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되는 전공의들 "좋은 의사 기대 접었다"
"응급실 업무 봐주면 나머지 시간 간섭 안한다"
일부 과 전공의 "의대 실습처럼 참관 반복"
<출처 : 시사뉴스>
대형병원에서 수련하는 전공의들의 '토할 정도로 많은' 업무량.
그럼에도 장점이라면 수련 후에 '그럴싸한 의사'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입원환자, 응급실, 중환자실환자를 정신 없이 진료하다가 전공의 3년 차 정도만 되어도 '최선의 의료'는 아니지만 '최악의 의료'는 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렇다고 그 업무량이 '적절'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수련의 제도는 이런 대형병원 혹은 대학병원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일반인에겐 이름조차 낯선 중소병원에도 4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묵묵히 수련과정을 밟는 전공의들이 있다.
전공의 ‘업무 과다’는 병원의 규모와 상관없이 항상 관심을 끄는 문제지만, 규모가 작은 중소병원은 '수련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잘 드러나지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2차 중소병원의 수련 현실
비교적 다양한 수련과가 있는 병원은 그래도 좀 사정이 낫지만, 소수과만 있는 경우 수련의 제도를 악용해 교육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지방의 2차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전공의는 "병원에서 요구하는대로 응급실 같은 곳에서 일정 업무만 해주면 그 뒤로는 간섭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2년 차 때부터는 전공의가 스스로 수련 스케줄을 짜야 한다. 병원에서 파견 형태로 짜준 커리큘럼이 있지만, 파견 병원에 소속된 전공의가 아니다 보니 할 수 있는 게 참관 정도다. 전공의가 되어서도 PK(학생 실습) 때나 하던 것을 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그는 "병원이 전공의 TO를 유지하는 이유가 싼 가격에 의사를 부리기 위해서인 것 같다"면서 "수련을 통해 좋은 의사가 될 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전공의는 '전문의 시험 자격증'이 필요해서, 1~2년 차 때 병원이 필요한 것을 주고 대가로 '전문의 시험 자격증'을 얻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 전공의에 따르면 파견이 많고, 자율성을 강조하다 보니 수련 중 '방치되는 전공의'가 많다고 한다.
물론 전공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모든 수련을 자율적으로 받고 시험만 합격해 '전문의'가 된다면 수련제도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중소 수련병원의 다른 문제는 환자군이 상급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만큼 다양하지 않다는 것이다.
수도권에서 '대학병원이 아닌 2차병원'에서 수련중인 한 성형외과 전공의.
그는 "우리 과 환자의 70%가 화상이다. 과장님 세 분이 계시지만 대부분 화상을 집중적으로 보신다. 병원에서는 다양한 환자를 보기 힘들어 협력병원 파견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지만 그것 역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사진처럼 전공의 수련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출처 : MBC>
수련 담당 전문의들의 교육에 대한 철학
병원 상황도 문제지만 일부 병원의 경우 수련교육을 담당하는 지도 전문의들의 책임 의식에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비인후과 전공의 A씨는 "우리 과엔 과장님 세 분이 계시는데 모두 나이가 좀 있으시고, 주로 몇 가지 단순한 수술만 한다. 전공의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과장들 수술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몇 년 동안 단순한 몇 가지 수술을 어시(스트)하고 배우다가 전문의 시험을 봐야 한다"고 토로했다.
상당수 2차병원은 '상급병원 파견'이라는 형태로 환자군의 단조로움을 극복하려고 노력 하지만, 전공의들은 이런 시스템에 불만이 많다.
상급병원은 전문의 중심으로 진료형태가 바뀌다 보니 전임의들의 역할이 늘어나고, 파견 나온 전공의까지 신경 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과장님께서 좀 적극적으로 환자군을 넓혔으면 좋겠다. 수련교육에 대한 철학도 별로 없으시고, 전공의를 옵션으로 부릴 수 있는 '페이닥터' 쯤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중소병원에서 수련을 마친 한 내과 전문의는 "(수련 받았던) 병원 순환기내과 과장은 PCI*에 환장했다"고 회고했다.
*PCI(Percutaneous Coronary Intervention) : 경피적 관상동맥 중재시술, 협십증이나 심근 경색 등을 위한 치료인데 해당 질환의 경우 '가슴 통증'이 특징적인 증상이다.
그는 "그러다 보니 내과 인력이 대학병원보다 훨씬 적은데도 혈관촬영에만 집중 투입되어 있다. 이 쪽이 돈을 많이 벌어다 주니 병원에서도 오히려 밀어주고 해당 과장은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다. 응급실에 상주하는 내과 전공의는 가슴 통증의 '가'자만 나와도 보던 환자를 멈추고 그 환자한테 달려가야 했다. 수련 내내 관상동맥질환 환자는 지겹도록 보는데, 부정맥 같은 다른 파트는 좀 소홀했고 자신이 없다"고 고백했다.
그는 또 "그래도 수련병원인데… 과장 개인 욕심을 위해 단 한가지 질병에 모든 의료인력이 동원되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제한된 환자군을 다루는 커리큘럼에서는, 수련과정을 거치고 전공의 수첩을 '어떻게든' 채워서 전문의 시험을 통과하더라도 전문의의 질적인 편차가 우려된다.
"서로 편차가 큰 환경에서 수련하고 전문의가 되면 당장 다룰 수 있는 환자군에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중소병원에서 수련을 마친 후 대학병원에서 전임의를 하고 있는 한 신경외과 전문의는 다른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전공의 수련 소회를 밝히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수련 때는 응급수술을 했던 뇌출혈 환자가 '드라마틱하게' 좋아지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지만 여기(대학병원) 와서는 심심치 않게 본다. 수련 당시 주어진 환경에 맞게 최선의 의료를 다했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환경에서 어쩌면 수술 들어가기 전에 이미…잠재의식 속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지고 수술에 임했는지 모르겠다. 작은 환경에서 근무하다 보니 좋지 않은 결과를 더 많이 보고 익숙해지면 그것에 대해 심각한 고민 없이 받아들이고, 나는 또 다음 환자를 봤다. 더 체계적인 병원에 와서 근무해보니 내가 어느새 무뎌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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