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지난해 어느 늦은 밤, 사건을 접수하러 경찰서에 찾아간 적이 있다. 늦은 시간에 신고를 접수하는 담당 경찰관을 보니 전공의 시절 응급실에서 근무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두 번째 찾아갔을 때 비타500 한 통을 드리려 했는데, 담당자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본인이 다루고 있는 사건의 관계자로부터는 어떠한 선물도 받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 사건이 다른 경찰서로 이관된 뒤에야 그는 비타500을 받았다. 수사기관에게는 고마움을 표하는 것도 쉽지 않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지난 4월 30일, 한의사들이 관악경찰서를 찾아갔다. 관악구한의사회가 진행한 의료봉사였다. 흰 가운의 한의사들과 정복의 경찰관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손가락 하트를 그렸다. 한 참가자는 SNS에 "작년에 이어 두 번째 방문"이라며 반가움을 전했다. 도심 한복판의 경찰서를, 복지관도 의료취약지도 아닌 곳을, 한의사 단체가 굳이 두 해 연속 찾아간다는 점만 빼면 훈훈한 풍경이다.
시계를 조금만 앞으로 돌려보자. 2024년 11월 26일, 관악경찰서는 ㄲ한의원에 대해 불입건 결정을 내렸다. 레이저제모, 보톡스, 리프팅 등 침습적 의료행위 혐의 사건이었다. 의사들 사이에서는 미용한의원으로 가장 유명한 곳이다. 언론에는 "구로 소재 한의원"으로 소개됐지만, 실제 주소지는 관악구다. 관악경찰서가 이 사건을 다룬 이유다.
결정서에는 "그동안의 보건복지부 유권해석 역시 한의사가 레이저 시술이나 고주파 시술을 하더라도 업무영역 내로 보고 있다"와 "대법원 판례 역시 새로 개발된 의료기기 등을 한의사가 사용하더라도 의료행위 이외의 행위라고 할 수 없다"는 문장이 적혔다.
복지부와 법원이 입장을 정리해온 영역은 초음파, 뇌파계, 골밀도진단기와 같은 진단기기 사용에 관한 것이었지, 레이저·보톡스·리프팅 같은 침습적 치료 시술에 관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2022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문은 "한의사가 침습 정도를 불문하고 모든 현대적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명시적으로 선을 그었다.
비침습적인 의료기기에 한정한 것을 일선 경찰서가 침습적인 영역까지로 확대, 왜곡해 사건을 그대로 종결시킨 것이다. 특히 보톡스는 리도카인과 같은 전문의약품이다. 한의사의 리도카인 사용은 이미 법원이 거듭 유죄 판결을 내려왔다. 판사도 안 된다고 한 영역을 일선 경찰서가 무혐의로 정리한 셈이다.
경찰의 권한은 최근 수년간 점점 커져왔다. 예전 같으면 검사가 한 번은 다시 들여다봤을 사건이, 형사소송법 개정 이후로는 그렇지 않다. 검사의 보완수사 범위는 축소되었고,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은 봉쇄되었다. 한의사의 불법 의료행위를 고발해도 일선 경찰서에서 불입건하면, 검사도 고발인도 손을 쓸 도리가 없다.
정리하면 이런 그림이다. 관악경찰서는 자의적 법령 해석을 동원해 한의사의 레이저 시술을 처벌 대상에서 빼내주었고, 몇달 뒤 한의사들로 구성된 단체가 "의료봉사"라는 명목으로 같은 경찰서를 찾아왔다. 작년에 한 번, 올해 또 한 번. 한의사 단체 입장에서 관악경찰서는 인사를 드리러 갈 만한 곳이고, 그 인사는 두 해 연속 진료 봉사라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비타500 한 통도 사건 관계인에게서는 받지 않는게 상식이지만, 다른 어딘가에서는 상식이 다르게 작용하는듯 하다.
이 모범 사례는 다른 지역과 기관으로도 확대 검토될 예정이라고 한다. 같은 모델이 전국 일선 경찰서로 퍼져 나간다면, 한의사 미용의원이 들어선 지역마다 경찰서가 한의사들의 의료봉사로 붐비고 한의사를 옹호하는 결정이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 하나하나가 어떠한 견제도 없이 굳혀질 것이다.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했다. 내가 들고 간 비타500은 고쳐 맬 수도 없었는데, 누군가는 매년 의료봉사라는 갓을 쓰고 같은 경찰서 마당으로 들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