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합리성에 기반한 수가를 책정하는데 우리나라는 의사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한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의 말이다.
최근 소청과의사회는 질병관리본부가 영유아 콤보백신 접종비를 턱없이 낮게 책정했다며 이를 개선하지 않을 경우 국가예방접종사업에서 전면 철수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유가 뭘까?
질병관리본부는 5가지 예방접종을 한 번에 할 수 있는 DTP-IPV-Hib 콤보백신을 도입, 5월부터 영유아에게 접종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DTP-IPV-Hib 콤보백신이란 DTP(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IPV(소아마비), Hib(뇌수막염)를 의미한다.
소청과의사회는 질병관리본부가 마련한 접종 시행비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영유아 예방접종 시행비는 1만 8200원. DTP(1만 8200원×3), IPV(1만 8200원), Hib(1만 8200원)를 각각 접종하면 9만 1천원이다.
그런데 질병관리본부의 안은 3만 6400원.
예방접종 시행비 1만 8200원을 '1'로 봤을 때 5(3+1+1)로 계산하지 않고, DTP 1, IPV 0.5, Hib 0.5를 합해 2로 산정한 것이다.
임현택 회장은 "정부는 2009년 국가 예방접종사업을 시작하면서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접종가를 낮게 책정했고, 점차 현실화해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한 번도 인상하지 않았다"면서 "그런데 혼합백신 시행비를 이런 식으로 산정하는 것은 병원 문을 닫으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국은 어떤 식으로 예방접종 시행비를 산정할까?
소청과의사회에 따르면 미국은 DTP를 한 번에 접종하면 우리나라처럼 1을 주지 않고, 2를 인정한다. DTP-IPV-Hib 콤보백신 시행비 역시 3(2+0.5+0.5)으로 산정해 우리나라보다 1을 더 인정하고 있다.
임현택 회장은 "미국은 접종 시행비가 약 23달러로 한국보다 크게 높을 뿐 아니라 콤보백신 시행비 산정방식도 우리와 다르다"고 환기시켰다.
임 회장은 "다섯번 접종하지 않고 혼합백신으로 한번만 주사하면 통증을 줄이고, 접종률을 높이는 장점이 있지만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는 것"이라면서 "이 때문에 미국은 이런 점을 감안해 합리적으로 시행비를 책정하지만 우리 정부는 의료기관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라는 식"이라고 꼬집었다.
"9년을 기다렸는데…정말 욕이 나올 지경"
정신의료기관들도 이와 유사한 지적을 하고 있다.
정신건강정책연구소 최봉영 소장은 2일 정신의료기관협회가 주최한 정신건강정책 학술세미나에서 한국과 미국이 정신병원에 적용하고 있는 1일당 일당정액수가를 비교해 소개했다.
일단 수가 차이가 20배에 달할 뿐만 아니라 미국은 2009년부터 2015년까지 14% 수가를 인상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정부 역시 최근 의료급여 입원환자에게 적용하는 일당정액수가를 9년 만에 상향조정하는 안을 행정예고했다.
하지만 평균 인상률은 2%에 지나지 않고, 재원기간이 181~360일이면 350원, 361일 이상이면 700원 올리겠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그러자 모 정신병원 원장은 "9년간 기다렸더니 350원 인상이냐"면서 "정말 욕이 나온다"고 울분을 토했다.
무엇보다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의 일당정액수가를 정한 후 여러가지 가중치를 적용하고 있다.
지역별 요소(임금, 물가 등의 차이)에 따라 지방 정신병원은 1.17를 가산하고, 환자의 특성을 반영해 질환에 따라 0.88~1.22, 나이에 따라 1~1.17, 복합상병 여부에 따라 1.03~1.13의 수가를 추가로 지급한다.
수련병원이거나 응급실을 운영하면 별도의 가산을 받는다.
한국과 미국이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재원기간에 따라 가산 또는 감산한다는 것 밖에 없다.
최봉영 소장은 "미국은 환자의 특성 등을 고려해 다양한 가중치를 적용해 의료기관을 배려하고 있다"고 환기시켰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가중치는 고사하고, 의료급여 일당정액수가 억제에서 한발 더 나아가 건강보험수가의 58%만 지급하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최봉영 소장은 "여러 나라가 공통적으로 일당정액수가제도를 시행한다고 해서 수가 수준도 같을 것이라는 정부의 인식은 큰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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