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의사협의체 릴레이 칼럼
젊은의사협의체는 지난 4월 대한전공의협의회·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가 주축이 돼 출범한 단체로, 전공의·공중보건의·의대생·전임의·군의관 등 40세 이하 의사들로 구성돼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는 주요 의료현안과 관련한 젊은 의사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긴 칼럼을 격주로 게재할 예정입니다.
[메디게이트뉴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대학에 가는가? 꽃다운 20대에 대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인생에 어떤 의미인가? 점점 취업의 수단으로 변해가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대학은 아름다운 캠퍼스를 거닐고 전공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뿐 아니라 각종 외부활동 및 나의 관심사에 시간을 투자하며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 밑그림을 그려나가는 시간일 것이다. 하지만 의대 진학을 꿈꾼다면 조심스럽게 그런 기대는 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의대를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은 매주 치르는 시험일 것이다. 매주 금요일이나 토요일 아침에 시험을 보면 그래도 ‘인간적인’ 학교라 할 수 있다. 간혹 매주 월요일에 시험을 보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점입가경으로 유급이라는 제도가 있어 수많은 시험 중 하나라도 낙제점을 받는 경우에는 올해 들었던 모든 과목을 내년에 다시 들어야 한다. 수많은 보건의료 문제에 따라다니는 ‘사명감’이 의대생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셈이다. 다시 돌이켜보면 비인간적이고 너무나 삭막했던 그 시기를 당연한 것처럼 걸어왔다. 그렇게 묵묵히 걸어 도달하는 곳은 어디일까?
의대는 의사를 양성하기 위한 곳으로 특수성이 있다. 과거에는 의대를 졸업하면 대부분 병원에서 진료를 보고 환자를 대면하는 좁은 의미의 의사가 됐다. 그 중에 일부는 병원 밖에 있는 넓은 의미의 의사가 됐다. 그들은 인턴, 전공의 그리고 진료실의 전문의라는 보편적인 위치를 벗어난 특별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실제로 그들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비인간적이고 삭막한 교육과정 중에도 꾸준히 관심사를 유지하면서 결국은 다른 길을 선택한 사람이었고, 임상에 관한 지식으로 의대생들의 두뇌를 포화시키려는 교수들의 무자비함에 맞서 자신의 관심사에 할애할 두뇌의 일정 부분을 지켜낸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특별한 소수가 아닌 많은 다양한 의사를 필요로 한다. 다양한 의사는 꼭 다른 분야나 병원 밖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의학을 심도 있게 알아야 하는 의사과학자 일 수도 있고, 질환의 예방전략을 포함해 공공보건의료에 관심을 가지는 의사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서는 환자의 삶의 전반에 관심을 가지는 의료인문학적 소양을 지닌 의사, 지방의료나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뛰어드는 의사일 수도 있다.
이런 사회적 요구에 따라 최근 의대학제개편 및 의학교육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의료인문학은 의대 교육에 필수가 됐다. 의사과학자를 양성을 하기 위해 학제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나오고, 카이스트에서는 이를 위해 의대를 신설하겠다고 한다. 최근에는 교육과정을 통해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에 적극 참여하게 하려는 움직임도 있고, 의료 AI를 학생 시절부터 배우도록 커리큘럼을 제안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전히 매주 치르는 시험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교수들은 각자의 전공과목, 각자의 연구분야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바쁘다.
10년 전에도 숨 쉴 틈 없던 의대교육과정은 더욱 많은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다. 이제는 특별한 사람이 보편적인 위치를 벗어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비인간적이고 삭막한 교육과정에 모든 것을 소진하고 탈출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의대 시절 짊어졌던 무거운 짐이 앞으로의 삶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필수의료를 외면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미 수년 전부터 의대생이 우울감에 취약하다는 논문들이 많았다. 학생에게 배움은 당연한 권리다. 하지만 유연하지 못한 의대 커리큘럼 안에서 배움은 권리라기보다는 의무로 느껴졌고, 유급이라는 제도는 이런 부담을 더 강화시켰다. 우울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제 정말 다양한 생각을 하는 의사가 필요하다. 의대생을 의사과학자로, 공공보건의료전문가로, 필수의료 종사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관심을 갖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대생이 도달하는 곳은 수련을 시작하는 출발선이 아니라 사회로 나아가는 출발선이어야 한다.
그들은 무슨 과 의사가 될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고민 해야 한다. 그것이 꼭 의사면허를 필요로 하지 않는 곳이라도 괜찮다. 의사과학자, 공공보건의료전문가, 필수의료 그리고 지방의료가 왜 필요한지 이런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면 각자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해 중요한 것을 위해 일 할 것이다.
교육은, 그것이 의대교육이라고 해도, 학생들에게 목적지가 아니라 이정표를 제시해야 한다. 입학할 때부터 지방이나 특정 과에 종사하도록 조건을 건다는 건 이제 갓 성인이 된 의대생을 그저 보건의료체계 속 하나의 부속품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또 대학은, 그게 의대라고 해도,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들에게 ‘무슨 과를 하고 싶니?’라는 질문으로 가능성을 한정하지 말고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자.
보건의료에 대한 배움을 기반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해결하고 싶다는 열정을 가지는 것은 의대생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이런 변화를 위해서 교육과정에 무언가를 더하기 전에 덜어 내야 한다. 교수들은 의대교육의 목표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상기하고 시기에 맞지 않는 배움을 덜어냄으로써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을 확보 해야 한다. 이 시간은 다양성뿐 만 아니라 의대생의 정신보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의대생으로서 그들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지 알기도 전에 열정을 소진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교육과정개편에서도 사람이 먼저다. 의대를 졸업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출발선이 더 이상 병원 입구가 아니라 보건의료에 대한 부푼 꿈으로 충만해 사회로 나아가는 시발점이기를 바란다.
※칼럼은 젊은의사협의체의 공식 입장이 아닌 소속 위원 개인의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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