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회, 보건의료데이터 활용을 위한 전문가 토의...데이터 활용·공유 방안부터 보안·신뢰 문제까지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정부가 바이오∙헬스케어 산업 육성을 위해 의료데이터 활용 촉진에 나서고 있지만 의료계와 산업계에선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의료계는 의료데이터를 생성∙관리하는 의료기관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산업계는 의료데이터의 용이한 활용을 위한 규제 완화 필요성을 주장했다. 민감 정보인 의료데이터는 일반데이터와 구분해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 데이터의 신뢰성 등 활용에 앞서 선결해야 할 문제가 있단 의견도 제기됐다.
16일 대한의학회의 주최로 SETEC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보건의료데이터 활용을 위한 전문가 토의’에 참석한 패널들은 향후 의료데이터의 활용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하며 그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사안들을 언급했다.
의료데이터에 자원 투자하는 의료기관...합리적 보상 없으면 제공 유인 떨어져
강남세브란스병원 송영구 병원장(대한병원협회 무임소위원장)은 의료데이터 활용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선 의료기관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기관은 의료데이터 생성과 관리를 위해 여러 인적∙물적 자원을 투자하는데 이에 대한 보상이 없다면 병원이 위험을 감수하며 기업 등 제3자에 데이터를 제공할 유인이 없다는 것이다.
송 병원장은 “병원에서 생성된 빅데이터를 IT기업, AI 기업들이 활용해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경제적 효과를 창출할텐데,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돌아오는 것이 없는 게 사실”이라며 “병원이 기업과 협업을 통해 개발된 소프트웨어를 구매해서 활용하더라도 현재는 보험수가 등에서 보상이 이뤄지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만 이득을 보는 현 구조에선 병원 입장에서 ‘우리는 뭐지’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며 “지금은 연구자 개인이 흥미를 느껴 할 수 있겠지만, 병원에 대한 합리적 보상 체계나 지불 체계가 마련되지 않으면 결국 데이터 활용 활성화에 어려움이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대한의사협회 유소영 정보통신이사 역시 정부가 도입을 추진 중인 ‘마이 헬스웨이’ 사업을 언급하며 데이터를 생성∙관리하고 있던 의료기관의 권리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마이 헬스웨이는 개인 주도로 자신의 건강정보를 한 곳에 모아 원하는 대상에게 제공하거나 직접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유 이사는 “정보주체의 요구로 제3자에게 데이터를 제공하는 경우 처음에 해당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었던 기관은 지배관리권을 주장할 수 없는가라는 논리도 중요하다”며 “기관이 갖고 있던 여러 데이터에 대한 가치 평가나 수익 분배 등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는다면 정부의 정책 추진에 장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료데이터 활용 통한 기대 효과 크지만...국내에선 병원 밖 반출도 어려워
산업계는 의료데이터가 가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강조하는 한편, 다른 나라들에 비해 활용에 제약이 큰 국내 환경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에비드넷 조인산 대표는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가 팬데믹 와중에 4만5000명의 코로나19 환자 데이터를 분석해 어떤 약이 코로나 치료에 도움이 될 지를 3달만에 분석해냈고, 100만명의 환자를 살렸다”며 “이런 사례들이 의료데이터의 가능성에 대한 글로벌 차원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실제 의료데이터와 동일한 의미는 아니지만 산업계에선 리얼월드데이터(Real World Data)가 큰 산업 영역으로 성장하며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고 했다.
조 대표는 또 “미국 기업들의 경우, 신약 개발을 위해 의료데이터를 비식별화 후 회사 서버에 저장하고 분석한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국가적으로 신약 개발을 독려하고 있지만 가명 데이터는 절대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익명 데이터는 가능할 것 같지만 실제 사례가 거의 없다. 과연 우리나라가 의료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인지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감 정보 '의료데이터' 일반데이터와 다르게 다뤄야...데이터 신뢰성 문제 지적도
데이터 활용에 있어서 민감한 정보를 담은 의료데이터는 일반데이터와 구분해 취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 김준혁 교수는 “의학은 오래전부터 비밀보호를 의료인의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로 설정해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이는 의료인과 의료기관에게 의료데이터를 별도로 관리할 책무를 갖게 하고, 데이터가 유출될 경우 상당한 처벌을 감내할 것을 정당화하는 근거”라며 “개인의 인격과 존엄성을 담고 있는 의료데이터를 다른 개인정보와 동일하게 보고 논의해선 안 된다”고 했다.
송 병원장 역시 “의료데이터를 일반데이터와 동일한 법으로 관리, 규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정보 주체부터 활용 부분까지 보다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다룰 수 있는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의료데이터의 ‘활용’을 논하기에 앞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대한의학회 정지태 회장은 “의료데이터의 신뢰성 확보가 우선이 돼야 한다”며 “신뢰성 있는 의료데이터를 만들 수 있는 기초 시스템이 마련된 다음에 산업화의 문제가 나와야 하는데 순서가 잘못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조 대표 역시 “우리나라 수가 체계상 상병 코드를 일부러 다르게 입력하는 경우도 있고, 현장에서 부정확한 수치를 입력하기도 한다. 이런 데이터들은 큰 바이어스를 만들 수 있다”며 “공론화를 통해 해결 방안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보건의료데이터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는 게 문제”라며 “정의에 따라 데이터 활용, 공유, 분배 문제 등에 선이 확 갈릴 수 있어 섣불리 하기 어렵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정의가 돼야 데이터의 귀속, 처리 등에 대해 논의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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