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2.02.06 15:01최종 업데이트 22.02.0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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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제 의사과학자 양성하고 진료 아닌 연구에 집중하는 '진짜 연구중심병원' 만들어지길"

[의대생 인턴기자의 선배의사 인터뷰] 김하일 카이스트 교수 "새 치료법 발견해내는 의사과학자, 관심 있다면 일단 도전해보라"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김하일 교수는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생화학 박사 과정을 마친 전일제 의사과학자다. 사진=줌화면 캡처 

[메디게이트뉴스 류지연 인턴기자 차의대 의학전문대학원 본1] 국내 바이오산업은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지만 바이오산업을 이끌어갈 의사과학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과거부터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해왔으나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졸업생 대다수가 임상의사를 선택하는 양상에는 변함이 없다.

과학자로서의 재능과 열정이 있는 의사들이 독립적인 의사과학자로 성장하도록 도와주려면 어떤 단계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 답을 찾기 위해 의사과학자인 카이스트(KAIST) 김하일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알아봤다. 
 
김하일 교수는 현재 카이스트 의과학연구센터 소장으로서 1998년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생화학을 전공했다. 김 교수는 연세의대 시절 담임반을 맡았던 고(故) 허갑범 교수의 질병 극복을 위한 다양한 연구에 매력을 느껴 의사과학자의 길을 선택하게 됐다. 당시 진료와 연구를 병행하고 싶었으나, 국내에는 MD-PhD 연계 프로그램이 없어 의대 졸업 후 전공의를 과정을 하지 않고 생화학교실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깊이 있는 연구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캠퍼스(UCSF)에서 5년간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했다.

김 교수는 2011년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에 부임해 현재까지 10여년간 재직 중으로, 의사과학자와 관련한 여러 제도의 변화에 대한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묵묵히 교육과 연구에만 매진해오던 그가 의사과학자로서 언론인터뷰에 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일제 의사과학자 인원 자체가 늘어날 필요성...300~400명에 불과한데 대부분 50대 이상  

-의사과학자 진로를 희망하고 있어 의사과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김하일 교수께 인터뷰를 요청드렸다. 하지만 주위를 보면 의사과학자를 희망하다가도 중도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아 보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학생들이 의사과학자의 길을 중도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의사과학자 과정 교육이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학생이 연구에 관심이 많아 의사과학자가 되고자 의대에 입학했지만 졸업할 무렵에 연구를 하고 싶지 않아진 경우라면 이를 ‘중도 포기’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의과대학이라는 곳에서 전반적인 대세는 임상 진로를 선택하는 것이다. 의과대학에서 제공하는 교육 과정을 충실하게 따라가다 보면 훌륭한 임상의사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수가 선택하는 전혀 새로운 분야인 의사과학자라는 길을 선뜻 가기는 힘들 수 있다. 더욱이 고작 몇 년 차이에 불과한 선배들이 말해주는 ‘연구만 하면 힘은 힘대로 들고 돈도 못 번다’는 이야기에 선택을 망설이게 된다.
 
특히 의과대학 내에서는 의사과학자로서 성공한 '롤 모델'을 보기가 어렵다. 병원에서 훌륭한 임상 의사 선생님들은 많이 보지만, 훌륭한 과학자를 만나볼 수 있는 기회는 별로 없다. 즉, 학생들이 과학을 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돼 있지 않다. 결국 대다수의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임상의사의 길로 가기 마련이다.   
 
-기존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제도가 의사과학자를 많이 배출하지 못했는데 이를 의전원 제도의 실패라고 보는가.  


의전원 제도가 실패했다는 평가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런 평가에 대해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래 의전원이 도입된  이유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선발해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는 의사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의사들이 의전원 제도를 실패했다고 평가하는 이유는 의전원 출신들이 인턴-레지던트-펠로우로 이어지는 임상수련과 그 중간에 박사학위 등 고전적인 과정을 밟지 않고 바로 개원가로 나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로의 다양성 측면에서 보면 긍정적 변화가 일어났다. 모두가 ‘인턴-레지던트-전문의-펠로우’의 똑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고, 졸업 후 다른 종류의 일을 시도해보는 등 진로가 조금 더 다양해졌다. 기초연구 분야에도 의전원 출신들이 많이 유입됐다. 의전원 제도는 ‘다양한 종류의 의사를 양성한다’는 관점에서는 절반은 성공한 제도라고 해석된다.
 
만약 의사과학자의 양성만이 의전원의 목적이었다면 실패한 것이 맞다. 하지만 애초에 의전원에서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의과대학과 특별히 다른 교육 과정을 만든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 예전에 일부 의대에서 의전원과 의대를 반반 뽑았던 시절에 다른 학위를 수여하면서도 두 과정을 분리해 교육하지 않았다. 실제로는 의전원에서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을 한 적이 없다.
 
 -지난해 10월 대한이비인후과학회 종합학술대회에서 전일제 연구개발 의사 혹은 연구개발 혁신가를 길러내야 한다고 발언했다. 전일제 연구의사만의 장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꼭 임상의사로서 당뇨병을 치료해야만 당뇨병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이 생길까? 아니라고 본다. 물론 임상진료를 하면서 얻게 되는 경험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질문들도 중요하다. 하지만 과학자로서 질병에 대해 연구하면서 하게 되는 질문들의 중요성과 깊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의사과학자는 의학적인 지식을 잘 흡수해서 그것을 연구에 잘 스며들게 할 수 있다. 당장 의과대학을 졸업한 이후만 봐도 일반인들이 가지지 못하는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차별화된 시각은 의사 경력이 길어질수록 더 좋아진다. 이러한 시각을 가지고 전일제 연구를 하면 훨씬 더 의미 있고 깊은 연구를 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과학자의 경력이 길어지면 연구에 대한 시각도 좋아진다. 
 
의사과학자가 자신의 삶에서 의료와 과학의 비중을 어느 정도 둘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연구를 깊게 할수록 임상이 줄어들고 과학의 비중이 커진다. 선진국의 경우를 봐도 대부분의 성공한 의사과학자들은 진료를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엔 풀타임으로 연구를 하는 의사가 너무 적다. 따라서 전일제 의사과학자들을 조금 더 육성해 의사과학자의 스펙트럼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의사과학자 생태계의 스펙트럼을 다양화하기 위해서는 전일제 박사과정 교육이 필요하다. 그 중의 일부는 임상으로 돌아갈 것이고, 일부는 전일제 의사과학자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전일제 박사과정으로 진입하는 의사의 수를 늘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 학교, 병원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전일제 의사과학자만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 너무 부족한 전일제 의사과학자 자체가 늘어나야 한다는 의미다. 전일제 의사과학자는 진료 외에 연구와 교육을 맡는 전일제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기초의학을 하는 교수를 포함해 전일제 의사과학자의 수는 대략 300~400명 정도 될 것이다. 그 중 대부분이 50세 이상이다. 따라서 15년 뒤에는 의과대학이나 병원에서는 더 이상 연구 교육을 시켜줄 인력이 없어진다.
   
독립적 연구자로 정착할 수 있도록 국가, 병원, 학교의 지원 필요  

-교육부 아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속의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만의 특장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카이스트에 오면 더 좋은 연구를 배울 수 있고 더 좋은 연구 결과를 낼 수 있다. 그게 재미있어서 연구에 흠뻑 빠지는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이 장점이다. 이건 연구중심대학의 특성으로 보인다.
 
카이스트의 가장 큰 장점은 연구를 하는 분위기라는 데 있다. 다들 연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밤에도 남아서 실험하는 학생들이 많다. 연구를 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고, 연구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크게 작용한다. 카이스트는 연구를 잘 하는 곳이다. 카이스트 설립 자체가 연구를 위해 특별하게 만들어진 학교이기 때문에 연구를 하고자 온 학생들을 다른 학교보다 크게 성장시켜 줄 수 있다.
 
또한 카이스트는 공학 분야가 발전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이 가능하다. 만약에 내가 어떤 것을 해보고 싶지만 기술적인 한계에 부딪혔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해줄 공학자가 근처에 있다. 내가 잘 모르는 영역을 잘 아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마지막으로 병역 특례가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국내에서 1년에 1000명 정도의 병역특례 전문연구요원을 뽑는데, 그 중 400명을 과학기술원(한국, 울산, 광주 등)에서 선발하고 교육부 소속의 대학들이 600명을 선발한다. 단순히 정원을 대학의 수로 나누면 정원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카이스트와 비슷한 수준의 대학들은 충분히 병역특례 정원을 받을 수 있다. 

-다른 의대는 보건복지부 주도의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 사업’과 ‘연구중심병원 사업’을 통해 의사과학자를 양성 중이다. 현재 보건복지부가 시행하고 있는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 사업 안내문을 보니 특이하게도 ‘전공의 수련과목과 동일한 전공과목 선택 시 본 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고 돼있다. 같은 전공을 선택하면 심도 있는 연구가 가능할 것 같은데 제한을 둔 이유는 무엇일가. 현재 국내의 수많은 의사들 중 박사과정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 사람이 30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박사과정 지원에 있어 걸림돌이 되지는 않은가. 
 
내가 답할 내용은 아니지만 내 의견을 이야기할 수는 있다. 이 사업은 전문의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 기초과학 혹은 의과학 분야에서 박사학위과정을 해서 의사과학자가 되기를 기대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전공의 수련과목과 동일한 분야에서 박사 과정을 하고 의학 박사를 받는 일은 지금도 잘 이뤄지고 있다. 다만 자신의 과목 분야에서의 수련이 아닌 과학자로 훈련을 시키고자 하는 사업 프로그램의 의도에 맞지 않다고 본다. 예를 들어 예방의학 전공의가 예방의학교실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데 이 돈을 지원하는 것은 이 프로그램의 목적에 어긋난다고 볼 수 있다. 정말 연구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조항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현재 MD-PhD 과정을 수료하더라도 병원 내에서는 임상 진로와 연구 진로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환경이라고 알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22년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 사업’에서는 임상진료의 비율이 60% 이하여야 성과 인정을 해주고 있다. 임상과 연구의 비율이 50대 50이나 60대 40인 경우 해당 트랙을 밟는 사람 입장에서는 임상 진료 부분에서도 부족하고, 연구 부분에서도 부족할 수 있다. 실제로 이렇게 진행하는 경우 어떤 어려움이 있나.
 
임상과 연구가 60대 40인 사람은 3일 외래진료를 하고 입원 환자 회진도 돌고 다른 업무들도 해야 한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어느 것 하나를 특출나게 잘하기가 매우 힘들고 본인 스스로의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도 나쁠 수밖에 없다. 내 기준으로 보면 진료와 연구를 50대 50으로 하는 전문가들은 '수퍼맨'이로 보인다. 
 
또한 전일제가 아닌 경우 연구에 투자하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므로 연구의 깊이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임상과 연구 양쪽의 장점을 잘 살려서 얻는 것도 있으므로 어떤 것이 확실이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임상과 연구 비율에서 연구 비율을 높이고 싶더라도 병원의 수익 구조 등 여러가지 상황에서 쉽지 않다. 

현재의 건강보험 수가제도도 역시 의사과학자 양성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낮은 수가로 인해 박리매다로 진료를 해야 수익을 맞출 수 있는 구조는 의사들에게 과도한 노동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연구를 할 여유가 있을까? 병원이 그들의 진료를 놓게 만들 수 있을까? 건강보험 수가를 올려서 하루에 100명이 아니라 10명의 환자만 봐도 병원 운영을 할 수 있도록 만들면 연구를 하는 사람이 조금 더 많아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는 해결이 어려운 문제인 만큼, 당장은 병원에서 계속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병원에서 진료를 하면 수입이 생기듯이 연구를 통해서도 수입이 생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연구비의 일부를 자신의 급여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MD-PhD 학위 취득 이후에도 연구자로서 독립하기 위해 많은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의사과학자 양성 이후의 연구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지, 필요하다면 어떤 것이 가장 필요한가.
 

임상이든, 연구든 특정 분야를 잘 하기까지 반드시 투자해야 할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 면허를 받은 사람이 독립적으로 진료할 수 있는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전공의 과정을 마쳐야 한다. 하지만 전공의 과정이 끝나고 나서도 아주 복잡한 진료행위를 위해서는 조금 더 트레이닝을 받아야 한다. 예를 들면 외과 전문의가 된 이후 100% 혼자 모든 수술을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이후에도 복잡하고 난이도 있는 수술을 맡는다면 펠로우 과정이 더 필요할 것이다.
 
이처럼 과학자도 박사 학위를 받고 나면 전공의 과정과 비슷한 수준의 과학을 배운 것이다. 이후 박사후과정(Post-Doc)을 통해 독립적인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모두 밟으려면 기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마흔이 넘어서야 연구자로 활동할 수 있다. 미국에는 이러한 과정들을 병합해 총 기간을 줄인 프로그램이 존재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다. 이게 가장 큰 문제이지만 해결하기는 쉽지 않은 상태다.
 
현실적인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데, 지금은 독립적인 연구자로서 살아가려는 사람 자체가 너무 적다. 대부분은 의사과학자 양성 프로그램 이후 병원에 가서 펠로우를 하거나 임상에서 환자를 보느라 지쳐서 연구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독립적인 연구자로서 정착하기 위해 국가, 병원, 학교가 연구자들을 잘 트레이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빅5병원 등은 연구전담 교수 비중 늘리고 연구병원 시도해볼 수 있어...카이스트 설립도 긍정적

-치료법과 약제 등을 새롭게 개발해도 이를 실제 환자에 적용해볼 기회가 충분해야 의미가 있을 것이다. 보통 병원에서 새롭게 개발 중인 치료법을 적용해도 법에 위배되지 않나. 실험적인 치료를 적용할 수 있는 특수한 병원이 존재할지, 필요하다면 어떠한 형태로 운영돼야 하나.
 
실험적인 새로운 기술을 적용할 때에는 충분히 안정성을 확보한 이후 허가를 받아야 한다. 현재 국내 모든 병원들이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있다. 다만 실험적 치료를 위해 설립한 특수한 형태의 병원은 없다. 해외 사례를 들면 미국 국립보건원 연구병원(NIH clinical center)이 가장 모범적인 예라고 본다. 이 병원은 국가의 전적인 지원 하에 희귀질환이나 난치성 질환을 가진 환자에 대한 새로운 치료기술을 시험하고 치료하는 곳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도 이런 정도의 연구병원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적자가 나면 공공병원조차 없애는 현실을 보면 과연 1년에 수백억원씩 적자를 내는 병원을 국가가 견뎌줄 수 있을지 걱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우리나라도 이런 적자 경영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고 본다. 또한 빅5 병원을 포함한 몇몇 병원들은 이러한 연구병원을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연구중심병원인 MGH(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을 보면 규모는 우리나라 대학병원보다 훨씬 크지만, 병상 수는 1000개밖에 되지 않는다. 진료로는 적자를 내지만 연구를 통해 많은 수익을 창출하고 외부로부터 기부도 받아 운영하고 있다. 텍사스의 MD앤더슨 암센터, 클리블랜드 클리닉, 마운트사이나이 병원 등도 연구병원의 좋은 사례다. 대부분의 국내 병원처럼 어마어마한 병원 뒤에 조그마한 연구소가 있는 형태가 아닌, 어마어마하게 큰 연구소가 몸통을 차지하는 진짜 ‘연구중심병원’이 국내에도 생기기를 바란다.
  
-현재의 ‘연구중심병원 육성 사업’은 의사과학자 양성에 있어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의사과학자 양성에 있어 병원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까. 
 
우리나라에서는 ‘연구중심병원’이 의사과학자 양성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연구중심병원에 참여하고 있는 연구책임자들이 연구를 열정적으로 하는 임상의사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들이 전공의들에게 의사과학자를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있다는 의미가 있다.
 
그 속에서 활동하는 선배 의사과학자가 임상과 연구 비율을 1대 9까지 조정한다면 그 밑에 있는 전공의도 같은 꿈을 꿀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병원과 의과대학이 이런 형태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등과 같은 곳은 한 번쯤 이런 시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수 중에 일부가 진료 시간을 현재의 10분의 1로 줄이고 나머지는 연구를 하게 만들면 아마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카이스트에 연구병원을 설립하자는 움직임이 있는데 여기에 대한 의견은. 
 
카이스트는 의대에서 병원으로 이어지는 기존 병원과 달리 연구병원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약20년 전에 카이스트에 의과학대학원을 만들 당시만 해도 말도 안 된다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현재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서울대와 연세대가 의과학대학원 제도를 따라하기에 이르렀다.
 
향후 10~15년의 기간을 충분히 두고 연구병원을 세울 수 있도록 노력하고, 그 속에서 일할 의사과학자를 키우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딱 한 가지 성공하는 모델을 만들면 사람들은 그 길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카이스트에서 첫번째로 성공하는 연구병원 모델을 만들고자 한다.
 
끊임없이 지식을 찾고 질문하는 의사과학자, 관심 있다면 일단 도전해보라  

-의사과학자를 희망하는 학생들이나 젊은 의사들이 앞으로 진로를 스스로 만들어나갈 때 어떤 생각을 갖고 준비하면 좋을까.   
 

첫 번째로 해주고 싶은 말은 '망설이지 말고 의사과학자가 하고 싶다면 그냥 한번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굉장히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국가는 이런 사람들을 필요로 하므로 하고자 하면 계속해서 지원해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두 번째로, 의사과학자가 되면 가난하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물론 병원이 성공해 상당한 돈을 버는 개원의와 수입을 비교하면 적지만, 이건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다. 대학병원 교수들의 수입도 개원의보다 작다. 하지만 사회가 바뀌고 있다. 연구를 해도 충분히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다. 산업계로 진출해 큰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연구를 해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얼마나 소득을 올려야 만족하는지는 개인마다 달라 정확히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버는 소득도 적지않다. 다만 피교육생의 신분에서는 급여가 적기 때문에 가족들이 그 시기를 이해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의사가 되고 나면 기본적으로 주변에서 기대하는 수준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기대를 견디기 힘들 수도 있다.
 
세 번째로, 의사과학자로서 트레이닝을 받은 후 임상의사가 됐을 때 상상도 못하는 새로운 측면의 장점이 있다. 과학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문제에서 스스로 질문을 찾는 것이다. 이렇게 연구자로서 질문을 찾는 과정에서 과학적 추론 방법을 익히고 나면 상당히 수준 높은 추리력을 가진 의사로 거듭날 수 있다. 과학자로서 훈련 받은 의사는 교과서에 쓰여 있지 않은 치료법을 발견하는데 큰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 장차 다시 임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학생도 일단 의사과학자로서의 삶을 경험해보고 결정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 과학자가 되고 싶었거나 그런 동기가 있었던 게 아니다. 당시에는 담임반 제도가 있었는데, 담임 교수이자 김대중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허갑범 교수의 권유로 이 길에 들어섰다. 나는 거창한 사명감을 가진 사람은 아니라 어쩌다 들어왔을 뿐이다. 그저 이 일이 재밌고 행복하다. 다른 사람들도 재밌고 행복한 기회를 잡기를 희망한다.  
 
의사과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을 위해 한 마디만 더 덧붙이고 싶다. PhD를 트레이닝 받는 시점에 연구 분야를 미리 정해 놓고 그것 하나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아마추어가 생각하는 과학과 프로페셔널로 하는 과학은 매우 다르다. 과학은 우리가 알고있는 지식의 가장 변방에서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박사 과정이 끝날 때쯤 돼야 우리 알고 있는 지식의 변방에 도달하게 된다. 그것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거기까지 가지 못한다. 지도 교수나 다른 과학자의 도움으로 그 지식의 변방에 도달하게 된다.

학생으로서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연구가 정말로 가능한 연구인지, 필요한 연구인지 이런 것조차도 알기 어렵다. 먼저 아주 커다란 범위를 정해 놓고 박사가 되고 박사후연구원을 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정의하고 점점 자신만의 과학을 찾아가면 된다. 과학자는 현재 모르는 게 무엇인지 정의하고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사람이다. 과학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모르는지를 찾아가며, 끊임없는 지식에 대한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진로를 탐색하는 의대생과 후배 의사들에게 격려의 한 마디 부탁드린다.  


마지막으로 선배들이 해주는 이야기는 전부 과거의 이야기라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 병원 담 너머로, 국경 밖으로 나가면 의사들이 할 수 있는 게 훨씬 더 많다. 병원 안에 있는 익숙한 것들만 바라보지 말고 더 넒은 곳으로 나가 큰 성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으면 좋겠다.  

#의대생 인턴기자 #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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