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의들의 잇따른 자살이 보건복지부와 건보공단의 조사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조사 일원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건보공단이 개원의의 자살에 책임이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자 의료계의 분노가 증폭되는 분위기다.
대한개원의협의회는 6일 성명서를 통해 건강보험공단의 강압적인 현지확인(방문확인) 제도를 전면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건보공단은 환자들의 민원, 수진자조회 등을 통해 요양기관의 부당청구, 법령 위반이 의심되면 요양기관을 방문해 사실 확인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건보공단은 강릉의 Y비뇨기과의원이 수진자조회 결과 비급여 진료를 한 후 진찰료 등을 요양급여비용으로 청구한 정황을 발견, 현지확인할 예정이었지만 A원장은 장모상을 이유로 조사를 연기했다.
그 후 건보공단은 A원장에게 두 차례 자료제출을 요구하는 한편 조사에 응하지 않을 경우 보건복지부에 현지조사를 의뢰한다는 점과 조사 결과 부당청구가 확인되면 환수뿐만 아니라 과징금, 면허정지, 과징금 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통보했지만 A씨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A원장과 같은 건물에서 개원하고 있는 S원장은 "A씨는 관행적으로 진료비를 청구했는데 나중에서야 그게 이중청구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면서 "복지부 실사를 받으면 최대 3년치 진료분을 들여다 보고, 허위청구가 확인되면 4중처벌을 받기 때문에 감당할 수가 없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S원장은 "조사 결과 잘못한 게 확인되면 부당금액을 환수하는 선에서 계도하면 되는데 불법이 확인될 때까지 자료라는 자료는 다 뒤지고, 한 번의 실수에 대해 4중처벌하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이건 살인이고 폭력"이라고 질타했다.
이와 관련, 개원의협의회는 "현행 현지확인 및 현지조사 제도는 사실상 의료인의 부도덕성을 전제하고 있으며, 과중한 환수, 4중 처벌 등 독소조항으로 가득해 의료인의 자율적 진료권을 압박하고 제한해 결과적으로 환자들의 치료환경을 저해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개원의협의회는 현지조사권 일원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보건복지부가 현지조사를 하는 상황에서 건보공단, 심평원이 각각 별도의 현지확인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진료권과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것이다.
개원의협의회는 "보건 당국은 더 이상의 부당한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행정조사기본법에 위배되는 조사권 중복 행사를 조속히 일원화하고, 무엇보다 건보공단의 무분별한 현지확인을 전면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이보다 앞서 의사협회, 대한비뇨기과의사회 등도 건보공단 현지확인제도 폐지를 요구한 상태다.
의사협회 추무진 회장은 조만간 정진엽 보건복지부장관과 만나 현지확인제도 폐지를 공식 요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건보공단은 A원장의 자살이 현지확인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표명했고, 이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결과로 이어졌다.
건보공단 노조도 "건보공단의 어떤 직원도 해당 의원을 방문한 사실이 없었으며, 자료 제출만 요청했다"면서 "의료계 일부에서 한 사람의 애통한 죽음을 건보공단의 건강한 발전을 저해하는 수단으로 몰고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의사협회 김주현 대변인은 "두차례 서류 제출을 요구하고 조사를 거부하면 더 큰 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압박해 놓고 이제와서 자신들은 방문조사를 나간 적이 없어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하는 것은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다"고 질타했다.
또 김 대변인은 "동료 의사가 두 명이나 자살했는데 어떻게 분노하지 않을 수 있느냐"면서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하는 식의 태도에 의사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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