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9.19 10:52최종 업데이트 23.09.1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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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미학, 이우환

[칼럼] 홍민호 관훈아르떼 부대표

[메디게이트뉴스] BTS의 RM이 부산시립미술관 ‘이우환 공간’을 방문하고 SNS에 올린 글로 인해 이우환은 BTS 팬들의 최애(가장 사랑하는) 작가가 됐고, 부산시립미술관은 BTS 아미에게 새로운 방문 성지가 됐습니다. 이우환은 대한민국 생존 작가 중 경매금액 1위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세계적인 예술가입니다.
 
부산시립미술관을 방문한 RM이 남긴 사인. 저는 ‘바람’을 좋아합니다.

1936년 6월 24일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태어난 이우환은 부산에서 경남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서울사대부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동양화과에 진학했습니다. 서울대 1학년 재학중(1956년) 21세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니혼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일본화 학원을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점으로부터 from point
선으로부터 from line
바람 from winds, with winds
조응 correspondence
대화 dialogue
 
시대별로 이우환이 심취했던 작품세계의 주제입니다. 이우환은 캔버스의 여백을 매우 중시했습니다. 캔버스의 여백을 단순히 비어있는 공간이 아닌 그려진 것과 상호 관계하는 공간으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그림과 여백의 관계, 점과 점의 관계, 작가와 관객의 관계, 자연과 산업사회의 관계 등 모든 작품에서 매우 중요하게 의미를 부여한 것이 바로 ‘관계’입니다. 1970년대에는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라는 작품들을 그린 시기입니다.
 
 
   
이우환 ‘점으로부터’ 1975년
점으로부터.
넓은 캔버스에 옅은 바탕색을 칠하고, 붓에 물감을 듬뿍 묻혀 하나씩 점을 찍어 나갑니다. 붓에 묻은 물감이 연해질 때까지 반복해서 점을 찍습니다. 진한 점이 점점 옅어지고 나중에는 자국만 남습니다. 이 과정을 캔버스 전체에 무수히 반복하여, 하나의 작품을 완성합니다.
옅어져 가는 물감의 색으로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고, 더불어 생성과 소멸, 시작과 끝을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이우환 ‘선으로부터’ 1978년

선으로부터.
물감을 듬뿍 묻힌 붓을 캔버스 제일 위에서 아래로 한숨에 쭈욱 그려 내립니다. 진하게 시작했던 선이 시간이 지나고 공간을 거치면서 점점 옅어집니다. 다시 붓에 물감을 묻혀 위에서 아래로 한숨에 주욱 그립니다.

이 과정을 반복해 캔버스를 온전히 채우면 하나의 작품이 완성됩니다. 점과 선을 이용해 색깔을 변형시키거나 방향을 변환시키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양한 작품을 그렸습니다.
 
1980년대에 이르러 점, 선으로 이루어진 작품에 자유로운 율동감이 더해집니다. 점과 선은 정직하고 정형화된 형태의 표현이어서 어느 시점에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을 겁니다. 물감을 듬뿍 묻혀 쭈욱 긋던 선을 중간중간 꺾어 그리고, 군데군데 겹쳐 그리기 시작합니다. 길이도 제각각이고, 방향도 제각각입니다.

BTS RM이 좋아한다고 했던 ‘바람’이 이 시기의 주제였습니다.
 
이우환 ‘동풍’ 1984년
규칙적이고 정돈된 그림이 자유롭고 다양한 형태의 모습으로 변하는 시기입니다. 점, 선 시리즈에 비해서 여백이 많이 줄었습니다. 굵고 강한 선과 공간과 여백을 꽉 채우는 붓의 터치가 전체적으로 웅장하고 역동적인 느낌을 줍니다.
 
1990년대에는 다시 최초의 점으로 회귀합니다. 점도 찍고, 선도 긋고, 점과 선에 다양한 변화도 주었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가장 단순한 형태의 작품으로 진화하게 됩니다. 붓의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여백의 표현을 극대화합니다.
 
이우환 ‘조응’ 1994년
‘조응 correspondence’
사전적 의미 ‘둘 이상의 사물이나 현상 따위가 서로 비추어 꼭 맞게 대응함’
 
이 시기에는 흰 캔버스에 크고 반듯한 점 하나, 또는 몇 개의 점이 등장합니다. 하나의 점을 찍고 말리고, 다시 찍고 말리는 과정이 40일이나 걸린다고도 합니다. 점이 캔버스의 다양한 공간에 위치하며, 특별한 에너지와 존재감을 뽐냅니다. 붓과 여백의 관계성에 집중을 하게 됩니다.

두 개의 점이 캔버스 위, 아래 또는 대각선으로 존재하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화가와 캔버스, 작가와 관객, 점과 점이 서로서로 바라보는 기분이 듭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조응’의 단계를 거쳐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됩니다.
 

 
이우환 ‘대화’ 2017년 
‘대화 dialogue’
대화는 조응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2개 이상의 색이 더해진 컬러 다이얼로그를 보면, 90세 가까운 나이에도 여전히 세련된 안목과 감각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점과 선이 만나고, 색깔과 색깔이 만나서 새로운 광경을 연출하는 경지를 이릅니다.
 
이우환의 작가 인생을 관통하는 단어가 서두에 이야기한 ‘관계’입니다. 작가 초기 시절에 일본에서 모노하(물건을 있는 그대로) 운동의 중심에 섰던 이력이 고스란히 삶에 묻어납니다.

자연의 돌과 산업사회의 철을 최적의 공간에 놓아둠으로써 사물을 있는 그대로 공간과 조화를 이루게 하는 모습으로 관객을 맞이합니다. 동양적인 철학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작품에 표현된 점과 점, 선과 선, 점과 선, 그림과 여백. 모두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1970년대부터 50년이 넘게 이어진 점, 선, 바람, 조응, 대화의 과정을 거치며 진리를 탐구하고 깨달음을 찾아가는 대가의 헌신과 노력이 그의 가치를 더욱 고귀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몇 년에 걸쳐 방영되는 대하드라마나 작가의 인생을 모두 바쳐 집필한 장편 소설을 읽는 듯한 감동도 전해집니다.

시대와 인생을 아우르는 대가의 열정이 한국인의 감성을 묵직하게 자극합니다. 작품을 보고만 있어도 압도적인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현존하는 한국 최고의 작가 이우환, 세계 최고의 갤러리인 페이스 갤러리의 전속작가 이우환,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과 파리 베르사유 궁전에서 개인전을 연 세계적인 작가 이우환, 
이우환을 만나러 가는 몇가지 방법을 알려 드립니다.

1. 부산시립미술관 ‘이우환 공간’
부산 벡스코역에 내리면 바로 있습니다. 이곳에 이우환 공간이라는 전시관이 있는데, 언제나 이우환의 작품을 만나 보실수 있습니다. RM의 방명록과 사인도 볼 수 있습니다.
 
2. 프랑스 아를 ‘이우환 미술관’
2022년 4월에 고흐가 사랑한 도시 아를에 이우환 미술관이 개관했습니다. 8유로의 입장권으로 즐길 수 있는 장소인데, 추후에 유럽 여행을 가시게 되면 일정에 포함시켜 방문하시면 좋겠습니다.
 
3. 각 미술관의 특별전에 이우환의 작품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키아프-프리즈 등 미술박람회에 언제나 초대되는 작가이니 관심을 갖고 살펴보신다면, 분명히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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