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7.10.23 06:25최종 업데이트 17.10.2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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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액계약제, 허와 실

[칼럼] 여한솔 공중보건의

대한민국 의료계가 지향해야 할 올바른 방향에 대하여...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논란의 시작
 
지난 13일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과 국회의원 김상희 의원은 "문재인 케어를 추진하면 건보재정 부담이 증가할 수 있으므로, 대만에서 시행중인 총액계약제를 참고해야 한다, 총액계약제를 포함해 건강보험 진료비 지불체계 개편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건강보험 재정절감을 위한 다양한 제안들이 쏟아지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적자의 폭이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은 보건복지부를 제외한 기획재정부, 보건사회연구원 등 정부기관과 수많은 의료전문가가 되뇌었던 내용이지만, 이제야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위기를 인지하는 듯하다. (알고도 일부러 말 하지 않았을 확률이 훨씬 더 높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위한 의료전달체계 개혁과 약제비, 치료재료비에 대한 인하 등 다양한 제안이 국정감사기간동안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향후 건강보험 재정의 안정화를 위해서는 의료인과 의료관리학자, 정부와 국민, 즉 우리 모두 깊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 아무런 개선의 의지 없이 넋 놓고 바라보고만 있다가는 오래가지 않아 건강보험 재정 파탄을 마주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여러 국회의원이 언급한 보험재정 절감에 대한 논의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 파탄의 위기에서 고려해야 할 것은 지불체계의 개선보다 시급한 문제인 '고령화 사회를 대처하는 대한민국의 위기관리능력'과 위에서 언급된 문제점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러한 점들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의사들에게 '총액계약제'라는 무시무시한 칼을 꺼내들었다.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정책 시행에 따라 건강보험률 인상은 필연적이지만...
 
보건복지부는 예전에 의료이용량 급증 예상과 이에 따른 예산 추계에 대해 정밀한 시뮬레이션을 수백 번 돌렸고, 절대 문제가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의료정책과 더불어 나아가는 흐름을 지켜볼 때, 정부에서는 비급여의 전문 급여화 정책을 시행함과 동시에 ''총액계약제'를 도입하는 것을 저변에 깔아놓았다고 나는 보고 있다. 왜냐하면, 건강보험재정과 예산 추계를 같이 놓고 살펴보면 현행 지불체계방식만으로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상식적인 국정운영이라면, 재정 추계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총액계약제를 언급할 게 아니라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정책을 원점으로 돌려 두고 어디서 문제가 발생한 것인지 전면적으로 재논의 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의료공급자와 국민 모두를 상대로 잘못된 정보와 예측치를 제공해 이미 국민들을 속였고, 또 매번 그래왔듯 앞으로도 논의 없이 밀어붙일 것이다.

많은 의료인들과 대다수의 야당, 일부 여당 의원들마저도 건강보험 재정 파탄에 대해 많은 의문을 제기했고, 국회의원과 장관이 '총액계약제'를 공식석상에서 거론함으로써 이 의문에 대한 대답을 한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 정책을 강행하며 또 한 번 의료계의 손해를 강요하겠다는 것이다.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글 쓰는 것 밖에 없어, 키보드를 두들이기 시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대체 총액계약제가 무엇인가?
 
총액계약제, 내 입 밖으로 꺼내기조차 무섭고 꺼림칙한 제도이다. 그래도 잘 모르는 분들이 계실 거라 간단하게 설명은 하고 가야겠다.
 
총액계약제는 쉽게 말해 1년 중 국민들에게 지출할 총 의료비 예산을 미리 책정한 후에 정부가 의료서비스에 들어가는 비용을 의료기관에 지불하는 개념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행위별수가제(의료행위에 따라 정부가 지불하는 제도)와 포괄수가제(의료서비스의 양과 질에 관계없이 질병군 별로 미리 책정된 진료비를 지불하는 제도)를 병용하고 있다.
 
총액계약제는 정부가 의료서비스에 들어갈 비용을 미리 책정해 놓기 때문에 건강보험재정을 국가가 통제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이다. 이 제도는 영국의 NHS(National Health Service)를 비롯해 국가가 의료서비스를 직접 운영하는 시스템을 채택한 영국, 캐나다, 독일, 호주 , 뉴질랜드, 대만(일부국가는 부분적으로 시행) 등이 시행하고 있다. 다만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이다.

한국의 의료서비스는 약 90% 이상 민간자본 지배 하에 이뤄지고 있다. 따라서 이 제도의 시행으로 의료공급자들의 재산권이 통제되고, 의료소비자의 의료 선택의 폭도 통제될 수밖에 없다. 말은 짧지만 그 뜻은 엄청 무섭다. 상상을 해보라. 질병에 걸리더라도 의료서비스를 못 누리는 국민들과, 최선의 진료는 커녕 진료다운 진료는 꿈도 꿀 수 없는 세상을.
 
굳이 의료수준의 질적 저하를 길게 언급하지 않겠다. 정해진 예산 안에서 모든 치료를 하라고 하면 의료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모를 리는 없기 때문이다. 총액계약제의 장점을 맹신하는 일부 극단적인 집단의 의견들을 반박하기 위해 의료 선진국인 독일과, 이번 국정감사에서 거론된 대만의 경우를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려고 한다. 두 나라의 의료역사와 세부적인 의료제도 모두를 설명할 수 없는 점은 이해해 주길 바란다. 이글에서 짚고자 하는 요점은 '총액계약제를 통해 정말로 재정을 통제할 수 있는가?'이다.
 
독일의 사례
 
독일은 2008년까지 인두제(가입자 수에 따라 해당연도의 급여비가 결정되는 방식)를 중심으로 한 제한적인 총액계약제 형식을 접목해 운영했다. 하지만 2009년을 기점으로 인두제를 버리고 '수정 총액계약제'라는 새로운 지불체계를 채택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독일은 인두제로도 늘어나는 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개별의료보험조합이 총액 계약된 재정보다 추가적으로 보험료를 징수하고 있고, 국고보조도 같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의료 공급자의 뜻을 고려해 실제 진료량이 예상된 진료량을 초과한 경우에는 이를 제재하지 않고 추가로 필요한 여비를 지불하기로 돼 있다.
 
현재 독일의 보험료율은 15.5%로 한국(6.12%)보다 2배 이상 높은 보험료를 지불하고 있고, GDP 대비 경상의료비 지출 비율 역시 한국(7.7%)보다 훨씬 더 높은 11.3%를 차지한다. 한국보다도 훨씬 높은 비용을 국민들이 지불하면서도 정부의 국고보조금의 폭을 늘리고 있는 독일이 과연 의료보험 재정을 원활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보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만의 사례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장관은 대만의 의료보험 체계가 우리나라와 비슷했기 때문에 예로 들었다고 하지만, 대만의 경우는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대만은 1995년도부터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시행했지만, 적자폭을 견디지 못하고 2002년(의원, 병원 기준)부터 총액계약제를 시행했다. 실제로 대만은 2006년까지 의료보험 재정흑자를 기록했지만, 2007년도부터는 의료급여 지출비용이 건강보험료 수입을 앞질러 적자로 전환됐고, 그 폭은 해를 거듭할수록 커져가는 경향이다. 2007년 1조 2600억NT, 2009년 5조 8200억NT, …… (30NT(뉴타이완달러)=1달러)
 
결국 대만 정부는 총액계약제가 의료비 지출을 근본적으로 줄일 수 없다는 점을 깨닫고 2013년부터 제2세대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로 개편했다. 정책 개편의 골자는 월급 이외 기타 소득(임대, 이자소득, 주식취득 이득)도 보험료로 산정하고, 보험수입의 36% 이상을 국고에서 지원하는 것을 건강보험법에 명문화한 것이다.
 
그렇다. 이 제도의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것은 대만 정부 역시 총액계약제 만으로는 건강보험재정을 스스로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것과 다름없다. 여실히 실패한 대만의 정책을 본따 설계하는 분들의 저의가 궁금하다. 이 제도마저도 건강보험재정 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수가 없는 것일까? 근본으로 돌아가자. 진짜 문제는 무엇인지 훤히 알지만 보건복지부, 청와대, 국회의원 그들이 아무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로.
 
대한민국 보험재정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에 대한 고찰
 
1. 건강보험료를 인상시켜야 한다. 의미 있게 점진적으로...
 
지불 체계를 개편하는 방법을 통해서는 현재 대한민국의 의료비 지출은 그 폭은 조금 늦출 수 있겠지만, 현실을 직시하지 않은 채 보험 체제를 현행으로 유지하고서는 재정파탄을 막을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건강보험료를 인상시키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없으면 대한민국 의료보험 재정에는 미래가 없다.
 
세율을 올려야 한다고 하면 표를 뺏긴다. 그렇기에 정치인들은 국민들에게 이 말을 감히 꺼내지 못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정치인들과 고위급 공무원들이 젊은이들에게 신뢰를 잃은 이유는 간단하다. '국가와 국민보다 국회의원 배지와 승진 등 개인의 영달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의료비 지출의 증가는 불가피하다. 고령화, 만성질환 급증, 그에 따른 약제비의 증가(의약분업도 건강보험 재정타격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중증질환 검사 및 진료비 증가, 건강에 대한 국민의 관심 증가, 의료 발전에 따른 첨단 의약품 및 최첨단 의료기술의 도입 등등.... 이유는 셀 수도 없이 넘쳐난다.
 
하지만 정부와 일부 국민들은 이러한 흐름은 도외시한 채 건강보험료의 상승률이 3%를 넘긴 적이 손에 꼽을 정도이다. 의무는 다하지 않으며 권리만 누리려는 국민이 많아지면 그 국가는 망하는 것이 당연하다. 의료에 있어서도 위의 명제는 바뀌지 않는다. 정부는 건강보험료의 의미 있는 상승이 불가피함을 국민들에게 잘 설명해 추진해야 하며, 건강보험료를 산출하는 방식을 개선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건강보험 재정의 안정화를 어떤 수로도 꾀할 수 없다. 설명이 어려운가? 그게 바로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이다.
 
2. 진료비가 싸다. 너무 싸다.
 
대한민국 의료 평균이용량은 전 세계 최고 수준(14.9회/년)이다. OECD 평균(7.0회/년)의 2배를 차지하며 평균입원기간(16.5일/년) 역시 OECD 평균(7.2일/년)의 2배가 넘는다. 전 세계를 통틀어 우리나라에만 아픈 사람들이 가장 많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의료이용량이 지나치게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 시민단체는 의사들의 '과잉진료'를 가장 먼저 문제 삼는다. 하지만 나는 이들의 주장에 결정적인 오류가 있다고 본다.
 
설명하기 쉽게 일례를 들어보자. 내가 현재 진료하고 있는 곳에서 65세 이상의 환자들은 원내 약을 처방받을 때, 그래고 원내에 있는 물리치료를 받을 때 모두 무료이다. 그 외 모든 환자는 4일 치를 기준으로 진료, 처방, 주사 이 모든 서비스를 받고 지불하는 비용이 1300원이다. 3일, 1주일 , 2달 치 약을 처방받기 위해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발급하는 비용은 모두 차등 없이 500원이다. 이 환자들에게 예를 들어 1회 진료만 3만 원씩 본인부담금을 받으면, 이 진료실로 날마다 이른 아침마다 찾아올까? 아니다. 무료이기 때문에, 싸기 때문에 국민들은 진료실을 너무 쉽게 찾는다(진료실의 문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니 말하고자 하는 바를 곡해하지 않길 바란다).
 
의료이용량이 지나치게 높은 이유는 지나치게 낮은 본인부담금, 즉 수가의 문제다. 수가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사들이 비양심적으로 보이겠지만, 화를 가라앉히고 곰곰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정말로 아픈 환자들에게 높은 보장성으로 국민건강을 보장하고, 의료공급자가 박리다매 식으로 환자들을 봐야 이득이 생기는 이 기형적인 구조를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의료수가를 올리는 방법뿐이다. 의료이용량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데, 국민과 정부가 내는 재원은 전 세계에서 가장 적은 그룹에 속한다. 똑똑한 경제학자가 있다면 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합리적으로 해석해야 할지 가르쳐달라.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3. 앞으로 도래할 고령화시대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정부는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2014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 인구 분율은 12.7%, 2030년에는 25%까지 증가한다고 예측되고 있다. 2013년 기준 노인 의료비는 18조 원으로 전체 건강보험 수입의 35.5%를 차지하고 있다. 이 수치를 정부는 절대 간과하면 안 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건강보험 재정을 현행 체제로 유지한다면 결국 파탄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인구 고령화'에 있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지만, 보건복지부는 이 통계치는 고려하지 않는다. 보장성 강화 정책을 펼치더라도 오히려 건강보험 재정이 늘어나거나 현재 상황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국민을 속이는 정도를 한참 넘어섰다.
 
고령화 시대의 원인을 다른 것에서 찾으려 하고 마땅한 해결책을 고민하지도 않는 정부를 국민들은 줄기차게 비판하고 대책을 요구해야 한다. 출생률이 낮은 이유를 젊은 신혼부부들이 편하게 살려고 하는 데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도저히 아이를 낳고 기르기에는 퍽퍽한 사회 환경을 제공한 어른들에게 물어야 하듯. 
 
4. 치료보다 예방에 역점을 두는 의료시스템을 정부는 확대해 나가야 한다.
 
고령화의 속도와 이에 비례해 급증하는 만성질환의 흐름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정부는 꾸준히 만성질환의 예방관리 정책과 사업들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왔다. 만성질환으로 인한 표준화 사망률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이고, 효과적인 보건정책을 통해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회피가능 사망률<예방가능사망(보건정책 중재에 의해 예방할 수 있는 사망), 치료가능사망(조기검진, 시의적절한 치료등과 같은 양질의 보건의료 중재를 통해 피할 수 있는 사망)>을 지속적으로 줄여오고 있다.
 
하지만 만성질환의 부담으로 인한 국가적 손실은 여전히 크다. 특히 예방가능사망률은 의료 선진국의 치료가능사망률에 비해 현저히 높은 수치를 기록한다. 이 수치는 예방분야에 투자하는 정부의 재원과 노력이 아직도 부족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만성질환자는 지속해서 증가해 사회경제적 부담을 현격히 증가시킨다. 이번 보장성 강화 정책에서도 언급된 재난적 의료비(소득 대비 의료비 지출 비중이 10% 이상인 경우) 발생가구 중 고혈압, 당뇨 환자를 가진 가구의 비율은 무려 32%였다. 정부는 만성질환 치료에 앞서 질환자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민을 대상으로 더욱 적극적인 교육과 홍보, 그리고 의사를 활용한 예방정책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문제점들을 하나씩 개선해나가지 않고서는 어떤 지불체계의 개선책에도 건강보험재정은 파탄 날 것을 나는 확신하고 있다.
 
결론
 
의료시스템이 존재하는 이유는 건강한 절대 다수에게 단순한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질병으로 고통에 신음하고,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한 국민들이 치료비 부담으로 인해 가정과 재산, 모든 것을 잃지 않게 하려고 만들어진 게 ‘보험’이다. 애초의 목적에 부응하기 위해 의료시스템의 정상화를 주장하는 것이 의사로서 당연한 요구이고, 또 국민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료비 지출 절감을 위해 총액계약제를 언급했던 보건복지부 장관과 국회의원, 그리고 이 정책을 추진하려 했던 보이지 않는 정부관계자들에게 당당하게 고한다.
 
지불체계 개선만으로 획기적이고 실효성 있는 재정절감은 불가능하다. 예방의학 책에서 나오는 지불체계에 따른 전통적인 분류방식을 우리나라 건강보험시스템에 끼워 맞추기 식으로 도입하려는 것은 매우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다. 의료비의 지불체계는 각국의 정치, 사회, 문화 등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돼야 한다. 사회·경제적 여건 및 의료비 지불능력 등도 감안해야 하고 국가의 근본이념과 국민의 가치관에도 부합해야 한다.
 
앞서 열거한 문제점들이 먼저 해결된 후에 지불제도 개편에 대해 논의를 하는 것이 마땅한 순서이다. 의료기관들 사이의 무한경쟁 등으로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진 지 오래다. 왜곡된 의료시스템에 순응해 온 의료공급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물으려는 총액계약제 도입의 시도는 당장 중단해야 한다.
 
의료와 교육은 나라의 백년지대사라 불릴 만큼 국가가 책임져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이번 보장성 강화 정책에 대해 자문하고 입안에 참여했던 명단이 얼마 전 발표돼 명단을 훑어보았다. 실제 임상현장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들은 온데간데없고, 탁상에서 펜대만 굴리는 수많은 교수들(의료인보다 비의료인이 더 많았다)이 리스트에 올라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지금까지 의료공급자들의 희생은 혹독할 만큼 충분했다. 문제투성이인 정부의 허술한 의료정책을 강행하고,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총액계약제를 국회에서 떠들어대는 이 위정자들의 행보를 바라보며 도대체 언제까지 바보처럼 참고만 있으라는 것인가.
 
불과 몇 개월 전 수백만의 국민들이 추운 겨울 광화문에서 외쳤던 짧은 구호를 되뇌이며 길었던 글을 마무리 한다.
 
도대체, "이게 나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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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식 기자 (column@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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