 이후 서북병원 노숙인병동 신설…"공공병원의 역할은 바로 이것”
[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서울특별시 서북병원 이현석 신임 원장이 취임 후 50여일 기간 동안 정한 병원의 방향성은 ‘노숙인을 위한 공공병원’이다. 이를 위해 노숙인마을을 찾아 1200명의 노숙인을 전부 만나본 다음 우선 50병상의 병동 하나를 노숙인병상으로 만들었다.
서북병원은 1948년 10월 시립순화병원으로 출발해 결핵전문병원으로 문을 열었다. 1964년 서울시립서대문병원으로 승격했고 2009년부터 서북병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수도권 유일의 결핵환자 전문병원의 역할과 함께 초고령사회에 대비해 노인환자의 진료에 앞서 왔다. 그리고 앞으로는 노숙인 건강관리에도 나설 계획이다.
지난 8월 11일 취임한 이현석 신임 원장은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아산병원에서 흉부외과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고려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대한흉부외과학회 부회장, 일본 구루메 대학 객원교수를 지냈다. 특히 의료 소통 분야의 전문가로 광운대에서 의료커뮤니케이션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 창립을 주도해 회장을 역임했다.
은평마을 둘러보고 공공의료 필요성 발견
이 원장은 취임하자마자 은평마을에 가서 3시간 반에서 4시간 동안 노숙인들을 둘러보면서 ‘바로 이거다’라고 싶었다. 은평마을은 서울시로부터 구세군이 위탁경영을 맡고 있는 노숙인 관리 시설이다. 그 외에도 이 원장은 서울역 다시서기 센터, 영등포구 보현의 집과 같이 노숙인들을 관리하는 시설들을 방문해 노숙인들을 살펴봤다. 그리고 시설에서 감당하기 힘든 환자들을 돌볼 수 있는 병원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적극적인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이 원장은 “은평마을을 둘러보고 느낀 점은 공공의료가 맡아야 할 영역이라는 데 있다. 시설에서 관리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노숙인 한 명, 한 명을 만나보면서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특히 서북병원이 산 기슭에 있어 일반인들의 접근성이 다소 떨어지지만, 노숙인들을 치료하는 데는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도 장점이다. 이 원장은 “동관은 별도의 출입구가 있어서 노숙인과 일반 환자들과 섞이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어 별도로 병동을 관리할 수 있다”라며 “노숙인들도 일반인이 보내는 시선을 의식하고 있다. 따라서 서북병원이 가진 특성을 살려서 편안한 진료를 받을 수 있게 유도하도록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서울의료원이나 보라매병원과 달리 서북병원은 응급실이 없는 관계로 응급질환보다는 만성질환으로 역할분담을 할 계획이다. 그동안 노숙인을 전문적으로 진료한 업적으로 아산사회복지재단과 JW중외제약 봉사상을 받은 서북병원 최영아 내과 전문의가 노숙인들의 진료를 주도해 나가는 임무를 맡았다.
노숙인이 가진 질환은 보통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문제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원장은 “노숙인 건강 상태를 보면 정신 질환이 있거나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 많다. 무엇보다 평소 건강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당뇨병 합병증은 보통 10년 이상 지난 다음에 발생하는데 노숙인은 3, 4년 이내에도 발생한다”라며 “혈압도 관리가 전혀 되지 않는 상태이며, 영양 불균형으로 인한 면역 저하 감염증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노숙인 병동을 잘 활용하면 공공의료가 필요한 역할을 다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라며 “약자와의 동행에서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바닥에 있는 이들이기 때문에 노숙인 건강관리가 서북병원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임기 중 방향성, 노숙인 외에도 노인병과 결핵
이 원장의 임기 중 방향성은 기존의 노인병, 결핵 진료에 노숙인을 더해 3개 축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서북병원은 노인병에 대한 설비가 상당히 잘 돼있는 상태다. 환자와 보호자가 쉴 수 있는 공간도 따로 배치돼 있고 치매안심병동을 지정 받으려고 준비하고 있다. 치매안심병동은 주로 요양병원에만 있고 병원급에는 없는 탓이다. 또한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병동을 마련하고 있고 호스피스 병동은 비교적 많은 19개 병실이 있다.
이 원장은 “서북병원이 노인병에서도 상당히 강점이 있다. 앞으로 이런 장점을 잘 알려서 꼭 필요한 환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유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결핵 환자는 점차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지금과 같은 네트워크를 잘 활용해 결핵협회, 보건소 등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환자를 받을 계획이다. 노숙인들의 진료를 위해 기존 노숙인 시설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해 우선 50병상으로 시작한 노숙인 병동을 늘려 나가는 것이 목표다.
다만 부족한 것은 의사인력이다. 이 원장은 “서북병원은 현재 350병상을 가동하고 있지만 허가병상은 그것보다 많은 500병상이다”라며 “지금은 의사 인력이 부족해 허가병상을 채우기가 힘들다. 다만 신경과 전문의 1명이 10월에 합류하는 등 조금씩이라도 인력보충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서북병원, 서울시립병원에서 일하려는 의사라면 공공성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급여 부분에서 희생을 할 각오도 필요해서 무작정 의사들에게 강요하기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의사 연봉 규정은 서울시와 지방공무원임용에 대한 조례에 따라야 한다. 다만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한 이후 의사 연봉 때문에 공공병원의 의사인력난이 있다면 이에 맞는 대우를 해서 인력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만큼 문제 해결 여지가 있는 상태다.
이 원장은 “우선 재활의학과가 있으면 노인환자나 노숙인 환자에도 더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며 “정신건강 관리나 치매를 관리해줄 수 있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도 더 많이 합류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 원장은 3명의 노조위원장을 찾아가 ‘전태일 일기’를 읽고 울컥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노숙인 진료에 대한 노조의 협력을 얻어내기도 했다. 이 원장은 “어떤 계획을 실행한다면 직원들이나 노조와 함께 상의하면서 가겠다”라며 “앞으로 공공의료에 헌신하면서 서북병원의 발전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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