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개 의대, 2025년 정원 2847명 늘려달라는 이유…증원 규모 경쟁에 '일단 지르고 보자'
옆 의대가 써낸 수치 보며 의대 경쟁, 지역 경쟁에 '눈치보기' 대학 실적 쌓기 위해 '부풀리기'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면서 실시한 전국 40개 의과대학 '의대정원 확대 수요조사' 결과, 각 대학의 희망 최대 증원 규모가 기존 3058명의 93%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나 의료계 내에 부풀리기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애초 증원 규모가 300명에서 1000명 수준으로 거론됐을 당시에도 과도한 수치라는 비판이 컸던 만큼 각 의과대학이 직접 제출한 희망 의대 증원 규모가 최소 2151명, 최대 2847명으로 집계되면서 애시당초 적절하지 않은 수요조사라는 것이다.
실제로 각 의과대학은 수요조사 초창기까지만 해도 현 의대 정원의 10% 수준의 확대 규모를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수요조사 제출이 증원 규모를 확보하는 경쟁으로 변질되며 희망 증원 규모가 터무니 없이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22일 메디게이트뉴스 취재결과를 종합하면, 21일 발표된 '의대정원 확대 수요조사'의 40개 의대의 희망 확대 정원 규모는 대학 간 경쟁과 지역 내 의대 정원 확보 경쟁의 결과로 사실상 의대 안에서도 '무리수'임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0개 의대, 최소 40명·최대 70명 확대 원해…현재 역량만으로 미니의대 감당 가능하다?
우리나라 의대 정원은 2000년 의약분업 이후 정원의 10%를 감축한 이래 2006년부터 현재까지 18년째 3058명으로 동결 중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종식과 필수의료 위기 등 의료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윤석열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강력 추진하기로 결정했고, 복지부와 교육부는 실질적인 의대 증원 규모를 추산하기 위해 10월 27일부터 11월 9일까지 2주간 전국 40개 의대를 대상으로 의대정원 확대 수요조사를 실시했다.
정부는 2025학년도부터 의대 정원을 확대하겠다는 명확한 목표 아래,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확정하기 위해 의대 현장 의견을 수렴하기로 한 것이다.
의과대학을 대상으로 한 '의대정원 확대 수요조사' 아이디어는 의학계가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각 의대가 수용 가능한 확대 규모를 스스로 정해 교육의 질이 저하되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번 조사 결과 발표에서 각 대학별 희망 의대정원 확대 규모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각 40개 의과대학들은 평균적으로 최소 40명에서 최대 70명까지 의대정원이 확대되길 희망한다고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계 관계자는 "최소 수요는 각 대학이 교원과 교육시설 등 현재 보유하고 있는 역량만으로 충분히 양질의 의학교육이 이뤄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각 의대가 현 역량으로 최소 50명의 학생이 늘어도 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 있다는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부실의대로 낙인찍혀 폐교했던 서남의대 정원이 49명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기존 의과대학에 50명의 정원이 늘어난다는 것은 미니 의대 하나가 세워지는 것과 흡사한 효과이기 때문이다.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서남의대 폐교로 전북대가 서남의대 정원 32명을 받아 의대 정원이 기존 110명에서 142명으로 정원이 늘어나면서 교원과 강의실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선례를 살펴볼 때 각 의대의 희망 확대 규모는 '무리수'"라고 지적했다,
지역 간 '증원 규모' 확보 경쟁으로 변질…성과 쌓기 위해 일단 '뻥튀기'
이번 의과대학 확대 수요조사가 이처럼 뻥튀기가 된 배경은 무엇일까.
모 의과대학 관계자는 "수요조사 초반까지만 해도 교육여건을 고려할 때 기존 의대 정원의 10%만 늘어도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등 정원 확대 규모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보였다. 의대 정원 확대 자체에 반대하는 교수들도 많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대학별로 희망 증원 규모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지역 간, 의대 간 정원 확보 경쟁이 불붙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해당 관계자는 "정부가 2025학년도부터 의대 정원을 확대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면서 일단 늘어나게 될 의대 정원을 우리 대학이나 지역이 가져와야 한다는 경쟁이 붙기 시작했다. 의대 총장, 해당 지역의 지자체장 입장에서는 본인 임기에 의대 정원을 확대하면 그것이 곧 성과나 실적이 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압박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방의대 교수는 "현장에서 현실적인 의대 증원 규모를 제출해도 위로 올라가면 숫자가 뻥튀기가 된다. 바로 옆 지역 대학에서 희망 의대 정원을 얼마로 썼다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경쟁적으로 희망 의대 증원 규모를 올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물론 정부가 각 대학이 제출한 수요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의학교육점검반'을 운영한다고는 하지만 막상 수요를 제출할 때는 다른 의대의 눈치를 살피며 지르고 보자는 식으로 제출했다는 후문이다. 괜히 다른 지역보다 희망 의대 정원 규모를 낮게 썼다가 정원 배정에서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계산 탓이다.
정부도 이러한 분위기를 인지한 탓인지 20일 의대정원 확대 수요조사에서 각 대학의 희망 증원 규모를 모두 더한 전체 규모는 발표했지만, 각 대학별이나 지역별 희망 증원 규모는 밝히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전병왕 보건의료정책실장(의학교육점검반장)은 21일 열린 의대 정원 수요조사 결과 발표에서 "이번 조사 결과는 40개 의대의 현주 수용 역량과 미래 수용 잠재력을 파악한 것으로, 실제 어느 정도 입학 정원을 늘리고, 배분할 것인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따라서 수요조사 결과를 자세히 발표하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고, 일부 대학이 공개를 동의하지 않았기에 총 규모만 발표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전 실장은 "의대 수요조사가 완료돼 각 대학별로 원하는 증원 규모를 파악했다. 향후 지역별로 정원을 어떻게 배정해야 할지 등 실질적 배분과 관련된 계획은 준비 중"이라며 "얼마나 신입생을 받아야 각 의대가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을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류를 통한 수요조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전문가가 확인하고, 현장까지 가서 확인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 규모에 대해 의료계와의 의료현안협의체, 의료계 공급자와 시민단체, 국민 대표, 전문가가 참여하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의 의결 절차를 거쳐야하기 때문에 소통을 통해 진행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의료계 관계자는 "정부도 의과대학이 경쟁적으로 희망 의대 정원 규모를 제출한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라며 "의학교육점검반이 의대가 제출한 수요를 서류 검토하고 현장점검까지 한다고는 하나 결국 의대가 제출한 희망 수요 규모는 단순 참고용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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