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일주일간 방문하고 돌아와 밀린 일과 새로 요청받은 일로 바쁘게 지내고 있는데, 예상된 일들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들 사이에서 마치 장애물 경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 방문 기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려고 나름대로는 동선도 미리 파악하고 시간대에 따른 교통상황도 고려해 상황에 맞게 택시를 이용할지 지하철을 이용할지를 선택했다. 초행길은 주변 지인에게 여러 번 물어 확인도 하였고.
그런데 그중에서 가장 고민스러웠던 건 세브란스병원에서 아산병원까지 아침 9시까지 이동하는 것이었다. 지인들에게 카톡으로 물어봐도 고민스러운 거리와 시간이었다. 택시로는 차가 막히면 시간이 오래 걸리면서 비용까지 많이 나올 거고, 지하철을 탄다면 한국의 러시아워를 경험할 거라는 경고성 충고(?)도 받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출근 시간이 시작되기 전인 새벽 6시에 출발해서 택시로 아산병원까지 이동하는 것이었다.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고 택시 운임도 많지 않았고, 속도감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곤, 병원 지하에서 우거지 해장국도 먹고, 금방 나온 빵들도 사서 유치원 친구인 이 교수 연구실에서 아침 커피까지 마시고 여유있게 강의장으로 갈 수 있었다. 너무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됐고 스스로도 만족스러웠다.
반면,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이 가득했다. 모든 일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적당한 시간에 인천공항에 도착해 비행기 탑승을 기다렸다.
그러나 한번 두번 비행기 탑승이 지연되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비행기 출발이 1시간 정도 지연됐다. 애틀란타에서는 보스턴으로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는데 도착 후 활주로에서 30분 남짓을 또 기다려야 했다.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 이유로...
도착 직후 환승 게이트로 달려갔지만 너무나도 긴 입국심사 대기 줄을 보고서는 마음을 졸이기 시작했다. 양해를 구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지만 결국 짐이 도착하지 않았다.
본인뿐만 아니라 같은 비행기를 탄 승객의 모든 짐이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검색대를 통과하지 못해 아예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다시 한두 시간이 흘렀고, 나의 계획은 전혀 의미가 없는 연속적인 불행 같이 여겨졌다.
결국은 보스턴으로 가는 비행기를 놓치고 어찌할 줄 몰라하며 항공사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지금도 기억하는 조이스(Joyce)라는 이름의 나이 지긋한 할머니 직원이 끝까지 최선을 다해 도와줬다. '내가 너를 보스턴으로 보내 주겠다'라는 결연한 모습에 너무 안심됐다. 그는 여러 가지 옵션을 찾기 시작했지만, 늦은 시간이라 보스턴으로 가는 비행기는 없었다.
그가 보스턴 주변의 비행장으로 가는 비행기들의 시간을 확인해주면, 나는 아내가 혹시나 차로 마중 나올 수 있는 거리인지를 확인했다. 새벽 1시나 2시쯤 뉴햄프셔의 공항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보스턴에서 차로 몇 시간을 달려와야 하는 상황이라 결국 포기했다. 그는 다음 날 비행기 스케줄로 알아봐 주고, 내 짐도 그 비행기로 갈 수 있게 처리해줬다.
공항에서 가까운 오래된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는데, 그 호텔은 주말을 맞이해 연회장을 빌려 파티를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불만 없이 감사해야 했던 것이 조이스(Joyce)라는 항공사 직원이 자기의 퇴근 시간이 지난 상황에서도 나를 보스턴으로 돌려 보내 주기 위해서 애써줬기 때문이다.
다른 직원들이 퇴근하고, 공항의 불들이 하나씩 꺼져가고 있었다. 보안직원들이 통로들을 봉쇄하고 하나만 남겨둔 상황이었고, 내가 마지막으로 짐 찾는 지역을 나왔다.
나는 그가 아니었다면 다시는 이 항공사를 이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벌써 몇 시간째 '다시는 이 항공사를 이용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을 하고 있던 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한 사람의 책임감과 깨끗한 마무리가 내 마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꿔놓았다. 물론 그가 본인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이들을 도와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게 해줬을 거라 믿는다.
My two cents
보스턴을 중심으로 미국에서는 한국과 조금 다른 일들이 일어난다. 어쩌면 한국에서만 살아온 이들에게는 이상한 일들일지 모른다.
내가 아는 인공지능(AI) 회사 중에 의사 2명이 시작한 회사가 있다. '엠디닷에이아이(MD.ai)'인데, 의사(MD)들이 시작한 회사라 이름도 그렇게 지은 것 같다. 이 회사는 내가 본 어느 인공지능 회사보다도 성공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본인들도 농담처럼 20명 정도가 있는 회사로 효율적이고 성공적이라고 즐거워했다.
이 회사는 의료영상 인공지능(Medical Image AI)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 누구든지 쉽게 인공지능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옛날 서부시대에 금광을 찾으러 온 사람들에게 삽과 도구를 판 회사들이 이득을 남긴 것처럼 직접 개발은 하지 않지만 쉽게 개발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드는 것이 이들의 목표인 것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필요한 툴들을 둘이서 만들고 있다.
내게도 전화해서 필요한 것을 도와 달라고 하고, 다른 회사들과도 잘 협업하면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 회사가 만든 'Keras-js'는 깃허브(github)에 올라와 있다. 데모버전(Interactive demo)들도 올라와 있어 테스트해 볼 수 있다.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툴인 케라스(Keras)와 여러 가지 결과들을 웹 상에서 예뻐 보이게 할 수 있는 자바스크립트(java-script)를 잘 섞어서 만든 새로운 툴이다. 처음에 이 툴을 봤을 때 깜짝 놀랐다.
'어떻게 두 명이 이렇게 잘 만들었을까?'하고. 예쁘기도 하고 기능적인 면에서도 인공지능을을 개발해 효율적으로 사용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이들의 백그라운드를 잘 살펴보면, 한 명은 영상정보학(Radiology informatics)을 오랫동안 연구해왔고, 다른 한 명은 그 밑에서 수련을 받다가 그만두고 머신러닝 회사로 옮겼는데 이 둘이 다시 만나서 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수련을 받다가 회사로 간 이는 MIT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 후 하버드의대(Harvard Medical School)를 마치고 그 병원에서 전문의 수련을 받고 있었는데, 영상의학 전문의(Radiologist)의 삶이 기대하던 것과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이들이 Keras-js를 오픈했을 때 누구나 다 아는 엄청난 회사들이 인수하겠다고 연락을 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인수 제안도 투자자(VC)들의 투자도 받지않고 여전히 둘이서 회사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조만간에 좋은 소식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은 한국에서도 이런 이들이 많이 있다. 최근에는 이런 의사들을 만났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네이버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 의사가 된 경우 ▲오랫동안 프로그램을 독학해 웬만한 프로그래머들보다 우수한 능력을 가진 의사 ▲의사이지만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고 스타트업의 의학자문의(CMO)로 있는 경우 ▲큰 대학병원에서 수련을 마치고 미국으로 와서 MPH(Master of Public Health)와 MBA를 동시에 공부하고, 새로운 기술들이 시장으로 이전되는 일에 전념하는 의사 ▲16년 이상 운영해온 의원을 뒤로 하고 헬스케어 사업(Healthcare commercialization)으로 과감히 방향을 바꾼 의사.
개인적으로 추측하기에 이들이 엄청난 목표를 가지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이유로 계속해서 원했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절벽에서 떨어지게 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발버둥 같았지만 절벽에서 떨어짐으로 인해 자신이 날 수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본인의 경우도 그랬듯이.)
지금 이곳 보스턴에서는 ▲작은 팀 ▲실행력 ▲기존과는 다른 방식 ▲경험하지 않으면 모른다 가 키워드다. 우리가 개발한 인공지능 중 하나가 메사추세츠종합병원(MGH) 내에 구현됐다. 아마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의료 관련 인공지능이 실제 환경에 접목된 사례로 알고 있다. 금요일엔 소식도 없이 땡땡치 치는 우리 연구실의 HK(하버드 박사 과정)가 개발한 것이다.
그는 수시로 새벽에 카톡과 메일로 '왜 계획한대로 빨리 데이터를 준비하지 않느냐'고 논문 지도교수를 혼내곤 한다. 하지만, HK도 우리 연구실로 오기 전에 속상하고 아픈 경험이 있었다. 그 일을 이겨내기 위해서 열심히 개발한 첫 번째 제품이 지금 우리를 흥분시키는 연구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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