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01.15 07:14최종 업데이트 24.01.15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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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악법의 국회 통과는 의협의 직무유기

[칼럼] 박인숙 울산의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사진=챗GPT가 그려준 한국의사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하나로 모인 장면. 

[메디게이트뉴스] 과거 어느 정권에서도 지금과 같이 의사들을 옥죄는 ‘악법’들이 줄줄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적이 없다. 게다가 통과 사실도 언론의 ‘깜짝’ 발표를 통해 알게 되니 더욱 화가 난다. 이런 일들을 반복적으로 접하면서 도대체 대한의사협회가 왜 존재하는가? 의협은 이런 악법을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의협회비는 왜 내라고 하는가? 회의와 무력감, 나아가서 절망감마저 든다.
 
최근 통과되거나 통과 직전의 악법들을 열거해 본다.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올 1월 10일 의사 출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2명 포함 만장일치로 통과된 법안으로 난임에 대한 한방치료를 정부가 지원한다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악법이다. 이는 건보 재정 낭비는 물론 더 심각하게는 태아와 산모라는 두 생명체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는, 악법 중의 악법이다. 과거 수십 년 간 나를 포함한 많은 의사들의 노력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119 구조·구급에 관한 법률 개정안, ‘119법’]은 2023년 12월 8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는 구급대원과 응급구조사, 간호사의 전문의약품 사용 권한의 시발점인 ‘무면허 의료행위 합법화’ 법안이다.

[지역보건법 개정안]은 2023년 12월 8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는 한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조산사, 약사, 보건의료 직렬 공무원 등 의사가 아닌 사람이 보건소장이 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이다. 모자보건법과 마찬가지로 이 법도 역시 반대가 한표도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보험업법 개정안, ‘실손보험청구강제화법’]은 모든 의사들, 심지어 일부 시민단체들도 반대했으나 2023년 10월 6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의사에게 아무런 대가없이 행정업무를 지우고 환자 개인정보 유출 문제와 부적절한 비용 부담 등의 문제를 안고있는 이 법안도 거리낌 없이 통과됐다.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일부개정법률안, ‘출생통보제’]는 2023년 6월 29일 본회의를 통과했는데 의료기관의 행정부담증가 등 문제가 있는 법안이다.  

[간호법]은 2023년 4월 27일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다행히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이번 총선 후 22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될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의료법 개정안, ‘의사면허박탈법‘]은 2023년 4월 27일 본회의를 통과했고 11월 20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의료행위와 아무런 상관없는 교통사고로도 의사면허를 박탈당하는 의사들이 가장 분개하는 악법 중의 악법이다. 

[‘지역의사제’법안] 은 비상 상황도 아닌데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법안심사소위 논의도 건너뛴 채 2023년 12월 20일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고 현재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현실성이 없어 반드시 막아야 하는 악법이다.  

[공공의대설립법안] 역시 지역의사제법과 함께 법안소위를 건너뛰고 복지위 상임위를 통과했고 역시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빈사 상태의 대한민국 의료를 완전히 죽이는 악법이다.
 
반면에 당장 시급한 의료분쟁조정, 형사처벌 면제 등의 법안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의협은 과거로부터 항상 정치세력화를 하겠다고 요란한 구호만 외치고 '사진 찍고 보여주기식' 행사만 해왔는데 과연 이제껏 무엇을 이뤘는지 보이지 않는다. 위의 악법들이 이미 본회의까지 통과된 후뒷북 치듯 헌법재판소 제소, 피켓시위, 삭발, 단식 투쟁 같은 실망스런 모습만 보여줬다. 이런 행태를 보면 의협이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기는 한 건지 의심이 간다. 국민건강증진과 의사회원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의협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직무유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국회 입법과정을 이해한다면 이를 막을 기회들은 여러차례 있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법안들은 국회의원이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끝내 통과되지 못하거나 설사 통과되더라도 10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다. 내가 직접 경험한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내가 2012년 송파 지역구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여러 민원들 중 가장 심각하고 20년도 더 된 고질적인 민원은 매장문화재로 인한 풍납동 주민피해를 해소해 달라는 것이었다. 결국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풍납토성특별법’을 통과시키는 데에만 8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고 마침내 2020년 5월 나의 임기 마지막 본회의에서 이 특별법이 통과되는 감격스런 순간이 있었다. 당시에 ‘풍납토성 국회의원’이라는 비아냥 소리까지 들어가며 간사직을 맡으며 임기 8년 중 5년을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문화재청과 동료의원들을 설득시킨 쾌거였다.
 
이와 같이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대립하고 있는 법을 통과시키거나 또는 막으려면 힘있는 조직이 똘똘 뭉쳐서 치열한 노력과 투쟁을 펼쳐야 한다. 그 대상은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조직 뿐 아니라 많은 국회의원들과 보좌관, 입법조사관, 담당 공무원 등이다. 동시에 대국민 홍보도 반드시 필요하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권은 절대적으로 국민 눈치를 본다. 그래서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법은 절대 통과될 수 없고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는 법은 막기 힘들다.

물론 국민 대다수가 찬성한다고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세월이 흐른 후 되돌아봤을 때 처음에는 국민 대다수가 원했지만 결과적으로 옳지 않은 결정이었다는 사건들을 우리나라에서 뿐 아니라 세계 역사에서도 여러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대개 국민이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소수 전문가의 의견은 무시되고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일들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쨌든, 당장 국민이 원한다고 부작용이 뻔한 법들이 마구 통과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그러려면 국민 설득이 가장 우선돼야 하며 이런 노력은 전문가, 즉 의사단체가 책임지고 나서야 한다.

지금 의사들이 국민들로부터 받는 비난을 무릅쓰면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바른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더 이상 정치권의 눈치를 볼 일이 아니다. 우리라도 바른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것도 반복적으로 통일된 한 목소리로.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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