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전공의 수련이 단순한 노동의 반복이나 병원 인력 운영 수단이 아닌, 전문의로 성장하기 위한 체계적인 교육과정으로 재정립된다.
지난해 의정사태를 계기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과 교육의 질 보장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진 가운데, 기존 도제식 교육에 의존하던 수련 방식에서 벗어나 전공의가 진료 현장에서 쌓는 경험을 실제 임상 역량으로 연결하는 수련교육 체계가 마련될 전망이다.
대한의학회는 11일 웨스틴조선 서울에서 전공의수련교육원 출범식을 열고 전공의 수련교육 전반에 대한 구조적 혁신에 착수했다.
전공의수련교육원은 인턴·레지던트 수련 교과과정 개발, 수련 중 평가(Workplace-Based Assessment, WBA) 적용, 지도전문의 교육, 수련 프로그램 질 관리, 통합 플랫폼 구축 등을 전담한다.
이번 교육원 출범은 전공의 수련을 병원별·전문과목별 경험에만 맡겨두는 방식에서 벗어나, 졸업 후 의학교육(Graduate Medical Education, GME) 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기반을 만든다는 의미를 갖는다.
의정사태 이후 전공의 수련 문제 핵심 과제로 부상
대한의학회 이진우 회장은 이날 출범식에서 전공의수련교육원 탄생 배경으로 지난해 의정사태를 언급했다.
이 회장은 “2024년 2월 6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발표와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문제로 의정사태가 벌어졌고, 그로 인해 1년 반 동안 국민과 의료계가 많은 고생을 했다”며 “그 아픔의 과정을 통해 의료계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제도적 변화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의정사태의 핵심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전공의 수련 문제가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며 “이에 의학회 내 전공의 수련교육TF를 구성해 운영했고, 거의 매주 회의를 하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2024년 9~10월 전공의 수련교육 관련 보고서를 발간했고, 전공의수련교육원이 꼭 필요하다는 제안을 보건복지부에 여러 차례 요청했다”며 “복지부가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오늘 출범에 이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대한의학회와 26개 전문과목학회는 전문의 양성을 위한 수련 프로그램 개발과 교육체계 정비를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개별 과제 수행을 위한 위원회나 TF는 과제 운영 기간에만 기능하는 경우가 많아, 사업 종료 후 축적된 지식과 경험이 지속적으로 연계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따라 수련교육의 기획과 운영, 평가, 질 관리를 상시적으로 담당할 조직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전공의수련교육원이 단순한 조직 신설을 넘어 우리나라 GME 체계를 안정적으로 확립하기 위한 기반으로 제시된 이유다.
전공의수련교육원은 인턴 수련 교과과정과 역량평가 개발·적용, 레지던트의 과목별·연차별 역량 중심 수련 교과과정 개발, 통합 플랫폼 구축, WBA 파일럿 적용, 지도전문의 교육, 수련 프로그램 질관리 등을 핵심 기능으로 맡는다.
“도제식 교육 넘어 진료 경험을 역량으로”…지도전문의 교육·수련 질 관리도 강화
대한의학회는 전공의 수련이 단순한 노동의 반복이나 병원 인력 운영 수단이 아니라, 전문의로 성장하기 위한 교육과정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핵심은 전공의가 임상 현장에서 수행하는 진료 경험을 명확한 학습목표, 지도, 피드백, 평가와 연결하는 것이다. 기존 도제식 교육처럼 “보고 배우는” 방식만으로는 변화한 세대와 수련환경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공의수련교육원은 전공의가 어떤 진료 경험을 통해 어떤 역량을 형성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이를 평가·인증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지도전문의 교육도 강화된다. 의학회는 전공의수련교육원을 중심으로 중앙과 지역을 아우르는 지도전문의 워크숍을 운영하고, 지도전문의의 교육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수련 현장의 피드백 문화와 교육 책임성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수련 프로그램 질 관리 체계도 마련된다. 의학회는 전문과목학회와 수련병원이 함께 수련교육을 평가하는 질 관리 지표를 고도화하고 시범 운영한다. 이를 기준으로 각 수련병원이 수련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컨설팅과 교육도 지원할 예정이다.
이 회장은 “수련의 질은 한 번의 평가로 완성되지 않고 지속적인 점검과 개선을 통해 높아진다”며 “전공의수련교육원은 수련교육 전주기의 표준화와 고도화를 추진하고 데이터 기반의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미래지향적인 수련교육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복지부 “전공의 수련, 필수의료 질 좌우…재정·제도 지원 확대”
보건복지부 이형훈 차관
보건복지부도 전공의수련교육원 출범을 계기로 제도적·재정적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건복지부 이형훈 제2차관은 이날 축사에서 “전공의수련교육원 출범은 전공의 수련체계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라며 “2016년 전공의법 제정과 2017년 수련환경평가위원회 운영 이후 10년이 지난 만큼, 이제 수련교육원을 통해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수련교육 기반을 마련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 차관은 “전공의 수련은 전문 의료 인력을 양성하고 국민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의 질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며 “지역 간 의료 격차가 심화되고 필수·공공의료 기반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전공의수련교육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전공의 수련의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고 있다”며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교육의 질 제고, 지역 간 격차 완화 등을 위해 제도적·재정적 지원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국형 ACGME 요구 있었지만 현실적 혁신부터”
다만 의학회는 전공의수련교육원 출범 과정에서 정부 예산 지원과 독립성 확보 사이의 고민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전공의 수련에 국가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예산 지원을 받게 되면 정부 간섭이 있을 수 있어 독립적인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며 “그 사이에서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고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한국형 ACGME 설립 요구에 대해서도 현실적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한국형 ACGME를 설립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았지만, 하나의 독립된 기구가 되려면 수천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이를 부담하기도 어렵고 각 보험이나 의료기관이 대응하는 것도 모호한 문제였다”고 말했다.
이어 “현실적인 혁신의 방법으로 우선 의학회 내에 전공의수련교육원을 두고 콘텐츠 중심으로 확대·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며 “궁극적으로는 독립된 수련교육원이 설립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장기적으로는 수련 중 축적된 역량평가 결과를 전문의 자격 검증과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최종 전문의 시험 역시 수련 성과를 확인하는 간결하고 타당한 평가로 재설계하는 방안이 논의될 전망이다.
이 회장은 “전공의수련교육원은 수련 교과과정의 개발과 개정, 수련 과정의 운영 및 평가, 지도 인력 교육, 수련환경 개선 등 전공의 수련교육 전반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전담 조직”이라며 “수련교육의 표준화와 질적 향상을 위한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