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재판부가 횡격막 탈장을 오진한 3명의 의사를 구속시키는 전대미문의 충격적 사건이 있었다. 구속 사태에 대해 대부분의 의사들은 분노했으며 대한의사협회의 강도 높은 시위로 이어졌다. 5년 전 분쟁 사건으로 병원 차원에서 이미 한 차례 배상을 했고 그 이후에 다시 또 형사고발로 이어진 상황이었다.
5년이 지난 이 시점에 도주의 염려로 구속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 이유가 매우 궁색했다. 물론 구속사유는 도주 외에 증거인멸도 있는데 둘 다 그 어떤 것도 이번 사건의 배경과는 맞지 않았다. 도망갈 사람이라면 벌써 도망갔을 터이고 증거인멸을 시도했다면 누구나 시간상으로 의미를 찾기 어렵다고 판단할 수 있다. 추정컨대, 이번 구속의 의미는 재판부가 인신 구속 제도로 관련 의사들에게 배상의 압력을 가하는 형태가 아닌지 가늠해볼 수 있다.
물론 사망한 어린 환자와 유가족 입장에서는 어떠한 설명도 위로가 되기 어렵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의료현장에서는 아무리 조심하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해도 의료의 특성상 예측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 사고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첨단 장비를 이용한 선진 의료시스템 하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직종의 전문직에 의한 팀 진료 형태에서도 예측 불가능한 안타까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개연성은 늘 도사리고 있다.
한 사람의 교수에 의한 과실 판정, 감정제도 문제 드러내
의사들에게 8세 된 남자아이가 배가 아프다는 상황에서 횡격막 탈장이라는 진단명은 감별진단 순위에서 한참 낮았을 것으로 짐작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의료분쟁 소송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건 사고 이후에 벌어진 의료사안 감정제도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적인 의료지식이 부족한 검찰 등 수사기관과 관할 법원은 이 사안에 대한 진료감정을 대학병원 교수에게 의뢰했다. 공정하고 엄정해야 되는 재판 과정에서 전문 분야에 대한 참고자료로 활용돼야 할 해당 교수의 감정서는 재판부가 복부탈장에 대한 오진과 진료진의 과실로 판정을 내린 결정적 근거로 삼은 것으로 보였다.
만일 여러 응급의사에게 8세 소아 복부탈장 환자의 변비와 복통 소견을 주고 이것에 의한 감별 진단을 내려 보라고 한다면 과연 몇 명이 복부탈장을 우선순위에 둘 지 매우 의문시된다. 그리고 만일 당일 100여명의 환자가 응급실에 있었다면 이 환자의 영상소견 판독이 최우선 순위였는지를 물어본다면 거의 대부분 정상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보편적인 의사의 반응은 의사집단에서 스스로 정의하는 진료수준(practice standards)이다. 진료수준은 시대적 동시성의 여건에서 통상적이고 보편적으로 해야 하는 의료에 대한 합의된 표준(수준)을 의미하는 것이다.
만약에 우리나라 의사가 결정한 진료수준(표준)이 당일 응급과에 내원한 환자 모두에게 즉시 실시간 영상판독을 해 결과판정을 하는 것이었다면 분명 이번 사건에서 의사의 대응은 수준 이하가 된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 어떤 나라의 의사집단도 갖고 있는 수준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수준은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서 결정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윤리적인 사안이 우선이고, 두 번째는 의료 환경요소가 작용한다.
만일 응급실에서 나오는 영상소견에 대한 기계적 소견이 실시간 함께 하고 자동 경보시스템이 작동하거나 아니면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응급의학과 전문의와 함께 상주하며 실시간 영상판독 소견을 점검해 준다면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의료 환경에서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논쟁의 여지가 있는 의료사고에서 전문가 한 사람에 의한 수탁감정 제도의 위험이 보인다. 만약 더 좋은 제도가 있어 재판부가 더욱 신중한 입장을 취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가설적으로 여러 의사에게 사건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어떤 반응이 있는가를 확인 한 후에 그 반응을 보고 가장 통상적인 절차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판단하는 방식도 있을 것이다. 정답을 이미 아는 사람이 후험적(post-priori)으로 전문가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전문가집단의 자율규제로 교차 복수감정 환경 구축해야
전문가의 저주로 유명한 논문을 남긴 Pamella Hinds에 의하면, 전문가 판단에 대한 위험성은 개구리 올챙이 적 시절을 까맣게 잊듯이 자신도 과거 초보자 시절의 상태를 망각한 채 전문가가 아닌 모두가 전문가인 자기와 같이 생각한다고 착각하고 또 자기와 같이 생각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는 가장 최근 기억에 의존하기에 다른 사람의 수준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과도하게 높다는 것이다. 재미난 예로 의과대학에서 임상과목별로 출제를 하고 출제한 각 과 교수에게 학생들에 대한 합격선 설문조사를 해서 결과를 보면 교수가 원하는 합격선은 의과대학생 절반 이상이 유급해야 하는 현상을 보인다.
이런 것을 고려하면 현재에도 진행 중인 수많은 건의 민, 형사 고발 등 복잡한 의료 분쟁에 대한 과실 판단은 한 사람에 의한 수탁감정보다는 관련된 해당 전문 과목 전문의들로 구성해 보다 안전한 ‘교차 복수 감정’으로 수행하는 것이 앞으로 법원이 공정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데 핵심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물론 진료감정의 판단 근거는 시대적 동시성에 의한 진료표준이 돼야 한다.
의료로 인한 불구나 생명을 잃은 사안이 큰 의료분쟁에서 현재와 같은 수탁감정 방식은 자칫 재판부가 원하는 배상으로 몰고 가기 위한 압력수단으로 변질된 인신구속으로 남용될 확률이 높아 보인다.
현재와 같은 불합리한 수탁감정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선진국처럼 진료에 대한 판정은 법에 의해 법원이 결정하는 형태가 아닌, 전문가 집단의 자율규제 기제를 통해 결정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의사 면허 관리 기구 운영 방식에서처럼 다 학제 간, 다자에 의한 패널토의 방식을 통해 객관적으로 확보된 진료수준을 근거로 진료 판정을 내려야 한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는 지난 2005년에 이전 107년간의 기록검토에서 단 한 사람의 의사가 형사소추로 실형을 선고 받은 바 있으며, 그것도 의사 스스로 중대한 과실을 인정한 특이한 사례였다. 마취과 의사로서 자기가 지켜야 할 수술방을 임의로 이탈해 연락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사이 마취기기의 이상으로 환자의 상태가 악화된 책임을 인정하고 스스로 3개월의 실형을 받은 사건이었다.
이런 사례를 보아도 캐나다의 온타리오주는 누가 봐도 한눈에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명백한 과실 또는 태만에 의한 것 이외에는 어떤 의료분쟁에서도 형사 처벌로 이어진 사례는 없었다. 전문가 단체인 면허관리기구에 의한 철저한 조사와 검증 절차를 통해 징계로 대체됐다.
이런 사실을 비교해 볼 때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사안 감정제도는 사회발전에 있어 아직도 덜 분화되어 후진적이고 비효율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의료인에 대한 근무환경을 더욱 더 악화시키며 옥죄이고 있다.
이런 후진적 상황을 개선하려면 의사 면허기구의 설립을 통해 의료사안 감정에 대한 공정한 판단이 보장될 수 있는 환경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아울러 의료행위에 대한 의료사안 감정은 인민재판식 여론몰이가 아닌 근거중심 의학의 원리에 맞도록 정상적 진료표준에 부합하는 진료였는지, 아니면 정상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진료였는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전문가적 판단을 바탕으로 법원이 최종 판결 시 감성 판단이 아닌 이성적 판단이 지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잘못된 풍토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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